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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표 밀가루’라는 게 있었다. 젊은 세대들은 생소하겠지만 중년층 이상 연령층에겐 지금도 익숙한 이름이다. 악수하는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그려진 마크가 찍힌 부대에 담긴 밀가루를 일컫던 말이다. ‘공법480호(Public Law 480)’로 불리던 미국의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에 따라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제공됐던 구호물자 중 식량 품목이었다.

‘PL480’은 미국이 자국 농산물 가격을 적정선에서 유지하면서 농산물 수출을 진흥하는 한편 저개발국의 식량부족을 덜어주기 위해 1954년 법제화됐다. 우리나라는 55년 협정을 체결해 이듬해부터 원조를 받기 시작했다.


‘한강 기적’의 동력이었던 ODA
원조는 밀가루만이 아니었다. 분유·옥수수가루도 있었고 구제품이라는 이름의 옷도 있었다. 일부 학교의 신축 교사(校舍) 기둥과 디젤 기관차에도 ‘악수표’가 찍혀 있었다. 이른바 전략물자 공급을 규정한 PL480 3항에 의거한 지원이었다. 이 원조는 25년간 지속되다가 1981년에 끝났다.

미 국제개발법(AID)에 따른 차관은 유상원조로 돈 가뭄에 시달리던 우리에겐 ‘단비’ 같은 존재였다. 1959년 첫 개발차관으로 동양시멘트가 설립된 이래 많은 사업이 AID차관으로 시행됐다. 지금 한창 재건축 중인 서울 삼성동 AID아파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AID차관으로부턴 36년 만인 1995년에 졸업했다.

흔히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요인으로 우리 민족의 근면성과 지도자의 리더십을 꼽지만, 선진국과 국제기구로부터 받은 공적개발원조(ODA)도 적지 아니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우리가 받은 ‘ODA’는 유상 262억 달러, 무상 69억 달러 등 331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가 원조 수원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1987년이다.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300억원의 정부출연금으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설립한 것이다. 이 기금은 수출입은행을 통해 개도국에 지원됐다. 무상원조 집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출범한 것은 4년 뒤인 1991년이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하지만 국가 위상이나 경제규모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여도는 상당히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의 국민순소득(GNI) 대비 ODA 비율은 평균 0.3%.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0.05% 선에서 오락가락했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올해 ODA 예산 규모를 1조85억 원으로 확정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는 동시에 GNI 대비 0.107%로 0.1%를 돌파했다. 작년의 6460억원에서 무려 56.1%가 늘어난 규모다. 체면은 섰지만, 평균에 진입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참고로 다른나라 ODA규모를 살펴보자. 2006년 기준으로 나라별 ODA 규모는 미국이 227억3900만 달러로 최고액을 자랑하고 있다. 다음으로 △영국 126억700만 달러 △일본 116억800만 달러 △프랑스 104억4800만 달러 △독일 103억5100만 달러의 순이다.

GNI 대비 ODA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1.03%)이었고, △네덜란드(0.74%) △포르투갈(0.63%) △일본(0.25%) △호주(0.25%) △그리스(0.23%) △미국 0.17%이 다음을 이었다.

ODA는 그 나라의 국가 위상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이자, 국제사회에서 그 나라의 발언권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사실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대외원조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2000년 유엔총회에선 밀레니엄개발목표(MDG)를 선언으로 채택했다. 이어 △로마선언(2003년) △마라케시각서(2004년) △파리선언(2005년)으로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은 원조효과성 제고를 위한 국제사회의 파트너십 강화와 공동노력을 촉구하고, 국제사회의 ODA의 질적 개선을 위한 구체적 기준과 지표를 설정했다.


한국,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
최근 국제개발협력의 패러다임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개도국의 빈곤퇴치에 초점을 둔 MDG를 실현하기 위해 ODA 배증계획은 물론 결과중심의 사업관리체제를 강화함으로써 개도국에 대한 실질 지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앞서도 살폈듯이 우리는 국제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라다. 그런 만큼 개도국의 빈곤퇴치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기여해야 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무가 막중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ODA가 단순히 수원국만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장기 투자라는 점이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들 국가로부터 석유·가스 등 대부분의 필수자원을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개도국과의 안정적·호혜적 경제협력 달성이야말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베트남, 캄보디아 같은 나라는 우리의 적극적인 ODA 지원으로 각종 친한 정책으로 우대해 줄 정도다.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ODA 규모의 지속적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잡다하게 펼치기보다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려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능동적 세계화를 위한 선제적 투자의 일환으로 2015년까지 GNI 대비 ODA 비율을 0.25%까지 확대키로 했다. ‘소액 다국형’ 원조 방식에서 대륙별 중점지원 대상 국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전환 중에 있다. 아울러 비정부기구(NGO), 기업, 대학, 지자체 등과의 연계를 강화해 국민참여형 원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이 같은 전략이 총체적으로 시너지를 이룬다면 우리나라가 지구촌의 모범 공여국으로 우뚝 설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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