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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나는 남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주상복합 같은 곳에 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한국에서는 남들에게 돈 좀 있다고 보이면 어떤 식으로든 ‘폭행’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죠. 한국은 돈이 있어도 있는 걸 드러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받은 e메일의 한 부분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우습지도 않게 과시욕구의 도가 지나친 것 또한 한국 사회”라며 이율배반적인 측면을 꼬집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한국에서는 길도 좁을뿐더러 기름 값도 비싼데도 소형차는 잘 안 팔리고 대형차만 잘 팔리지요.”

자신은 형편에 비해 과시적으로 소비하면서도 남이 있는 티를 내면 손가락질하는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모습은 강한 경쟁심 또는 질시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시쳇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것이죠.

경쟁심은 탓할 바가 아닙니다. 경쟁심이 강한 사회는, 개별 구성원들로서는 피곤하지만 뭘 해도 비슷한 조건의 다른 사회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심이 도를 넘어 시샘과 참견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국의 부자들은 주위의 따가운 눈총 탓에 돈을 맘대로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자는 불편한 안락의자에 앉은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보다 더 잘사는 다른 여러 나라에는 부자를 질시하기보다는 부러워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더 많습니다. 또 그런 곳의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맘껏 향유합니다.

한국에서 부자가 부자로 살기 어려운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제게 e메일을 보낸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로 자기 주머니 속사정을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됩니다. 동창회다 뭐다 해서 손 벌리는 모임들이 한두 군데가 아닐뿐더러 그다지 가깝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돈 빌려달라고 몰려듭니다.”


경쟁 막는 질시, 경제에 마이너스
제가 우리나라 부자들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부자들의 대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포브스 코리아>의 간판격 특집인 ‘한국의 부자’를 만들면서부터입니다. 대다수 한국 부자들은 앞에서 열거한 이유들 탓에 ‘내가 돈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거니와, 설령 그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더라도 거론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탓에 한국의 부자 특집은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친 끝에 나옵니다. 우선 명단입니다. 책에는 이름과 나이, 직함, 재산만 들어가는데, 한사코 명단에서 빼 달라는 부자들이 있습니다. ‘인터뷰는 더더욱 사절합니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미국 <포브스>의 ‘미국 400대 부자’ 특집호와 <포브스 코리아>의 한국의 부자 특집은 두 나라의 부자들과 부자들을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미국 부자들은 자신이 일군 부를 적극적으로 자랑합니다. 취재 요청을 받아들여 최대한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한다는 거죠. 예컨대 어떤 부자는 호화 요트에서, 다른 부자는 자신의 수영장에서 사진 취재에 응합니다.

물론 우리가 부자를 부러워하고 존중하기보다 질시하게 된 데엔 부자가 책임질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적지 않은 부자들이 부를 형성한 과정이나 돈을 쓰는 방식이 아름답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대목은 잠시 후에 다루겠습니다.

부자가 원하는 대로 돈을 쓰지 못하는 것은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들은 국내에서 쓰지 못하는 돈을 해외에서 씁니다. 그만큼 국내 경제에 누수가 생깁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회장님과 사장님들은 주로 국산 에쿠스를 업무용 승용차로 씁니다. 예외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예외일 뿐입니다. 에쿠스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라는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당연히 외국에서는 국내에서만큼 잘 팔리지 않죠. 경쟁이 우리 기업과 산업, 그리고 경제를 강하게 합니다. 왜곡된 경쟁심인 질시가 우리 경제의 경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부자의 사회환원 함께 노력해야
질시는 또한 뒤틀린 평등주의를 낳습니다. 교육 얘기입니다. 한국 교육은 지난 십 여 년 동안 뒤틀린 평등주의에 억눌려 왔습니다. 외국처럼, 말하자면 영어로 외국학교처럼 가르치는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대한 규제가 없었다면 기러기들이 이렇게 많이 생겼을까요?

이제 부자들에게 말할 차례입니다. “높은 위치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이제 실천에 옮길 때입니다. 멋지고 뜻 깊게 쓰십시오. 그리고 존경받으십시오.” 록펠러는 번 돈만큼의 욕을 먹었지만, 좋은 데 잘 씀으로써 세인들의 미움을 사랑으로 돌려놓았잖습니까.

한국의 부자들은 기업 돈으로는 활발히 기부하지만, 공익을 위해 자기 돈을 쓰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 기부자 중 연간 1만 달러 이상 고액을 내는 비율이 20%에 이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고액 기부자 기준을 연간 500만원 이상으로 미국보다 약 절반으로 낮춰 잡아도 1만명에 1명꼴에 불과합니다.

우리 사회가 부자들의 사회환원을 위한 체계를 갖추는 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에서 자리 잡은 ‘토크빌 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요. 토크빌 소사이어티는 미국의 사회복지단체가 운영하는 고액 기부 유도 조직입니다. 각 지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는 회장과 위원회, 실무부서로 이뤄집니다. 토크빌 소사이어티는 다양한 행사와 시상을 통해 즐거운 기부문화를 확산합니다. 고액 기부자들에게 돈만으로는 사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해당 지역과 전국의 기부자들과 경험을 나누고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 우수 지회와 회원을 시상함으로써 회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기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부자가 바뀌고, 그래서 부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포브스 코리아>의 한국의 부자 특집에 나오는 인물과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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