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성지순례는 신앙인에겐 그지없이 숭고한 일이다. 스스로의 신앙심을 북돋운다. 그동안의 신앙생활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지순례가 해당 종교를 가진 이에게만 귀한 일은 아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는 이웃 종교의 성지를 탐방함으로써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어쩌면 종교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묻게 되고, 종교 간 화합의 중요성을 절감하기도 한다. 행하는 의례와 의식은 다르지만 모든 종교는 나를 포함한 인류의 평화와 행복, 공동선의 실현 등 궁극적 목적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동지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깨닫는 게 이웃 종교 성지순례다.
국내 7개 종교 지도자들의 협의체인 사단법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지도자들이 이웃 종교 성지순례에 나서 관심을 모았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2010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 이웃 종교 체험 성지순례’다. 성지순례를 통해 이웃 종교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이번 성지순례는 최근 종교 간 불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의미가 더 컸다. 늘 일정이 빠듯한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해외의 이웃 종교 성지를 순례한다는 것도 뜻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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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부터 16일까지 이스라엘과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등 기독교 성지를 찾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지도자들의 성지순례에 동참했다. 순례에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의장이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이광선 목사, 대한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천주교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성균관 최근덕 관장,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등 6명의 지도자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운영위원 등이 함께했다.
12월 9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순례단은 11시간여의 긴 비행 끝에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0일 첫 순례지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의 성지가 모여 있는 예루살렘성.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던 그 길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시장통 골목인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쓰러진 곳 등 관련된 기념장소 14곳으로 구성됐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순례단은 십자가를 진 예수의 의미를 생각했다.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을 찾은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벽에 손이나 이마를 대고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한양원 회장은 순례 도중 사진을 찍으려는 세계 각국 사람들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종교 간 화합을 위해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순례에 나섰다”는 말에 그들은 하나같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한 회장의 ‘인기’는 순례 기간 내내 가는 곳마다 이어졌다.
마영삼 주(駐)이스라엘 한국대사에게서 이스라엘의 종교정책, 종교 간 갈등 상황 등을 들은 지도자들은 종교 간 대화와 평화의 중요성을 거듭 되새겼다. 성지가 모인 예루살렘은 그 이름처럼 평화로운 도시여야 하지만 사실은 종교·민족갈등으로 가장 평화가 필요한, 긴장감이 팽팽한 곳임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 긴장감은 지도자, 운영위원들이 종교 화합방안을 논의하는 대화로 자연스레 이어지기도 했다.
지도자들은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산상수훈(설교) 현장인 팔복교회,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떡으로 5천명 이상을 먹였다는 오병이어교회, 예수가 성장한 나자렛 마을,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지 등을 둘러보면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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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늘 함께한 예수가 왜 이 땅에 왔는지, 예수의 삶을 따르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성경 속 현장을 체험했다.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최고랍비위원회의 최고 랍비 요나 메츠거와의 환담이었다. 랍비위원회와의 만남을 통해 지도자들은 종교 간 대화의 중요성에 의견일치를 봤다. 메츠거 최고 랍비는 “종교 간 갈등은 예민한 문제이자 해결도 쉽지 않은 분야”라며 “종교 지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순례를 함께한다니 매우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12일 오후 이스라엘을 떠난 순례단은 13일 로마 시내의 성지와 유적지를 돌아본 뒤 로마 교민들을 만찬에 초청해 이국 생활을 위로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북돋웠다. 14일에는 이탈리아 중부지방 아시시를 찾았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신앙의 길을 택해 ‘가난 속에서 부유함’을 추구하고, ‘가장 낮아짐으로써 가장 높아진’ 프란체스코 성인의 뜻을 알기 위해서였다. 프란체스코수도회 창설자인 그의 삶과 정신은 전 세계 프란체스코수도회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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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중세도시 아시시는 세계종교지도자회의가 열리는 등 세계 평화와 종교간 평화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순례 마지막 일정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와 환담, 교황 베네딕토 16세와의 만남이었다. 15일 순례단은 교황청을 방문해 종교간대화평의회 피에르 토랑 의장(추기경) 등을 만나 종교 간 대화와 평화의 가치, 의미, 중요성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토랑 의장은 순례단에게 이웃 종교 성지순례가 종교 간 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환담을 마친 순례단은 곧 교황을 만났고, 일정상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종교 간 화합을 유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해나가야 할 일이다. 순례를 마친 종교 지도자들은 “이번 순례가 우리 사회의 종교 간 화합과 상생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번 성지순례처럼 이웃 종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종교 간 화합에 분명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글·도재기(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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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