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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 만의 귀환… 반갑다! 외규장각 의궤




“각하,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서적들로 가득 찬 도서실(외규장각)에서 공들여 포장한 3백40여 권을 수집했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프랑스로 발송하겠습니다.”

“통역이 없어서 감히 확언할 수 없습니다만 이 책들이 조선의 역사, 문학, 전설에 관해 많이 밝혀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각하는 틀림없이 국립도서관에 전달할 만한 유익한 것으로 판단할 것입니다.”

1866년 11월 17일 프랑스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를 점령한 구스타프 로즈 제독은 프랑스 해군부 장관에게 이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그는 또 편지에서 “강화에 도착하자마자 위원회를 조직하고 역사적 견지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물건들을 수색하는 일을 맡겼다”며 “이 위원회가 제출한 조서를 각하에게 보내드린다”고 썼다.

외침에도 끄떡없이 왕실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1782년 정조(正祖)가 강화도에 지은 외규장각은 84년 만인 1866년 프랑스군에 유린당했다. 프랑스군은 왕실 관련 귀중품과 책 6천여 권 중 3백40책의 도서와 한·중·일 지도, 천체도, 대리석판, 갑옷과 투구 등을 가져갔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웠다.

프랑스 군대는 왜 책, 의궤를 집중적으로 가져갔을까.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의궤 대다수는 어람용(御覽用)이어서 표지와 종이질, 장정이 훌륭해 한문은 몰라도 그려진 그림을 보고 가치를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프랑스 군대가 의궤를 약탈한 배경은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갈 때 군대 안에 문화재를 구별하는 팀을 따로 운영했을 정도”라며 “프랑스군은 이런 차원에서 외규장각 자료를 가져갔을 것”이라고 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사회에 불고 있던 동양 고(古)문서 수집 붐이 그 배경으로 떠오른다.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은“프랑스는 18세기 말 이래 서구의 동양학을 선도,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프랑스는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동양 문서를 적극 수집했고, 중국의 신해혁명 전후 사대부가 몰락하며 서적들이 시장에 나오자 학자들이 베이징으로 가서 방대한 양의 전적을 사들였을 정도”라고 했다.

1908년 프랑스 동양학자 폴 펠리오가 중국 둔황 막고굴에서 ‘왕오천축국전’ 등 동양 고문서들을 무더기로 발견해 프랑스로 가져간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145년 만의 역사적 귀환’이지만 환영 행사는 없었다. 지난 4월 14일 오후 1시50분 인천공항 화물청사. 외규장각 도서 75책을 담은 5개의 포장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관 수속을 마친 상자들은 곧바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글ㆍ허윤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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