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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직접 참여해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해 평결하는 ‘국민참여재판’이 2월 중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잇따라 열렸다. 2월 12일과 18일 각각 대구와 청주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대한민국 사법제도 역사상 처음 있은 일이어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모았다.

실제로 12일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윤종구 부장판사)에서 열린 첫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적 관심만큼이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날 재판에서 강도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27)씨는 배심원 12명(예비 배심원 포함)이 참여한 가운데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어 18일에는 청주지방법원 제21형사부(오준근 부장판사)에서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모(28)씨의 재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두 차례 국민참여재판이 치러진 직후 법조계는 대체로 무난한 출발이라는 반응이다. 예상보다 배심원들의 참여도가 높았고, 법원·검찰·변호인 모두 적극적으로 재판에 임한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추세라면 국민참여재판이 빠르게 정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판부, 배심원과 동일한 판결 내려
12일 열린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이날 구속 기소된 이씨는 지난해 12월 대구시 남구 A씨(71·여) 집에 들어가 금품을 뺏으려다 반항하는 A씨를 흉기로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변호인 측은 “이씨가 피를 흘리는 A씨를 병원까지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는 등 우발적 범행인 데다 자수까지 했으니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검찰 측은 “이씨의 사정이 딱하지만 명백한 강도 상해(법정형 7년 이상)이고 법적으로 엄하게 따져 징역 5년 이상을 구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심원단(9명)은 유죄와 함께 검찰측 구형량인 징역 5년형의 절반에 해당하는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에 다수 의견이 모아졌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또 청주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날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전씨는 지난해 12월 친하게 지내던 B씨와 술을 마시다 A씨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이유로 목을 졸라 실신시킨 뒤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배심원단(5명)은 갑상선기능 저하증으로 정신지체 상태에 있고 다소 지적 능력이 부족한 점, 술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자와 다투게 되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피해자 유족들과 합의해 선처를 호소한 점 등을 참작해 검찰의 징역 10년 구형과는 달리 징역 6년으로 의견을 모았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을 선정하는 선정기일 절차, 배심원이 직접 재판에 참여한 공판, 배심원들이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 여부와 양형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평의, 평의 결과를 바탕으로 재판장의 선고 순으로 진행된다. 배심원 선정부터 선고까지 하루에 모든 절차가 이뤄진다.

대구지법은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 후보 230명에게 통지서를 발송했고 당일 87명이 참석했다. 전체 배심원 후보 대상자의 37% 수준으로 당초 법원측의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청주지법은 배심원 후보자 100명에게 통지서를 발송했고 28명의 후보자들이 재판 참여 의사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 도입을 앞두고 진행된 수차례 모의재판 당시 전체 배심원 후보 가운데 10% 정도만 법정에 출석했다. 37%-28%의 참여도는 현재 배심원제도가 정착된 미국의 통계보다 높은 수치다. 역사적인 국민참여재판의 출발이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많아 참여도가 높았다.

달라진 국민참여재판의 진행 모습은 판사, 검사, 변호사 모두 한자투성이의 법률 용어를 남발해 방청석에서조차 재판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기존의 재판과는 달리 까다로운 법률 용어를 가급적 피하고 방청객 누구나 쉽게 사건을 이해할 수 있었다.


28~37% 참여도 미국보다 높아
대구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측은 파워포인트를 통해 범행 당시 현장 사진과 침입 경로를 지도로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을 준비, 배심원들과 방청객들이 사건 내용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변호인은 증인으로 젖먹이에게 젖병을 물린 피고인의 여동생을 불러내 배심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사투리를 사용하며 배심원들과의 친밀도를 호소했다. 검찰은 핏자국이 낭자한 범행 현장과 응급실에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피해자의 사진을 클로즈업해 범죄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청주지법에서도 검찰측은 살해당한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배심원들에게 정의를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을 향한 우려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할 배심원단의 판단이 온정적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공교롭게 두 재판이 모두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다. 두 사건 모두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사실 유·무죄의 판결이 가장 중요한 재판에서 이미 피의자가 사실상 죄를 인정해 두 재판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내렸다. 오히려 검찰이나 변호사측 모두 양형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대구 사건의 배심원단은 논란을 거듭한 끝에 검찰측 구형량인 징역 5년형의 절반에 해당하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에 다수 의견이 모아졌다. 청주 사건의 배심원단 역시 검찰측 구형량인 징역 10년형의 절반가량인 징역 6년형에 의견을 모았다.

