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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최고은(32)씨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이웃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1월 29일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의 이웃집 현관문에는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웃 송모(50)씨는 “최씨가 그전에도 몇 차례 밥과 김치를 좀 달라고 쪽지를 남겨서 갖다주곤 했는데 일이 있어 집을 며칠 비웠다가 돌아와 쪽지를 보고 찾아가 보니 이미 숨진 뒤였다”고 했다.![]()
최씨는 주로 중국 동포들이 살던 월세 20여만 원의 단칸방에서 1년여를 살았다. 기름이 없던 보일러는 작동 안 한 지 오래였고 최씨는 차가운 전기장판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는 먹다 남은 빵 반 조각과 라면 5개가 남아 있었다.
휴대전화는 요금을 내지 못해 끊겨 있었다. 최씨는 정부의 복지 혜택을 받지도 않았다. 안양시청 관계자는 “최씨가 원했다면 최장 6개월까지 쌀, 의료비 등을 무상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최씨는 2007년 ‘영화 엘리트’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뒤 영화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실제 영화 제작까지는 이어지지 못해 최근까지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재학시절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까지 맡았던 단편
‘격정소나타’(2006)가 유작이 됐다. 이 작품으로 그는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오늘의 얼굴상’을 받았다.
경찰은 “부검 결과 최씨의 지병이던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인한 돌연사라는 1차 소견이 나왔다”고 했다. 유가족은 지난 2월 1일 최씨를 화장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2월8일 성명서를 통해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병마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은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이웃에게 음식을 부탁하는 쪽지였다니 말문이 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다”고 밝혔다. 또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고(故) 최고은 작가는 실력을 인정받아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이 작품들이 영화 제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입버릇처럼 되뇌었다는 ‘5타수 무안타’라는 자조적 표현이 고인이 처했던 절망적 상황을 일부나마 짐작케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인 시나리오 작가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 얼마나 열악하기에 작가 최고은씨는 이웃집에 밥과 김치를 부탁하는 쪽지를 남기고 월세방에서 숨졌을까. 우리 영화계에 구조적 문제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가 최근 6년 새 반 토막(2004년 41억6천만원→2010년 21억6천만원) 나면서 영화계 전체가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극장과 투자사, 감독과 배우에 비해 절대적 약자인 시나리오 작가와 조수급 스태프들에 훨씬 더 가혹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한 무명 시나리오 작가는 “내 연봉은 3백만원”이라고 했다. 상업영화 경력이 없는 신인 작가가 운 좋게 영화 제작사와 계약을 했을 때 시나리오 한 편 고료는 대략 2천만~3천만원. 문제는 최근의 불황으로 이런 기획개발비를 부담하던 투자사가 지갑을 꽁꽁 닫아버렸다는데 있다.
제작사는 자체적으로 이 중 일부(가령 3백만원)를 지급하고 시나리오 기획 개발을 시작하지만, 완성된 시나리오가 투자사의 관문을 통과할 확률은 1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이후는 시나리오 개작(改作)의 무한 반복. 신인 작가는 1년 뒤에도 노트북을 두들기지만 그 시나리오가 영상으로 바뀔 때까지 잔금을 받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게다가 창작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작가들은 4대 보험 등 사회 안전망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류형진 연구원은 “촬영이나 조명 분야 조수급 스태프들과 달리 시나리오 작가는 감독급으로 포함된다”고 했다. 최저생계비 수준이지만 그나마 임금 가이드라인이라도 있는 다른 스태프들보다도 못한 연봉의 작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 비극적 상황이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영화계의 불황 때문이다. 2004년 ‘거품’ 소리까지 들으며 40억원대 초반까지 올랐던 평균 제작비는 지난해 21억6천만원으로 반 토막 났다. 특히 광고와 프린트 비용을 제외한 순제작비는 지난해 14억2천만원까지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감독이나 배우의 개런티보다 시나리오 고료와 스태프들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더욱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불황의 그늘 속에서 제작사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투자사가 기획개발비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하면서 도산하는 제작사가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성 인기작가와 유명 감독이 CJ엔터테인먼트ㆍ롯데엔터테인먼트 등 투자배급사와 직계약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신인의 경우는 아예 데뷔 가능성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작가들은 시나리오를 홀대하는 영화계 풍토를 더 근본적 문제로 보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조합 김희재 대표는 “신인이건 기성작가건 작가들은 시나리오를 넘기는 순간 영화의 밸류 체인(value chainㆍ이익 분배구조)에서 소외된다”고 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한국 영화 순제작비 가운데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원가비율은 1.64퍼센트이다.
20.17퍼센트인 배우 출연료의 12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
20억원짜리 영화라면 시나리오의 값은 3천만원을 조금 넘는 셈이다.
이렇게 시나리오가 푸대접을 받는 상황이 인력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금은 충무로를 떠난 전직 영화 시나리오 작가 A씨는 “재능있는 여성 작가들은 모두 충무로를 떠나 방송 드라마 쪽으로 옮겼다”면서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은 자기 시나리오를 갖고 감독 입봉(데뷔)을 꿈꾸는 남자 시나리오 작가들”이라고 했다.
영화산업노조(위원장 최진욱)는 지난 2월 8일 ‘고(故) 최고은 작가를 추모하며’라는 성명을 내고 “영화 인력의 반복되는 실업기간에 영화발전기금으로 실업 부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창작 소질을 갖춘 작가 지망생과 해당 분야 10년 내외의 경력을 보유한 전문가를 대상으로 4대 보험과 지원금 등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영화계와 정부 소관 부처가 이렇게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가운데 인재들은 충무로를 떠나고 있고, 한국 영화의 품질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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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