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최근 국가경쟁력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잇따라 발표됐다. 9월 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9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비해 여섯 계단이나 밀려난 결과여서 정부 관계자들은 당혹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치를 내걸고 기업 경영환경 개선에 힘써온 터라 올해는 순위가 대폭 오를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뒤 표정이 확 바뀌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09~2010년 기업환경평가에서는 거꾸로 네 계단이나 상승해 사상 처음으로 20위 안쪽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5월에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에서는 57개국 가운데 27위로 평가됐다.
이처럼 평가기관마다 들쑥날쑥한 데 대해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밀한 평가라면 순위가 약간 차이 나더라도 최소한 순위 변동 방향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순위를 끌어내리는데 다른 쪽에서는 훌쩍 올리니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기관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신뢰도를 인정받는 곳은 WEF와 IMD, 세계은행 정도다. 다보스포럼 개최 단체로 유명한 스위스의 WEF가 1979년 가장 먼저 평가를 시작했다. 경영대학원 성격의 IMD는 한동안 WEF와 평가작업을 공동으로 해오다 1989년부터 독자적인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기업경영에 관련된 부문에만 국한해 2003년부터 평가를 하고 있다.
세 곳 모두 평가의 초점을 특정 국가가 기업하기에 얼마나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에 맞춘다. 기업이 잘돼야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고, 국민 삶의 질이 좋아진다는 취지에서다. 평가 문항도 고용과 세금, 규제, 인프라, 교육 여건 등이 기업을 운영하는 데 얼마나 편리한 환경인가를 따져 묻는다.

하지만 평가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우선 평가 대상 국가를 보면 세계은행은 1백80여 개국, WEF는 1백30여 개국으로 주요한 나라는 거의 대부분 포괄한다. 반면 IMD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중심으로 55개국 정도가 대상이다.
문항 수에도 차이가 크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WEF는 1백10여 개, IMD는 3백30개 남짓한 문항을 묻는 데 비해 세계은행은 10개 분야 34개 항목이 전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WEF와 IMD의 지난해 평가 문항을 분석한 결과 공통적인 질문은 55개에 그쳤다. 사실상 서로 다른 항목을 평가하다 보니 기관마다 순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평가항목에 대한 가중치도 서로 다르다. 특히 WEF의 경우 대상 국가를 국민소득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눠 같은 항목에 대해 다른 가중치를 적용한다. 한국은 2007년 인프라와 기술 분야 가중치가 높은 ‘혁신주도 경제’로 그룹이 바뀌면서 23위에서 11위로 한꺼번에 12단계나 상승하기도 했다.
더 큰 차이는 설문 비중에서 나온다. 전체 평가항목 가운데 WEF는 3분의 2가량, IMD는 절반 정도를 설문조사 결과에 의존한다. 설문 대상은 철저히 그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한정된다. 반면 세계은행 평가에서는 설문 없이 34개 문항 모두 객관적으로 발표된 자료만 쓴다.
문제는 설문조사라는 게 본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CEO들이 객관적 입장에서 각 항목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느냐를 판단하기보다 자신의 사업에 유리한가를 따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문 문항 자체도 주관적인 답변이 나오게 구성돼 있다.
예를 들면 “에이즈가 앞으로 5년 이내에 당신 회사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느냐(WEF)”는 식이다. 기업, 정부, 인프라 등 모든 분야를 두루 꿰고 있지 못한 응답자에게 이런 질문을 해서 얻은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설문 시점의 정치·사회적 여건이 답변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문제도 있다. 기획재정부 이대희 경쟁력전략팀장은 “올해 한국의 WEF 순위가 크게 하락한 것도 설문이 진행된 5월에 쌍용자동차 파업과 비정규직법 갈등이 불거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평가항목에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의료나 사회안전망, 소득분배 같은 사회복지 분야는 거의 평가되지 않는다. 거시경제 변수에 대한 고려도 부족한 편이다. 거시경제 요인은 한번 문제가 생기면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사안이므로 이 부문이 빠진 경쟁력 평가는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아이슬란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저축률이 극히 낮고 장·단기 금리차가 너무 커 거시경제 안정성이 취약했지만 기업우대 정책을 편 덕분에 2007년 IMD 평가에서 7위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국가부도 사태가 나자 올해는 아예 대상에서조차 빠졌다.

![]()
이 때문에 각 기관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를 실제 국가경쟁력 자체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경쟁력 순위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면 한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 영국 런던정경대 존 반 리넨 교수는 이를 두고 “마치 스포츠 경기 순위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할 만한 내용도 많다. 특히 각 기관의 평가에서 공통적인 부문을 추려내고 분석하면 유익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가 각 평가기관의 공통된 평가항목을 뽑아 순위를 다시 매긴 결과 한국은 19~20위로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공동 평가 항목에서 한국은 기술, 인프라, 교육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노동과 정부 효율성 및 규제 분야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국가경쟁력 순위는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수석연구원은 “단기 순위 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평가에 나타난 우리의 취약점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글·최현철(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