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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을에 모여 있다. 지난 여름은 실로 덥고 험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아프가니스탄 낯선 하늘 아래 인질로 잡혀있었고, 여름의 끄트머리에서는 ‘가짜인생 쓰나미’가 평화로운 우리 일상을 덮쳐버렸다. 북녘 땅은 홍수로 물에 잠겼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을이 왔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어젖힌 10월은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맑고 고와 보인다. 지난 날이 시리고 아플지라도 우리가 함께 품어 익히면 그 때깔이 고울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축제임이 틀림없다.

10월의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은 곱다. 가을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깝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들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바람 불어와 잎이 흩날리거나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면 고독마저도 달다. 시월에는 바람이, 햇살이, 하늘이, 숲이, 들녘이 그대로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가을은 정녕 축복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신의 축복에 감사하고, 그 축복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 축제를 연다. 그래서인지 가을의 복판 10월에는 갖가지 축제가 펼쳐진다. 이 도시 저 도시, 이 마을 저 마을이 온통 축제 물결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축제 속으로 빠져 들어가, 축제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회를 기억할 것이다. 운동회는 일종의 고을 축제였다. 온 가족이 음식을 싸들고 학교운동장에 모였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가야 했다. 만국기가 하늘 높이 휘날렸고, 운동장 구석구석에는 술과 국밥을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었다. 운동회는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잔칫날이었다. 그 흥취와 열기 그리고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도 학교마다 운동회는 열리고 있지만, 그 분위기가 아무래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놀이와 축제를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눈높이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시장, 군수를 주민이 직접 뽑자 지역축제의 성공 여부가 단체장의 능력이며 업적이 되어 버렸다. 시장, 군수들은 자기네가 판을 벌인 행사에서 광채가 나고 풍악소리 드높을수록 자신의 이름에 빛이 나고 주민들의 칭송이 쌓여간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년 사이에 숱한 축제가 탄생했다. 그 고장의 설화, 비화를 발굴하고 마을의 자랑거리를 모아서 축제 속으로 끌어왔다. 변변한 것이 없으면 그 고장의 이미지에 색칠을 해서 내걸었다.

10월에 열리는 축제를 살펴보자. 도자기, 김홍도, 무술, 대하, 탈춤, 마라톤, 민속, 연어, 인삼, 바우덕이, 송이, 자갈치, 단풍, 음식, 고인돌, 억새, 쌀, 포구, 김치, 하늘, 소리축제에 흥타령, 허수아비, 지평선 축제까지 다양하다. 이렇듯 고을마다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축제가 수도 없이 열리기는 나라를 세운 이래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축제란 것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초등학교 가을운동회처럼 비슷하다. 풍물패들이 흥을 돋우고, 기념식을 갖고, 대회관계자들의 일장 연설이 있고, 난장을 열고, 장기자랑을 하면 끝이다. 재담꾼이나 소리꾼들이 판을 이끈다. 그 고장 출신 스타들의 초청공연을 곁들이면 비단 위에 꽃을 보탠 꼴이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 어느 날 살펴보니 우리 곁에 이렇듯 다양한 이름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축제문화는 아직은 가볍다. 천박하기까지 하다. 생색내기 행사에 어떤 것은 시늉만 내다가 만다. 주민들을 위해 멍석을 깔아놓아도 그 안에서 즐길 만한 놀이가 없다. 소위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말이다.

주민들은 관(官)에서 벌인 굿판에 억지로 끌려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하나 얻어먹고 오는 격이다. 또 축제의 본령인 `감사의 마음'이 빠져 있다. 신이 내린 축복을 서로 확인하는 의식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축제가 끝나면 남는 게 없다. 여운이 없는 행사란 얼마나 공허한가.

나뭇잎 하나가 곱게 물들고 벼이삭 한 알이 충실하게 익어가는 것, 숲 속으로 스며든 햇살이 땅위에 누워 다시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그 작은 것들이 존재의 귀함을 일깨우고 있다. 축제라고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도 좋지만 근원에 대한 성찰도 있어야 한다. 우리 겨레는 신명나게 놀기 위해서 하늘에 경건하게 제(祭)를 지냈다. 아무리 과학을 맹신하는 시대라도 그 뜻을 헤아려봐야 한다.

축제도 이제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다. 축제 한번 잘못 열면 자치단체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축제마다 사람들 마음뺏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 속의 사람들은 하늘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의 무례한 축제가 대자연의 축제를 오염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화려한 불빛과 요란한 소리의 축제가 아니더라도 마음 열고 귀 열면 곧바로 축제 속이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가을날, 대자연의 축제에 우리는 이미 초대받았다. 그러나 모든 기쁨과 쾌락과 환희에는 끝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다. 끝을 알 수 없기에 오늘도 설레며 축제에 초대장을 보내거나 받는다. 우리네 삶도 끝은 분명 있지만 그 끝을 모르기에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황홀하게 세상을 밝히고,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가야 하는 삶과 삶들. 불꽃이 화려하게 치솟아 오를수록 어둠은 깊고 짙을 것이다. 그래 인생도 그 끝을 모르는 축제려니, 모든 스러지는 것들이여, 불을 붙이면 아픔만 남는 설렘이여, 일어나 다시 시작하라. 오늘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술 한잔 권할 힘이 있다면 다시 일어서야 하리.

 이 좋은 가을날,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축제가 열릴 것이다. 상대의 아픔과 슬픔까지 보듬어 익히는 축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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