배심원단의 의견을 전달받은 재판부는 나란히 배심원들의 판단과 동일하게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재판부는 판결에서 만장일치 결과가 나오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배심원들의 의견이 헌법과 법률에 반하지 않고 재판부가 정해 놓은 범위 내에 있어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배심원들이 ‘법률 전문가’인 재판부의 판단과 다르지 않은 평결과 양형을 산정했다는 점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였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지나친 온정주의’ 우려의 시선도
첫 번째 국민재판에서 이씨를 변호한 전정호 변호사는 동정심을 호소하는 전략에 대해 “배심재판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 변호사는 “배심원 후보자들의 관상을 보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골라주는 컨설턴트도 있다”며 “배심원들이 전원 일치로 집행유예를 결정하면 재판부가 묵살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데 치중했다”고 말했다.

함윤근 대검 공판송무과장은 “모의재판에서도 배심원단의 양형이 직업법관보다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며 “양형에 관한 감각이 직업법관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근 청주지법 부장판사는 “3월 청주지법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예정돼 있다”며 “사회적으로 폭넓은 경험을 가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오세욱 광주지법원장은 냉철한 비판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배심원제 도입의 의미는 크지만 시행상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상당한 시련을 담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무죄 선고된 미국 ‘OJ심슨’ 재판 결과가 국내 배심원제에서 재현된다면 모두가 승복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재판장 좌우측으로 검사와 변호사가 마주 보고 피고인은 재판장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법정 배치와는 달리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이 변호인과 함께 검사의 맞은편에 동등한 위치로 마주 보도록 배치된다. 배심원석이 검사 뒤쪽에 위치해 변호인은 배심원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변론을 할 수 있지만 검찰측은 배심원의 옆모습만 볼 수 있어 표정을 제대로 살필 수 없다.

또 검찰은 최후변론 순서가 검찰→변호인→ 피고인 순으로 정해져 있어 배심원단이 마지막 순서인 피고인 측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배심재판에서는 검사가 마지막으로 나서지만 우리의 배심재판은 검사의 마지막 논고를 재판장 재량 사항으로 두고 있다.

재판 일정이 단 하루라 배심원 선정의 기준과 절차에서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검사나 변호사들의 배심원의 자질에 대한 사전 평가나 심사도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있다.


 

배심원들 적극적 참여 제도정착 희망 보였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윤종구(대구지법 부장판사)

“우리나라 국민 수준과 관심이 높아지면서 배심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는 새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준 것입니다.”

국내 사법사상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주관한 대구지법 제11형사부 윤종구 부장판사는 “재판다운 재판이 된 것 같다. 배심원들의 참여도가 상당히 높았고 검사와 변호인, 증인 모두가 적극 참여해 배심원과 방청객들이 재판을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첫 국민재판에서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이 내린 평결이 사실상 그대로 반영됐다. 윤 판사는 “배심원 평결 과정에는 재판부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배심원단의 결정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았고 양형의 허용 폭 내에 있었기 때문에 배심원단이 제시한 형량을 재판부가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국민참여재판을 두고 법률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피고인 형량까지 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윤 판사는 이에 대해 “기존의 일반 형사재판의 경우에도 판사들은 피고인에 대한 적정 양형을 판단하기 위해 비법률전문가인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이 같은 비공식적인 절차를 공식적인 절차로 바꾼 것이어서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윤 판사는 1940년대에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으나 국민의 참여도가 낮아 제도를 폐지한 바 있는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그는 “국민참여재판 과정의 대부분은 배심원을 선정하는 절차가 차지하기 때문에 재판부보다는 법원 일반 실무진들에 대한 지원이 대폭 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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