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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장소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감옥에 새겨진 문구다. 이처럼 나치 전범에 대한 유럽인들의 단죄는 가혹했다.
실제 프랑스는 민족과 나라를 배신하면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종전직후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유럽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도 나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공소 시효를 없애가면서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관련자들을 색출해 처벌하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한반도에서도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시도했다. 제헌 국회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49년 8월 폐지됐다. 이후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전도된 가치관이 진리인 양 존재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참여정부는 출범 후 대통령 직속으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를 만들었다. 과거 실상을 밝히고, 민족과 나라를 팔아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들까지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58년 만에 국가귀속 … 친일 재산 환수 첫걸음
반민특위가 와해된 지 58년 후 친일청산의 첫 가시적 성과가 나타났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지난 5월 2일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반민족 행위자 9명의 소유 토지 154필지, 25만4906㎡, 공시지가 36억 원 상당의 친일재산에 대해 국가귀속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이날 국가귀속 결정의 대상자들의 토지가 토지조사사업(1910~1918년)과 임야조사사업(1916~1924년) 기준으로 모두 3994만6266㎡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번 귀속결정을 내린 토지는 전체의 0.64%.
재산조사위원회 김창국 위원장은 “이번 첫 국가귀속결정은 1949년 반민특위가 와해되고 활동이 좌절된 지 58년 만에 얻는 친일청산의 첫 가시적인 성과인 만큼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라며 “이미 환수대상이 된 인물들의 경우에도 추가 조사를 통해 친일재산이 확인되면 추후 귀속결정을 추가로 내릴 수 있으며 다른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해서도 절차를 밟아 국가귀속 작업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산의 양은 크지 않지만 그 의미는 중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환수 대상이 된 친일재산은 러일전쟁 시작(1904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 등이다.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주고 취득한 경우는 제외됐다.
귀속이 결정된 재산을 재정경제부에 통보해 국가 명의로 등기한 뒤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 및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에 우선적으로 쓸 계획이다.

“친일 규명·단죄 어렵지만 해야 할 일”
친일파 재산환수는 무려 58년이나 걸릴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사위 위원들의 활동도 그만큼 어려웠다. 물론 토지대장을 모두 조사하면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재산조사위의 경우 전체 인원은 104명. 이 가운데 조사인원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이 인력으로 전국에 흩어진 땅을 답사하고 사람을 만나고 조사해야 한다. 물론 토지대장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직원들이 손수 열람하고 복사를 해야 한다. 하는 일이 대부분 막노동 일이다.
또한 처음에는 관할구청 등과의 업무협조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홍보가 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초창기에는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다”고 이우형(40) 조사관은 술회했다.
자료 찾는 일도 만만찮다. 국회도서관, 중앙도서관에서 일일이 자료를 찾아야 하고 개인 내력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재산이 누구에게 갔는지, 왜 갔는지를 조사하는 일에 경찰 못지않은 수사관이 돼야 한다. 피와 땀과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적 사명감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몇 차례 걸쳐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많다. 이 가운데 일본인 명의로 된 토지도 정리 안 된 채 남아 있다. 여기에 당시 창씨개명을 한 친일파 재산이 남아 있을 개연성이 높다. 가계도를 만드는 작업도 수월치 않다. 일제시대 만든 인명록을 기초자료로 주소를 찾아 발급 요청을 하면 초기에는 30% 정도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전쟁 도중 강원도와 경기북부, 충청도 등지는 자료가 불에 타서 멸실된 것이 많아 관련자의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지난해 7월 발족한 재산조사위는 지금까지 대상자 45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 가운데 350명의 가계도를 작성했으며, 이들의 토지 400만 평 정도를 찾아내 조사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송순(41) 조사관은 “80%정도 가계도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조사위 활동이 가시화하면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대상 가족들의 이의신청이 하루 최고 10건에 이를 정도로 늘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사위 결정에 불복한 후손들은 통지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재산조사위 장완익 사무처장은 “현재까지 조직적 반발은 없지만 소송이 많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조사위 활동은 신중하다. 과거 100년 내지 60년 전에 있었던 행위를 평가해 처분하는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특정 세력에 얽매여 ‘과거 들추기식’으로 빠져들면 당초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헌법정신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해 엄청난 반목과 국론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가 마무리되면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고통 받은 분들의 맺힌 한을 풀고, 역사의 정통성을 바로 세워 정의와 양심이 살아있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 권영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 Q&A 용도와 환수 범위는? 특별법 시행 이후 매매 토지도 대상 Q. 친일파 후손이 가진 재산은 모두 환수할 수 있을까 Q. 후손이 특별법 시행 이후 재산을 팔았다면 Q. 추후에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은 Q. 왜 1차 환수 재산이 36억 원밖에 안되나 Q. 환수 대상 친일 재산은 더 있을까 |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58년 전 반민특위가 해야 했던 일입니다. 그동안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미뤄온 것을 이제야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최근 정부가 친일재산의 국가귀속 결정과 관련,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장완익(44)사무처장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친일청산의 첫 가시적 성과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민족을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었던 사람들은 끝까지 추적해 응징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재산조사위의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장 사무처장은 “본인을 단죄하지 못하고 후손들에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가능하면 많이 찾아내 재산을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조사위 활동의 법적 문제와 관련, 장 사무처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 입장으로는 “헌법에도 여러 가지 가치가 있다”고 전재하고, “친일한 대가 재산이 합법적으로 보호대상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형평성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재산을 일찍 처분한 사람과 못한 사람 모두 불법을 저질렀는데 처분을 못했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조사위는 국가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활동해야 한다’한다는 게 그의 한결같은 지론이다.
이번에 환수한 친일파 재산이 예상보다 적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장 사무처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밝혀내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는 “100년 전 일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재산환수 당사자의 이의신청에도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재산조성이 반민족 대상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친일대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조사대상기간인 러일전쟁 이전에 재산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산 형성이 독립운동자금도 후원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친일파들이 당대 처분한 것도 많다. 그리고 농지의 경우 대부분 농지개혁 때 처분됐고, 현재 남은 것은 임야가 대부분 많다. 또한 위원회가 한시적 조직인 것도 제약이다. 그는 그럼에도 “정해진 기간에 위원회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4년 한시기구(2년 연장가능)다. 최근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토지반환소송’을 포기하는 사례가 있는 데 대해, 장 사무처장은 “최근 정부 일련의 활동으로 당사자들이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사무처장은 재산환수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는 재산조사위를 포함한 과거사 위원회가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역사적으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 따라서 이 같은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사무처장은 평소 과거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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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