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문화, 지금] 청탁금지법, 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이 법의 적용 범위와 대상을 놓고 아직도 혼란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첫날부터 학생이 건네준 캔커피 하나 때문에 고발을 당하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무조건 점심은 구내식당에서만 먹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고급식당들은 3만 원 이하의 메뉴들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대학은 취업을 해 수업을 못 듣는 학생들의학점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기업이 공익 목적으로만든 문화재단과 언론재단까지 모든 사업을 중단했다.
식사비와 선물 액수의 제한으로 희비가 엇갈리고, 이법이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를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이 법의 모호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인 잣대가 논란이 되었다. 한 여당 의원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봐도 납득이 안 되는 것까지 적용 대상이 된다"며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게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국민권익위원회를 향해 목소리를높였다.
이런 논란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 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줄이고, 잘못된 접대문화를 바로잡아줄 것으로 믿고 있다. 당장 이런저런 식사 대접과 선물이 줄어들고, 이 법을 앞세워 청탁을 거절할 수 있으니 마냥 헛된 희망은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5년 부패 청정 상태를 보면 덴마크가 1위, 핀란드 2위, 스웨덴 3위, 싱가포르 8위, 미국 15위, 일본 18위, 우리나라는 37위다.
5만 원 이상 공연 티켓 선물 등
문화예술계 관행에 변화의 바람
문화예술계도 청탁금지법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다른 곳보다 비교적 영향이 적지만 지금까지 우리 문화예술계의 관행도 바뀔 수밖에 없다. 영화부터 보자. 언론의 취재와 홍보를 위한 편의 제공에 제동이 걸렸다. 영화의 첫 공개 행사인 언론시사회에 이어 감독, 배우, 제작자와 기자들이 만나 대화를 하는 미디어데이도 사라졌다. 배우나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 제공하던 커피나 음료도 사절이다.
가요계도 비슷하다. 콘서트 시즌인 연말을 앞두고 가수들의 공연을 어떻게 홍보할지 고민이다. 재학 중인 아이돌 가수들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가수 활동을 위해 학교에서 수업 불참을 양해해왔는데 이제는 그런 요청을 하면 부정 청탁이 된다.

▶ 지휘자 금난새 씨가 9월 19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 에서 열린 ‘제100회 특집 마로니에 돗자리음악회’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뉴스1
공연계의 걱정은 더 크다. 무엇보다 ‘5만 원’의 덫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대형 뮤지컬이나 클래식, 오페라 공연 입장 티켓 가격은 통상 그 액수를 넘는다. 이 때문에 주고받으면 청탁금지법에 걸린다. 언론 홍보는 물론, 기업들이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해 그것을 선물로 제공하는 일도 불가능해졌다. 당연히 기업들의 협찬이 줄어들 것이고, 기업에 초대권을 제공하고 대신 제작비의 20~30%를 충당하는 공연계로서는 당장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곤혹스럽기는 문화체육관광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탁금지법이 국정 기조인 ‘문화융성’을 위해 장려하고 있는 기업의 ‘문화접대비’ 활성화 정책과 충돌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접대비는 기업이 음식이나 일반 선물 대신 공연·전시·스포츠 관람 등으로 사용하는 비용으로 2007년부터 건전한 접대문화 조성과 문화예술산업 활성화, 문화 수요와 향유 확대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더구나 올해 세법 개정으로 그 적용 한도가 20%로까지 확대됐다. 기업이 문화접대비로 지출한 비용에 대해 추가로 그 한도액의 20%까지 비용으로 인정해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화접대비 역시 일정 기준을 넘으면 지금으로서는 꼼짝 없이 청탁금지법 위반이 된다. 기업들이 문화 마케팅, 메세나(기업이 문화예술 분야에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까지 잠정 중단하면서 실제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공연기획사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공연계에서는 "문화융성을 위해 문화접대비를 청탁금지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국회와 국민적 합의의 결과를 문화 예술계만예외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청탁금지법이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에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제작, 마케팅, 유통, 소비 방식으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관행들 역시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왜 꼭 홍보를 위해서는 편의를 제공해야 하고, 언론은 그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나. 인터뷰를하면서 왜 꼭 배우가 커피를 사야 하나. 기자 시절, 감독과 인터뷰하면서 커피를 사준 적이 있다. 그때의 떳떳함과 감독의 반응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홍보와 취재, 나아가 인간적 유대에 도움이 된다.

▶지난 9월 16일 경북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뮤지컬 ‘왕의 나라’ ⓒ뉴스1
뮤지컬, 클래식, 오페라의 입장료는 왜 다른 공연의 2, 3배여야 하나. 물론 제작비용이나 공연 횟수의 한계로 그럴 수 있지만 거품도 있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좀 더 많은 국민이 저렴한 돈으로 관람하고, 공연 수익도 올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특권층, 고소득층이 아닌 일반 국민이 극장에서 오페라를 즐기는 것도 ‘문화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다.
저렴한 가격의 문화공연 보편화
국민 모두 ‘문화로 행복한 대한민국’의 주인공
기업들의 협찬도 티켓 가격의 거품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기업이 초대권을 남발한 공연에 가보면 아직도 초대받은 손님이 오지 않아 비어 있는 자리가 많다.
문화접대비도 마찬가지다. 꼭 고가 공연만 ‘접대’가 아니다. 그보다는 저렴한 공연을 자주 즐길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내실 있고 효과적인 접대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기업의 전체 접대비에서 문화접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0.05%에 불과하다. 이제는 불가능해진 골프, 룸살롱 등 비싼 향응 접대를 얼마든지 문화접대비로 돌려 중·저가 문화예술공연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문화예술 시장도 창출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티켓 구입으로 생색내기를 해온 관행을 버려야 한다. 협찬의 대가로 고가의 티켓을 다량 구매해 유명 인사들에게 돌리는 대신 공연계에 직접 지원을 늘린다면 더 많은 국민, 저소득층까지 저렴하게 고급 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말로만이 아닌 정말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발전을 위한 지원을 사회공헌활동 차원이라면 못할 이유도 없다.
때마침 한국메세나협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새로운 기업 예술협력 활성화’를 위한 토론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의 새로운 접대·협찬문화로 우리 문화가 더욱 융성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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