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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호>‘집 없는 사람에게도 권리가 있다’




지난 12월 초 파리 시내 생마르탱 운하 주변에 빨간 텐트 100여 개가 출현했다. 노숙자들의 어려움을 알리고자 코미디배우 오귀스탱 르그랑이 친구들과 ‘돈키호테의 아이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사비를 모아 텐트를 설치한 것이다.

노숙자들을 불러 모으고 일반인도 하룻밤 정도 텐트에서 자면서 노숙자의 생활을 체험해보라고 권유했다. 많은 시민들이 노숙체험에 참여하면서 텐트는 300여 개로 늘어났고 니스, 리옹, 오를레앙 등 12개 대도시로 확산됐다.
파리시는 운하 양쪽에 간이화장실을 설치했고 시민들은 담요와 주스, 과자, 따뜻한 옷 등을 제공하며 호응하고 나섰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에 힘입어 관심이 높아졌고 노숙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단기적으로 긴급 수용시설을 대폭 확충하며 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고 ‘대항력 있는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2008년부터 노숙자, 저소득 무주택자, 자녀가 있는 독신여성에게 주거 혜택을 주고 2014년부터는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파리 지역에는 2006년 2만1184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됐으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기다리고 있다.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프랑스에서의 텐트 시위를 중단했으나 곧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원정을 떠나 노숙자 체험 텐트를 세울 계획이다. 이들은 “다른 유럽국가에서도 이 같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외신을 통해 전해진 이 뉴스에 등장한 ‘대항력 있는 주거권’이란 용어는 아주 낯선 것이다. 기준 이하 집에 사는 사람이 행정기관에 주거를 제공하도록  법원에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주거권과 달리 재판에 청구 할 수 있다는 게 큰 차이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보건권(병원이용권)에 대한 시민의 대항권이 인정되고 있다. 드빌팽 총리는 “교육, 건강에 이어 주택에 대한 대항권을 입법화함으로써 프랑스가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는 가장 앞선 선진국 중의 하나가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법안의 취지는 소송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서민주택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법안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회의론도 만만찮다고 한다. 대도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서 서민주택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법률 제정이 주택공급을 보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행정기관이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승유 주프랑스 홍보관은 “서민들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프랑스 정부가 스스로 족쇄를 만들었다”며 “앞으로 이 제도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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