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숭례문 현판, 화마 이기고 돌아오다


 

겨울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2월 10일. 밤새 화마에 스러져가는 숭례문을 바라보던 국민의 가슴은 안타까움에 함께 타들어갔다. 소방관들이 불길과 싸웠음에도 안으로 번지는 불길을 잡지 못해 서서히 제 모습을 잃어가다 마침내 숭례문의 위엄찬 누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새벽, 온 국민은 비통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유일한 위안이 불길에서 살아남은 숭례문 현판. 그 숭례문 현판이 제 모습을 찾아 우리 곁에 돌아왔다.
 

숭례문 화재 당시 화마를 피하긴 했지만 10여 미터 아래 땅으로 떨어져 조각났던 숭례문 현판이 복원돼 7월 7일부터 8월 16일까지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 2층 중앙홀에서 열리는 특별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길이 3.5미터, 폭 1.5미터에 무게만 1백50킬로그램에 이르는 숭례문 현판은 당시 추락의 충격으로 38개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숭례문 현판 복원작업을 진행한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단장 김창준 문화유산국장)은 38개 조각 가운데 복원이 불가능한 것은 버리고 숭례문 화재로 훼손된 목재 중 재사용이 불가능한 부재를 버린 조각 대신 채워 넣어 현판 복원의 의미를 담았다.
 

숭례문 현판 복원의 핵심은 현판 글씨의 원형을 찾는 일이었다. 숭례문복구단은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 현판 탁본 자료와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 복원 전 현판의 글씨 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지덕사 탁본이 원래 글자체임을 밝혀내 지덕사 글씨체로 복원했다.
 

조선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묘와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는 지덕사의 탁본은 1865~ 187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숭례문 현판 글씨는 누구의 작품인지 확실치 않다. 글을 쓴 사람이 양녕대군인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신장, 정난종, 유진동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숭례문 현판 복원작업에는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나무에 글 새기는 사람) 오옥진 씨, 단청장(단청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 홍창원 씨 등이 참여했다. 숭례문은 2012년까지 제 모습으로 복구될 예정이다.
 

글·박경아 기자
 

문의·국립고궁박물관(02-3701-7500)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