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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서 더 빛나는 휴대전화 경제 효과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맑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에서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마종기 시인의 ‘전화’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지니고 다니는 이 시대, 이 시가 여전히 짝사랑하는 마음의 풍경을 대변할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전화’의 도입부를 요즘 상황에 맞춰 바꾸면 다음과 같이 된다. ‘당신이 지금 휴대전화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매우 어색한 구절이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낯설게 된 건 이 시 ‘전화’만이 아니다. 공중전화 부스에 사람들이 줄지어 선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공중전화에 이어 집 전화도 구시대의 유물로 밀려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휴대전화는 없앤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만들어냈다. 휴대전화는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선 단말기가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는 국내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수출 기여도 또한 크다. 지난해 단일 품목 가운데 가장 많은 186억 달러어치가 수출됐다. 휴대전화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 기지국, 중계기 산업도 휴대전화 단말기 보급과 나란히 급성장했다. 또 휴대전화 서비스는 음성통화 이외에 디지털 음악, 게임, 무선 인터넷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됐다.


단말기 수출 단일품목으론 1위 ‘효자’
휴대전화 서비스·단말기·시스템 산업을 아울러 이동통신산업이라고 부른다. 이동통신산업이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통계가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산업별 부가가치유발계수다. 부가가치유발계수란 어떤 산업에 대해 최종 수요가 발생할 경우 전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부가가치의 크기를 뜻한다. 한국은행이 2003년 산업연관을 분석한 결과 이동통신을 포함한 통신·방송산업의 부가가치유발계수는 25개 산업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0.911으로 나타났다. 통신·방송 서비스 수요가 1만원 증가할 때 우리 경제 전체에서 유발되는 부가가치가 911원이라는 말이다. 전 산업 평균 부가가치유발계수는 0.741이었다.

게다가 휴대전화 서비스는 자신의 시장을 만들고 관련 시장이 형성되도록 유발하는 것 이외의 경로로 경제에 기여한다. 다른 시장의 정보 교환을 돕고 거래를 촉진하는 것이다. 다음의 가상 사례를 생각해 보자.

서울 양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영동1교 아래엔 산책로를 낀 농구장과 롤러블레이드 연습장이 있다. 영동1교의 교각엔 배달음식점 홍보 스티커가 여럿 붙어 있다. 운동하던 사람들이 이 스티커를 보고 휴대전화로 간식을 배달시켜 먹는다고 하자.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요가 음식점에 발생한 것이다.







휴대전화의 이런 역할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무선 통신이 거의 깔리지 않은 후진국에서 더 잘 드러난다. <포브스코리아> 9월호에 소개한 ‘대담한 휴대전화 사업자’ 디지셀의 고객 이야기를 전하면 아래와 같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빈랑 열매를 파는 가난한 소년 피틀러 라슨은 난민촌에서 생활한다. 그는 휴대전화 덕분에 요즘 수입이 늘었다고 한다. 도매상에 새로 물건이 들어왔는지 휴대전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맨발의 피틀러는 “전에는 매일 물건을 가지러 가느라 한나절씩 허비했는데 이제는 시장에 가지 않아도 되니 장사를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티의 망고 수출업자 진 모리스 뷔토도 휴대전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가 지금처럼 연간 15만개의 망고를 수출할 정도로 사업을 키운 데엔 휴대전화의 도움이 컸다. 전에는 망고를 싣고 비포장도로를 가던 트럭의 차축이 망가졌을 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트럭 운전기사는 망고가 썩어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휴대전화로 수리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사모아의 어부 피나우 아피투는 요즘 일주일에 80달러를 벌어들인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보다 4배 규모다. 아피투는 이렇게 말한다. “전에는 시장마다 돌아다니는 동안 생선이 상하곤 했는데 이제 휴대전화로 어느 시장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물어본다. 돈벌이가 좋아져 아이들의 학교 급식비를 낼 수 있게 됐다.”


사회간접자본으로 중요한 역할
이들 사례에서 휴대전화 서비스가 도로, 철도, 상하수도, 전력 등과 마찬가지로 사회간접자본(SOC)으로서 한몫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휴대전화는 유선전화가 미처 보급되지 않은 후진국에서 특히 중요한 SOC로 평가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디지셀이 설립 7년여 만에 가입자 700만명, 매출 16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국가에 진출해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는지 하는 부분이다. 자메이카에 본사를 둔 디지셀은 아이티, 트리니다드토바고, 엘살바도르, 파푸아뉴기니, 통가, 서사모아 등 중미와 태평양의 27개국에 진출했다. 대부분 가난한 데다 치안과 정정이 불안한 나라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 디지셀은 다른 휴대전화 사업자가 기피하는 이들 국가에서 허가를 받기도 전에 기지국부터 설치하고 휴대전화 단말기를 거저나 다름없는 값에 뿌렸다. 전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대거 고객으로 확보했다. 디지셀 덕분에 생업에 도움을 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이번엔 디지셀의 옹호자가 됐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아이티 폭동 때 약탈과 방화를 일삼던 폭도가 디지셀 대리점에는 손 대지 않은 것이다. 이는 휴대전화가 개개인의 생활에 없어선 안 될 SOC임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파푸아뉴기니 재무부 장관은 얼마 전 한 연설에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6.2% 가운데 0.7%가 휴대전화에서 창출됐다고 분석했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인구 100명당 휴대전화가 10대 더 보급될 때마다 국내총생산(GDP)이 0.5%씩 증가한다.
그렇다면 후진국의 빈곤층에게 휴대전화를 값싸게 보급하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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