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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얼짱’ 여총리 율리아 티모셴코가 러시아에 대해 자국을 통과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통행료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자, 유럽 전역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6년 이후 연례행사처럼 있어 온 가스밸브 폐쇄로 겪었던 혹한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 때문이다.

티모셴코는 1월 23일 각의를 마친 후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으로부터 수입하는 가스 값은 3년 동안 무려 세 배 이상 올랐지만,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에 수출하는 러시아 가스 통행료는 제자리 걸음이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3년째 혹한 속 월동 불안
우크라이나는 가즈프롬으로부터 가스 1000㎥당 180달러에 사들이고 있다. 2005년 50달러에 견주면 3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가즈프롬에 부과하는 가스 1000㎥의 통행료(100㎞당)는 2005년 1.09달러에서 현재 1.70달러로 미세하게 올랐을 뿐이다.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 국영가스회사 나프토가즈는 가스 통행료를 지금의 5배가 넘는 1000㎥당 9.32달러로 인상하려 한다고 전하고 있다.

유럽이 티모셴코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것은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통해 가스 소요량의 4분의 1인 연 1200억㎥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가스 통행료 인상 문제로 논란을 벌이다, 우크라이나로의 가스공급을 일시 중단하는 바람에 애꿎게도 유럽이 가스난을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었다.

작년 1월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그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로 가는 가스 공급을 모두 차단했다. 작년 8월엔 벨로루시가 가스 값 인상분을 내지 않는다면서 러시아가 또 한 차례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그 정도는 약과다. 러시아는 최근 유럽에 대한 에너지 장악력을 확실히 높이기 위해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름하여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프로젝트’. 러시아로부터 유럽 각국까지 수천㎞ 길이의 가스관을 건설하는 공사다.

가스프롬은 1월 18일 불가리아와 147억 달러 가스 가스관 건설에 합의했다. 불가리아는 러시아 가스가 흑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러시아~불가리아~루마니아~오스트리아~북부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제1코스, 러시아~불가리아~세르비아로 이어지는 제2코스, 그리고 러시아~불가리아~그리스~남부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제3코스가 모두 불가리아를 경유하고 있다.

이어 러시아는 1월 22일 세르비아 정부와 22억 달러에 △거대 가스관 건설 △세르비아석유공사(NIS)의 주식 51% 매입 계약을 맺었다. 세르비아 북부에 거대 가스 저장시설이 완공되면 러시아는 이를 유럽 에너지 공급 거점으로 활용하게 된다.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지 않고도 세르비아 저장고의 가스를 제1코스와 제3코스를 통해 유럽 전역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합의로 러시아는 대(對) 유럽 에너지 공급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고, 세르비아는 자국 내 유엔 자치주인 코소보의 분리 독립을 막는 데 필요한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유럽연합(EU)에겐 달갑지 않은 메뉴다. 유럽은 겨울만 되면 괜한 몽니를 부려 혹한에 떨게 하는 러시아를 불안한 에너지 공급처로 간주, 자체 가스관 건설을 추진해 오고 있다. 특히 작년 1월 가스와 원유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은 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추진해 왔다. 현재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는 25%, 석유 의존도는 나라에 따라 최대 3분의 1에 이르는 실정이다.







‘사우스 스트림’에 유럽은 불쾌
그 일환으로 EU가 미국과 함께 추진하는 공사가 ‘나부코 가스관 프로젝트’다. 이란~그루지야~터키~불가리아를 거쳐 오스트리아까지 3300㎞의 가스관을 건설하는 계획이다. 2012년까지 1단계 공사를 마무리하고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문제는 재원 마련, 추진 의지 부족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거기다 사우스 스트림 사업에 속도가 붙으면, 자체 가스관 건설은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더 커진다. 이런 이유로 세르비아가 러시아와 가스관 건설에 합의한 데는 EU의 잘못도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반성 여부에 관계없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는 전부터 용의주도하게 차근차근 진행돼 왔다. 작년 6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스 생산국들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식의 카르텔을 구축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이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푸틴의 발언은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가 5월말 테헤란을 방문한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안보위원장에게 가스 OPEC를 만들자고 제의한 뒤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러시아와 이란은 세계 1, 2위 가스 매장 생산국으로, 여기에 알제리를 합칠 경우 전 세계 가스 공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게 된다. 이 밖에 노르웨이, 리비아 및 이라크도 주요 가스 생산국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가스 OPEC가 만들어지면 모로코와 베네수엘라도 회원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러시아는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블루 스트림 가스관 프로젝트’와, 그리스 알렉산드루폴리스를 잇는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이탈리아~불가리아~유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 등을 추진 중이다. 게다가 이들 에너지 공급 루트를 보호하기 위해 지중해 지역의 해군력까지 증강시키고 있다. 또 벨로루시를 우회해 발트해의 주요 석유 수출항으로 향하는 새로운 송유관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인데 이 송유관이 건설되면 석유 공급국으로서 러시아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앞서 러시아 주도로 작년 2월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러시아, 중국, 인도 등 3개국 외무장관이 회동, 에너지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단순한 에너지 협력 방안이 아니라 미국 일극체제 하의 세계 역학구도를 에너지를 통해 다극화하려는 러시아의 속셈이 내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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