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보급된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은 이미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7월 17일 오전 한글로 된 교과서로 찌아찌아어를 가르치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바우바우시의 까루야바루 초등학교를 찾았다. 도심에서 승합차를 타고 20여 분 달려 찌아찌아족이 사는 소라올리오 지구에 도착하자 유일한 찌아찌아족 한글교사인 아비딘 씨(33)가 만들었다는 한글 도로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날 훈민정음학회에서 파견 나온 한국인 교사 정덕영(49) 씨는 올해부터 한글 교육을 받을 이 학교 4학년 A, B반 학생들에게 첫 수업을 했다.
학교 건물 왼편에 있는 50제곱미터 남짓한 넓이의 작은 교실로 들어서자 정 씨가 인도네시아어와 찌아찌아어를 섞어가며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44명의 학생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역, 니은, 디귿, 리을’을 써나가는 정 씨의 손끝을 주시했다. 
책걸상이 부족한 탓에 의자 2개를 붙여 3, 4명의 학생이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다소 불안해 보였지만 정 씨가 쓴 글자를 노트에 꾹꾹 눌러 받아쓰는 학생들의 눈빛에서는 열 살짜리 아이들답지 않은 열정이 엿보였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글로 된 이름표를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은 한글을 처음 접한 탓에 정 씨와 취재진이 일일이 이름을 써줘야 했지만 예닐곱 학생들은 A4용지를 3등분한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냈다.
‘이안’이라고 쓰인 이름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 씨의 도움을 기다리는 옆자리 학생들 사이에서 의기양양해하던 한 소녀는 “이웃에 사는 사촌 언니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자랑했다. 자신의 이름표를 일찌감치 만들어놓고 급우들을 도와주던 누르살마(10) 양은 “5학년인 동네 오빠의 교재를 보고 혼자 한글을 깨쳤다”고 말했다.
정 씨는 “1년간 한글을 배운 5학년 학생의 99퍼센트가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완벽히 표기하고 읽을 줄 안다”면서 “한글이 워낙 배우기 쉬워 ‘반나절 문자’라고들 한다.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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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인 7월 19일에는 한글과 함께 한국말도 가르치는 제6고교 2학년 교실을 찾았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키가 큰 학생이 교실 앞으로 나가 한국말로 “준비됐나요?” 하고 외치자 학생들은 “파란 하늘 하늘색 풍선은 우리 맘속에 영원할 거야∼”로 시작되는 가수 god의 노래 ‘하늘색 풍선’을 부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발음은 1년간 배운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했다.
자신을 “까루야바루에 사는 누리안또”라고 한국말로 소개한 키 큰 학생은 취재진을 학교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더 익히려는 듯 집으로 향하는 내내 쉴 새 없이 서툰 한국말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한국에 가고 싶다’ ‘저는 한국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에 살고 싶어요’라고 쓰인 메모지들이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나무 벽 곳곳에 붙어 있었다. 좁은 방 안에는 어두운 밤에 겨우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불빛이 약한 전구 하나가 켜져 있었다.
그는 이 방에서 같은 반 친구인 삼시르에게서 빌린 사전과 얼마 전 다른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교재로 매일 밤늦게까지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어렵게 느껴져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지만, 삼시르가 지난겨울 서울시 초대로 한국에 다녀온 뒤 자랑을 늘어놓아 마음을 바꾸게 됐다는 사연도 들려줬다. 그의 꿈은 언젠가 한국 여행업체에서 일하는 것이다.
글·안홍석(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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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