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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한류(韓流)는 지금도 흐른다. 한류가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아프리카에도, 중동에도 한류는 사람들 가슴을 적시고 있다. 우리가 만든 영화, 드라마, 노래, 음식 속의 무엇이 그들을 매료시켰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느 날 일어나 보니 한류로 쏟아지는 갈채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한류가 머잖아 소멸할 것이라는 잿빛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한류의 뿌리는 당연히 우리 문화다. 아무리 첨단기법을 동원하고 최신 유행을 따랐다고 해도 대중문화 작품은 결국 우리 문화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우리 정서에서 우려낸 것들이다. 우리 민족은 불교와 유교문화를 들여와서 이를 전해준 나라보다 훨씬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꼭 짚어낼 수는 없다. 문화를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변용하는 지혜를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모든 종교와 사상이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시들지 않았다고 한다. 나름대로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이(異)문화를 흡수하는 여백과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다른 문화와 쉬 어울림은 자신감과 저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확실히 우리 문화에는 품격이 있다. 어떤 문화유산을 봐도 천박하지 않다. 숱한 이민족 문화가 흘러들었어도 그것에 동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문화로 우리 것을 여과시켰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고유와 외래를 섞어 최선의 것들을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섞되 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문화로 빚어낸 한류는 그 빛과 향이 천박하거나 역겹지 않다. 우리 정서가 녹아 있는 한류는 일과성 기류는 아닐 것이다. 묵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김치나 된장, 그 깊은 맛을 세계가 이제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한류는 이제 시작이어야 한다. 천박한 것은 한류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 뒤에 서려 있는 열등감이다.
우리 문화유산과 한류는 별개가 아니다. 서로 피를 대고 있다. 예의와 효도, 그리고 ‘권선징악’의 건강한 윤리도 한류다. 문제는 지금 우리 문화유산을 하찮게 보고 함부로 내동댕이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에 버림받고 겨우내 벌벌 떨고 있는 작금의 씨름판이 하나의 상징이다. 일본의 스모는 국가가 일으켰다. 지금은 세계가 알아주는 일본의 상품이다. 우리네 씨름판은 경제 논리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일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상들은 고졸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는데 우리 사회는 이를 보존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 상징이 국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숭례문이 불타 버린 변고이다. 숭례문 화재는 우리의 문화를 보는 눈이 천박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함부로 굴리고 천대하고 있는 동안 세계는 우리 문화를 흠모하고 있음이 참으로 부끄럽다. 우리 것이 빠진 채 단지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한류’로 포장하는 그날이 온다면, 그것이 우리 민족문화의 위기이며 진정 한류의 종말이 될 것이다.
지난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 내 일본문화’ 특집에서 ‘한류(韓流) 모국, 일류(日流) 선풍’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내에서 번지는 일류 현상을 심층 분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신문은 “일본 내 한류가 ‘겨울연가’로 격류를 탔다면, 한국에서 일류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침투하여 (한국인들에게)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한류가 눈길을 타고 들어가 일본 열도에 화려한 눈꽃을 피웠다면, 일류는 가랑비처럼 소리 소문 없이 내려와 한국인의 정서에 스며들었다는 얘기다.
소리소문 없이 침투해 있는 일본문화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심각하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일류가 위세를 떨쳤다고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일류는 폭넓게, 그리고 깊숙이 우리 문화 전반에 침투해 있다. 출판물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서 그렇지 일본 원작소설은 엄청난 위력으로 출판계를 강타하고 있다. 드라마, 영화에서도 일본 원작의 리메이크가 붐이다. ‘올드 보이’를 비롯해 ‘플라이 대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미녀는 괴로워’ ‘연애시대’ ‘101번째 프러포즈’ 등도 일본 소설이나 만화에서 따온 것들이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일본 소설이나 만화의 리메이크가 왕성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으로도 일류는 문화 전반에 맹위를 떨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문화의 흐름에 애국심을 섞어 그 물길을 바꾸는 시대는 지나갔다. 문화를 개방한 마당에 옛날처럼 왜색(倭色)으로 색칠하여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양질의 ‘원초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제라도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 대중이 한류스타들에 열광하는 현장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콘텐츠 생산 기반과 시스템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일본문화가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대중화되어 가는 유연한 흐름도 잘 분석해 봐야 할 것이다.
일본 원작을 아무리 잘 만들어 일본에 역수출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일본 것 주워 먹기’에 맛을 들였다가는 일류는 가랑비가 아니라 장대비로 내릴 것이다. 원자재와 기술을 지니지 못하면 공산품 하청기지이고, 원작과 창작열을 지니지 못하면 문화 하청기지일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보물 1호 숭례문 하나도 지키지 못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다음에는 무엇이 망실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숭례문의 검은 주검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 대한민국 백성들은 문화국민인가? 당신네 피 속에 스며 있는 문화 원형질은 안전한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흐르는가. 이래저래 봄이지만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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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