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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vs 안병직 ‘국민통합’ 소통의 자리



 

안병직 : 한국 사회의 진로는 1987년의 6·29선언과 1990년 전후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로부터 어슴푸레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그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했다고는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여러 면에서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말고는 달리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하여 동의할 수 있다면, 현재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념적 갈등은 그 탈출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백낙청 : 저는 ‘정통성(Orthodoxy)’이라는 표현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정당한 귀속감을 요구할 만한 ‘정당성(Legitimacy)’을 갖고 있느냐는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다분히 기형적으로 출발을 했는데도 이런저런 곡절을 거쳐 안 교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1987년 이후에 보니까 민주주의도 어느 정도 달성하고 경제도 계속 발전하는 꽤 멀쩡한 나라가 되었단 말이죠.

물론 결함도 있고 여러 가지 비판과 성찰을 해야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 적(籍)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일단 내가 귀속한 국가이고, 이를 전제로 활동해야 된다는 점에 저를 포함한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동시에 분단으로 인한 결손국가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손국가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어떠하고 앞으로는 어떠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병직 :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사회라 그 실상을 잘 모른다 해도 큰 지표만 가지고 봤을 때 자기 내부적 힘만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사회입니다. 북한의 계획경제는 생산의욕을 제대로 자극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물을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농민의 개별경영이나 중소상공업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농민의 개별경영이나 중소상공업의 부활은 자연히 개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은 사실상 제대로 된 개혁마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설령 북한이 개혁·개방을 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을 독립적인 정치경제 단위로 묶어두지 않는다면 억제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과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북한 주민의 주권(主權)은 상실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북한의 재건에 있어서 한국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객관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이 북한을 바로 흡수통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백낙청 : 북한의 재건을 위해 대한민국이 큰 역할을 하되 흡수통일은 곤란하다는 안 교수의 주장은 저의 남북연합 주장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개혁·개방을 통해서건 다른 방법을 통해서건 북한 경제의 독자적 회생은 어렵겠다는 주장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중국이나 베트남식의 개혁·개방이 북한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 봅니다.

지금 안 교수께서도 대한민국이 주도해서 이 문제를 풀어가되 북한이 독립된 정치 단위로 남아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어요? 그것이 독일식 통일과 다른 방식이고, 저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남북 국가연합입니다.

국가연합이란 것은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속하지만 완전히 분립한 상황은 아니고 둘 사이에 상시적인 조절장치를 둔다는 얘기거든요. 그런 것이 있어야지, 그런 장치도 없이 대한민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봅니다.
 

안병직 : 1987년 이후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달성한 대한민국을 두고 보면, 대한민국의 형성 과정에 부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식민지적 폐허 상황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기초로 하는 헌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점에 있어서는 대량의 살육을 동반한 민족적 비극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6·25사변이에요. 6·25사변이 있었기 때문에 남북 공히 국민군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배경으로서는 경제개발에 있어서 수출지향적 공업화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1987년의 6·29민주화선언에 있어서는 민주화세력의 공로가 컸습니다. 하여간 한국 현대사의 전개는 매우 복잡한 것이라 산업화나 민주화의 한 측면에서만 보아서는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을 아우르는 국민통합적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백낙청 : 사회통합을 하려면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통합된 인식을 가져야 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봐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과 이승만 시대는 구분해서 봐야 될 것 같아요. 박정희 씨의 경우는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에 대해 이걸 어떻게 활용하겠다든가 저항하겠다는 전략이 있었는데, 이승만 씨는 그런 게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물론 1950년대 나름의 성취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한 공로로 돌릴 일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이 강압적이고 대단히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가진 채로나마 국가로서의 기틀을 어느 정도 잡은 것은 박정희 시대 들어와서라고 봐요. 이 경우에도 박 대통령 개인과 박정희 시대를 동일시하는 건 경계해야겠지요.

그의 공로 중 하나는 안 교수 말씀대로 대외개방적인 경제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일 겁니다. 당시 운동권의 주된 입장은 소위 내포적 경제발전론이었는데, 그에 비해 과감하게 수출전략을 쓴 것은, 범박하게 가부를 따진다면 그 시점의 한국으로서는 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병직 : 한국의 선진화정책에 있어서 핵심은 교육정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선진화를 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물질적 선진화만 가지고는 될 문제가 아니고, 우리 국민의 의식과 지적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야 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들을 확보하는 직접적 방법이 바로 교육이지요.

그리고 생활로서의 민주주의를 확실하게 정착시키기 위해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실현이 시급합니다. 다른 하나는 정당의 자율적 운영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대권과 당권을 완전히 분리해서 누가 정권을 잡든지 당이 완전히 자율성을 갖게 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시급한 과제입니다.

지금부터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복지정책을 좀 더 충실히 할 때라고 봅니다. 복지정책은 반드시 사회주의정책이 아니고, 한국 사회가 이미 크게 성숙했기 때문에 복지정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이 복지정책이 국민들의 자유를 제약한다거나 국민들의 사회에 대한 의존성을 기르는 방향으로 실시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한국 사회는 이미 선진국적인 측면이 농후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발전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사상의 중심축을 이루고 그 양쪽으로 극우나 극좌도 포진하는 사상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이 경우에도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국민에서 배제하려는 반공주의나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종북주의는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 교육의 중요성이라든가, 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한다든가,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해야 한다든가, 복지국가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라든가, 사상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자는 말씀 또한 저로서도 아주 공감하는 얘기들입니다.

저는 시민사회가 참여할 여지와 공간이 생기는 과정이 우리의 국내 개혁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또한 지방자치란 것이 단순히 정치나 행정적인 권한을 분권화하는 것만이 아니고 사회복지적인 측면이 있지만, 앞으로는 ‘일극 체제에서 패배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구원 수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지방이라는 것을 언제까지 우리가 영원한 복지의 수혜 대상으로만 봐야 하나요? 그런 게 진정한 선진사회는 아닐 겁니다. 제대로 된 선진사회는 지방이 독자적으로 세계에 대해 경쟁력을 가지고 유대를 맺고, 그래서 수도권이 대체할 수 없는 독자적인 경제권, 생활권을 이룬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지방 살리기라는 게 지방이 중앙에서 하나를 더 얻어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방은 지방대로 별도의 세계화, 지역화를 할 수 있는 적극적인 관점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리 및 사진·박영화(시대정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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