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모태범·이상화 스피드스케이팅 500m 금메달 석권



 

“서러웠어요. 세계선수권에서 1등을 했는데, 김연아 기사에 묻히더라고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지난 2월 17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백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상화(21)가 경기 후에 한 말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20)보다 2년 선배(이상화의 생일이 2월이어서 88년생들과 동기)인 이상화는 늘 김연아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자신 역시 세계 정상급 선수였지만 국내에선 한낱 비인기 종목 선수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화와 김연아의 ‘인연’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휘경여중 3학년이던 이상화는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5백미터에서 동메달을 땄고, 도장중 1학년이던 김연아는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 은메달을 차지하며 함께 주목을 받았다. 두 선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밴쿠버 올림픽에 대비해 집중 육성할 유망주로 선정돼 태릉선수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나란히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 이상화는 “(두꺼운 허벅지는 피하고) 상체만 찍어주세요”라며 웃을 정도로 여유를 보였지만, 치아 교정기를 착용한 김연아는 오히려 훨씬 긴장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위상은 점점 달라졌다. 김연아가 그랑프리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세계 피겨 여왕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이상화도 2007년부터 월드컵 시리즈 5백미터를 4차례나 제패했다.

하지만 대접은 너무 차이가 났다.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이상화는 그렇지 못했다. 이상화의 부친 이우근 씨는 “누구는 신문,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데 상화는 거의 언급되지 않아 많이 속상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상화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출국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스피드스케이팅을 알리고 싶다”는 말을 몇 차례 했다고 한다. 자신의 집 거실 달력의 2010년 2월 16일(현지시간) 에 검은색 매직으로 ‘인생역전!’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상화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까지 5백미터 세계 랭킹 3위였다. 충분히 금메달을 노릴 만한 실력이 있었다.
 

이상화와 은석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으로 지낸 모태범도 비슷한 케이스다. 2월 16일 그가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순간 빙상 담당 기자들은 무척 당혹해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올해 세계스프린터선수권(단거리인 5백미터와 1천미터 기록을 합산해서 순위를 가리는 대회) 종합 1위인 이규혁과 2위 이강석만을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모태범도 세간의 무관심에 서운함을 갖고 있었다. “지난번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 때 기자들이 저한테는 거의 질문을 안 했죠. 좀 서럽긴 했지만 제게 관심을 안 가져주셔서 더 자극이 됐어요. 부담 없이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는 “원래 1천미터가 주 종목인데 5백미터는 1천미터를 타기 위한 속도훈련이라고 생각해 부담을 갖지 않았던 게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모태범도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이번 시즌 국제빙상연맹(ISU) 1천미터 세계 랭킹에서 2위에 오른 선수였다. 이번 올림픽 1천미터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가 1위고, 이규혁이 3위다. 이강석은 월드컵 시리즈의 성적이 좋지 않아 랭킹 40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기록이 나빠 1천미터에선 출전 기회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규혁과 이강석만 챙겼지 모태범에겐 주목하지 않았다. 모태범은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섭섭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5백미터 금메달에 이어 1천미터 은메달을 딴 뒤에는 “서울에 돌아가서 승훈이(5천미터 은메달리스트 이승훈)와 거리를 걸어 다녀보자고 약속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지 궁금하다”고 말할 정도. 아직 갑작스런 인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하다.
 

사실 한국 스포츠는 지나치게 인기 종목에 집착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비인기 종목 선수는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올려도 반짝 관심을 받을 뿐 곧 뇌리에서 잊혀지곤 한다.

비인기 종목 스타 중 대표적인 선수가 핸드볼의 윤경신, 오성옥 등이다. 현재 국내 두산에서 뛰고 있는 윤경신은 핸드볼의 메이저리그라 할 수 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2년 동안 활약하면서 2천7백90골을 성공시켜 통산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웠다. 득점왕만 7차례를 차지했고, 2001년 국제핸드볼연맹(IHF)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에도 뽑혔다. 그는 2008년 국내로 복귀하면서 “아직도 아스팔트 위에서 연습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내가 한국에서 핸드볼 선수를 시작한 이상 짊어져야 할 숙명”이라고 말했다.

국내 운동선수 중 하계올림픽 최다 출전 선수인 여자 핸드볼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 오성옥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박물관에 전신 사진이 붙어 있을 만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평범한 아줌마에 불과하다. “길을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깜짝 스타가 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누구냐”, “무명에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는 얘기를 하지만 사실 그 선수는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세계 정상권에 근접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언론과 일반 팬들이 무관심했을 뿐이다.
 

글·고석태(조선일보 스포츠레저부 차장)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