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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진 콜롬비아-에콰도르 간 분쟁이 남미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 전체 이슈로 확산된 가운데, 남미의 대국 브라질이 드디어 스스로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남미 맹주(盟主)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는 몸짓을 시작한 것이다.

사태의 단초는 이렇다. 지난 2월 말 콜롬비아 정부군이 지상 공격과 공중 폭격을 감행, 에콰도르에 은신 중인 좌익 게릴라 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2인자이자 대변인인 라울 레예스(본명 루이스 에드가르 데비어 실바·59)를 비롯해 17명의 게릴라를 살해했다.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국방장관은 지난 3월 1일 “FARC 최고지도자 마누엘 마루란다의 후계자로 거론돼 온 레예스가 우리 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술 더 떠 “정보원을 통해 레예스의 위치를 확인하고 육군과 공군 그리고 경찰이 기습 공습을 가한 데 이어 육상공격을 전개하면서 에콰도르 영토에서 그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게 무슨 얘긴가. 콜롬비아 국방장관 스스로 남의 나라를 침범한 사실을 공표한 것 아닌가. 에콰도르 정부가 분기탱천한 것은 당연한 이치. 에콰도르 군이 콜롬비아와의 국경지대에 병력을 전진 배치한 데 이어,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콜롬비아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나타냈다. 졸지에 남미 일원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차베스-부시 대응 사태악화
사태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개입하면서 더욱 악화됐다.
차베스는 지난 3월 2일 콜롬비아를 강력 비난하고 탱크와 10개 대대병력(6천여명)을 베-콜 국경 지대에 긴급 배치하는 한편, 공군에 비상출동태세를 명령했다. 에콰도르와 군사동맹 관계에 있고 FARC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 온 차베스로서는, 콜롬비아 군의 에콰도르 영토 침입과 FARC 소탕을 자국에 대한 침공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엉뚱하기는 부시도 마찬가지였다. 부시는 지난 4일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좌익 게릴라 토벌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온 당신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FARC 캠프를 공습하는 데는 미국 정보기관의 지원이 컸다”는 오스카르 나란호 콜롬비아 경찰총장의 발언으로 미국이 남미의 지역구도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나란호는 이어 “콜롬비아는 미국 연방기관들과 매우 단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콜롬비아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도 몇 주 전 미국 정보기관이 FARC의 2인자 라울 레예스가 위성전화를 사용하고 있고, 그 신호를 추적하면 그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고 콜롬비아 측에 언질을 줬었다고 AFP통신에 털어놨다. 유추하자면,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국의 위성감시 시스템이 FARC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면서 콜롬비아에게 정보를 넘겨주었다는 정황이 그려지는 것이다.

콜롬비아-에콰도르 간 갈등으로 시작된 사건은 철천지 앙숙인 차베스와 부시의 개입으로, 미주 대륙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브라질의 활약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사건 발생 초기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넬손 조빙 국방장관과 셀소 아모링 외무장관에게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3국과 접촉을 갖고 중재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기실 룰라는 우리베, 차베스, 코레아 등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갈등 중재를 위한 가장 적임자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코레아가 브라질을 방문해 이번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3대 조건을 룰라에게 제시함으로써 룰라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렇게 되자 룰라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룰라는 부시나 차베스를 ‘불쏘시개’로 간주해 이들이 끼어들면 사태 해결은커녕 분쟁이 다극화돼 남미권, 나아가 국제문제화되면서 더 복잡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이들의 개입을 봉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예 부시와 차베스의 훈수조차 외면하고 있다. 사사건건 대립해 온 두 정상이 개입할 경우 사태 해결에 짐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룰라, 분쟁조정 적임자로 입지 강화
이 같은 정황은 사태 발생 이후 차베스가 룰라와의 전화대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룰라가 의도적으로 피해 온 데서도 알 수 있다. 또 콜롬비아-에콰도르 분쟁은 어디까지나 양국 간의 문제라는 점을 잇따라 강조하면서 미주기구(OAS) 차원의 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개입에 대한 불쾌감의 우회적인 표시다.

결국 미국도 브라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경제·통상·에너지 협력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13~15일 브라질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룰라에게 양국 간 분쟁과 관련, 조정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사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선 브라질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이와 관련, 한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는 “룰라가 부시와 차베스를 이번 분쟁에서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미 전역의 안보정책을 조율하고 개별 국가 간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남미안보협의회’ 창설을 주도하고 나섰다. 국방장관 조빙은 지난 3월 6일 “콜롬비아-에콰도르 분쟁에서 볼 수 있듯이 향후 예상되는 남미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고 남미 지역의 안보정책을 통합적으로 다루기 위해 남미안보협의회를 창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룰라도 이틀 전인 4일 상파울루주 캄피나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남미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을 중재하기 위한 남미안보협의회 창설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룰라는 이의 관철을 위해 조빙을 특사로 지난주부터 남미 대륙 12개국을 순방시키고 있다. 상반기 중 남미 각국 순방을 통해 협의회 창설에 관한 논의가 마무리되면 9~10월 중 브라질리아에서 협의회 창설을 위한 첫 모임이 이뤄질 것이다.

2002년 말 취임 초부터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부시에게 할 말은 하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던 룰라는, 콜롬비아-에콰도르 분쟁을 계기로 남미 맹주 등극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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