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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에 신물” 新노동운동 시대 열린다



 

KT노조가 7월 17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95퍼센트의 압도적 찬성률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했다. KT 관계자조차 “반(反)민주노총 정서가 이렇게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KT노조 허진 교육선전실장은 “민주노총의 노동운동 방향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며 “정치투쟁도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너무 잦아지면서 조합원들의 요구나 정서와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직장을 잃고 생계를 걱정하는 조합원들을 외면한 채 ‘무조건적 투쟁’만을 강요함으로써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민주노총을 전격 탈퇴한 인천지하철노조 이성희 위원장 역시 “KT노조 탈퇴 사태는 민주노총의 비민주적 운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 위원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노총은 KT노조 탈퇴에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주장하는 등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도미노 탈퇴 현상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식 운영은 현실을 무시한 시대착오적 고집과 내부 세력 간 권력다툼, 정치투쟁으로 요약된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노동전문 연구위원은 “조합원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더 안정된 직장에서 합당한 임금을 받고 일하기 위한 것인 데 반해 민주노총은 정치적 이슈에 집착해 세력 넓히기에만 급급했다”며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 국민에게 민주노총의 존재를 알리려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KT노조 관계자도 “전국적 집회에 참석해달라는 민주노총의 요구는 조합원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음에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고 귀띔했다. 지도부와 일반 조합원들 사이의 소통 부재도 큰 문제였다. 지도부가 추진하는 이슈에 대해 조합원들은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어 불신과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조합원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올 상반기에만 대한알루미늄, 태광산업, 효성, GS칼텍스, 코스콤, 현대건설, 인천지하철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12개 기업이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하반기에도 민주노총 탈퇴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민주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서 현대차지부 정비위원회가 탈퇴를 준비하고 있고, 9월엔 전국지하철노동조합연맹이 민주노총 탈퇴 관련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큰 의미 없다”며 애써 담담한 모습이다. 오히려 언론의 과장보도를 탓하며 조직의 이념과 이질적이던 노조들의 탈퇴로 조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 사태를 계기로 파업과 투쟁으로만 대변되는 국내 노동운동에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도 민주노총도 아닌 ‘제3의 노총’이 노동운동의 대안세력으로 등장할지 주목되고 있다. 각 지역 지하철노조는 지하철노조연맹을 결성한 뒤 공공기업 노조로 구성된 전국지방공공기업연맹 등과 함께 공공기업 노총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기존의 상급단체를 탈퇴하지 않고도 새로운 상급단체에 가입할 수 있게 돼 제3노총 설립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제3노총이 만들어지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양대 노총에도 자극을 줘 노동운동 전반에 자기쇄신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제3노총’론이 민주노총의 실패에 따른 반사작용의 성격이 강해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많은 데다 제3노총을 이끌어갈 만한 명망가도 눈에 띄지 않아 실패할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3노총 설립 여부를 떠나 최근 “노조는 조합원이 중심이 돼야 하며 조합원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면 결국 외면받는다”는 원칙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남성일 교수는 “지나친 정치투쟁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까지의 노총이 조합원을 이끌고 가는 리더 구실을 했다면 21세기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합원들이 바라는 것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근무여건 개선’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는 것,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최선이다. 이처럼 노동운동도 이제는 경제적 시각에서 전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변양규 연구위원은 “경제적 원리에 정치색이 혼재돼 이 같은 노동문제가 발생했다”고 전제하고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본래의 노조 목적에 충실한다면 적어도 KT노조 조합원들과 같은 불만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1987년 7월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많은 노조가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대거 이동했던 과거를 기억한다. 한국노총은 20년 전 지금의 민주노총과 똑같은 문제를 겪은 이후 자기혁신을 통해 대화와 협상으로 노동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가 수뇌부까지 전달되기 위해 지도부가 나서서 실질 근로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올바른 노동운동을 위한 준비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글·이현정(아시아경제 정치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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