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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이 글은 두 경제학자가 벌인 논쟁에 관한 이야기다. 두 경제학자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다. 한 학자는 같은 이론을 고수했다. 다른 학자는 말을 바꿨다. 다른 학자가 졌다. 아니 진 셈이다. ‘진 셈’이라고 한 것은, 우선 둘은 직접 논쟁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 학자의 주장도, 핵심 쟁점 이외의 부분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번복한 이는 누구인가. 또 맞는 주장을 펴고서도 실제와 따로 노는 우를 범한 학자는 누구인가.

장하준 교수의 주장부터 들어보자. 장 교수는 뒤늦게 산업화에 착수한 나라가 산업·무역·기술 정책을 통해 유치단계에 있던 산업을 키우면서 자신보다 앞선 국가를 따라잡았다고 말한다. 그는 따라서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선진국이 과거 채택했던 것과 같은 산업·무역·기술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 2002년에 <사다리 걷어차기>를 써냈다.

이에 앞서 1995년에 크루그먼 교수는 장 교수의 ‘산업·무역·기술 정책’을 ‘전략적 무역정책’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경제학의 향연>으로 번역된 책 <경제학  행상들(Peddling Prosperity)>에서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전략적 무역정책은 실제적인 유용성이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전략적 무역정책의 주장은 개입주의적일 뿐 아니라 국제적 대결의 요소를 포함하는 무역정책을 정당화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무역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일종의 시합으로 보는 것은 통속적 견해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한 개도국의 정책조합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외국 제품이 자국 시장을 잠식하는 탓에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이에 대응해 더 잘할 수 있는 쪽으로, 국제경쟁력이 높은 방향으로 미국의 산업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전략적 무역정책류의 주장이 제기됐다. 그가 도마에 올린 것은 그런 주장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선진국의 전략적 무역정책을 비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이 국제경쟁에서 패배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서처럼 인력수요가 점점 감소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무역에 대한 오래된 논란
잠시 역사를 되짚어보자. 전략적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공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에 가장 먼저 성공한 영국의 스미스는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후발 산업국가였던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는 이에 맞서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한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육성 정책을 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장 교수는 리스트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크루그먼 교수는 스미스가 아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스미스 시대보다 한참 뒤, 영국이 정점을 지나 세계시장에서 밀리게 된 상황에서도 자유무역을 고수하는 영국 학자 역할이다.

논쟁으로 돌아가자. 얼마 전 신문 기고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뒤집었다. 12월 말 <뉴욕 타임스> 칼럼 ‘무역을 둘러싼 고민(The Trouble with Trade)’에서 그는 “1990년대에 제3세계의 대미 수출이 미치는 영향이 처음 쟁점이 됐을 때, 나를 포함한 몇몇 경제학자들은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 않다고 봤다”고 돌아봤다. 이어 “제3세계에서 제조된 상품의 수입이 늘어났다”는 상황 변화를 이유로 들며 “부정적인 영향이 더 이상 작지 않게 됐다”고 썼다. 특히 그는 ‘제조업에 있어서는 무역의 제한이 다수의 미국인에게 이익을 주는 반면 피해를 끼치는 대상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인정했다. 이는 ‘무역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미국이 국제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자신이 조롱한 견해를 수용한 것이다.

무역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면, ‘(승자가 되기 위한) 전략적 무역정책의 실제적인 유용성이 의심스럽다’는 그의 주장도 무너진다. 무엇보다 후발국들이 선진국을 따라잡은 실제 사례들이 리스트와 장 교수의 손을 들어준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바로 우리나라가 수출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해 눈부신 성과를 거두지 않았던가.
 

이젠 선진국이 자유무역 기피
‘사다리 걷어차기’는 리스트가 쓴 비유다. 선진국들이 저희는 전략적 무역정책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간 뒤 그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얘기다. 후발국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장 교수의 주장은 ‘그래서 이젠 사다리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선진국들은 대부분 개발을 진행 중이던 시기에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던 정책을 개도국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양해해 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적어도 “이런 정책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교수가 보기에는 선진국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바람에 개도국이 1980년 이후 전략적 무역정책을 전혀 구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견해와 상충하는 증거가 종종 눈에 띈다. 그 중 하나. 중국은 지난해 11월 철강, 정보통신, 목재 등 산업에 대한 수출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철폐키로 했다. 미국이 중국이 불공정무역을 벌이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압력을 넣자 취한 조처다. 이는 선진국이 사다리를 걷어찬 사례다. 그러나 그 전 단계에서 보면 이 사례는 요즘도 개도국이 사다리를 타고 있음을 드러냈다. 사다리는 없어진 것이 아니다. 개도국이 받쳐놓고 위로 올라오면 선진국은 걷어차는 과정이 반복될 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개도국은 선진국에 접근해 가는 것이고.

장 교수는 또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한다며 비판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80년 이후 개도국 경제가 사실상 성장을 멈췄다고 진단한다. 그의 말이 맞다면 개도국은 현재의 무역체제에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반면 선진국은 현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응수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마침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무역정책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미 대선주자 가운데 자유무역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는 거의 없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이런 공약을 내걸었다. “자유무역을 뒷받침하는 경제이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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