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부 오창언 씨가 만드는 1인 방송의 이름은 ‘버라이어티 파머(Variety Farmer)’. 이름 그대로 농촌에서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모습과 농부의 다양한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오창언 씨가 전하는 시골 생활은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층에게는 새로운 문화로 인식된다.

“농촌 생활은 단조롭고 따분하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단편적인 면만 봐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곳에도 즐기고 놀 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C영상미디어

이 방송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스물넷 젊은 청년이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일구는 모습이다. 앳된 이미지와 달리 시범을 보이는 그의 손놀림은 능숙하고 빠르다. 일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친숙한 말투와 함께 바지런히 움직이는 오 씨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시골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촌(村)스러워서 특별한 시골 이야기

“작물을 키울 때 온 정성을 다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농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농업을 천시하고 무시하더라고요. 농사에 대한 인식을 갈아엎고 싶었죠.”

농사꾼인 오창언 씨는 “나중에 할 거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는 말에 맥이 빠진다. 농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막연히 농사에 문화를 입히고 싶다는 생각에서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평소 SNS를 자주 접했기 때문에 소통의 편의성과 위력은 알고 있었다. 방송채널로 유튜브를 선택한 것은 상업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농업의 공익성을 알리기 위한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구독자가 늘어나는 지금도 광고나 농산물 판매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버라이어티 파머’의 방송 소재는 농사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소재로 사용된다. ‘시골 진흙길에서 차량 탈출시키는 법’, ‘계곡에서 머위 쌈밥과 엄나무순 데쳐 먹기’부터 ‘조카들과 강 나들이’, ‘청년농부들의 야영대회’ 같은 일상의 모습도 있다. 야생 활동을 보여주는 콘텐츠의 인기가 높은데, 농한기용으로 제작한 ‘멧돼지 먹방’ 콘텐츠는 무려 45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방송 1년 만에 나온 최고 조회 수다. 그는 직접 사냥한 멧돼지 머리에서 목살 부위를 잘라 숯불에 직접 구워 먹는다. 먹으면서 멧돼지 고기의 맛과 부위별 조리법을 설명하며 사냥개에게도 한 점 떼어준다. 여기까지도 생경한 장면인데, 멧돼지 고기를 씹던 오창언 씨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아얏! (우물거리며 입 안에서 돌 같은 것을 뱉고) 이거 총알인데요? 여러분, 총으로 잡은 고기는 잘 보셔야 해요. 엽총이 산탄이라 총알이 좀 많거든요. 이게 살 속에 박혀 있으면 고기 먹다가 이가 나갈 수도 있어요.”

이렇듯 설정 없는 순도 100%의 상황에서 구독자들은 무장 해제될 수밖에 없다. 그는 방송을 하면서 농사보다 영상 편집이 더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시골에서 편집기술을 배울 곳이 없어서 독학을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편집과 제작기술을 유튜브로 배우고, 실행하다가 막히면 강의를 듣고 편집을 마무리해야 했다. 초반에는 자막을 넣는 것도 어려웠지만 1년 새 특수효과도 척척 찾아 넣을 수 있게 됐다. 채널의 인기에 힘입어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제안이 들어왔다. 전국의 착한 농가를 찾아가는 프로젝트였다. 오창언 씨는 이 프로젝트로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농부를 만나며 콘텐츠의 다양성을 더하게 됐다.

농사꾼 DNA 중의 으뜸인 끈기 물려받다 

중장비 사업을 하던 아버지 오윤환(58) 씨는 고추 농사를 짓는 대농(大農)이었다. 10만 주가 넘는 나무에는 매일 5톤 트럭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고추가 자랐다. 40~50명의 인부를 써야 할 정도였다. 집에는 늘 일이 많았고, 오창언 씨 역시 어렸을 때부터 고추박스를 접고 잡초를 뽑았다. 그렇게 밭을 놀이터 삼아 놀다 보니 농사가 천직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도 농사의 어려움과 고됨을 안다. 옆에서 봤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고추 값이 10㎏당 1만 원으로 폭락한 적도 있고, 태풍 매미로 7만 평(231,400㎡)에 달하던 옥수수 농사가 물에 잠겨 수억원의 손해도 봤다.

 “실패를 하면 좌절하고 무너지기 마련이잖아요? 부모님은 자연재해로 매년 무너지셨는데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존경스럽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죠. 그 덕에 끈기 하나는 확실히 배운 것 같습니다. 또 생물을 키운다는 게 저에게는 큰 매력이었어요. 나로 인해 한 식물이 온전하게 자라는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오창언 씨는 전통방식에서 벗어나 농업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농고와 한국농수산대학으로 진학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농업, 목축업, 임업, 어업 등의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농업의 견문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방학 때는 농산물의 유통 흐름을 배우고 전국 특산물에 익숙해지기 위해 서울 가락시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미 기반을 갖춘 부농의 자제들 사이에서 위축될 때도 있었지만, 농사꾼으로 바닥부터 탄탄하게 다져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 졸업한 뒤 청년농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아버지 역시 “너는 네 농사짓고, 나는 내 농사짓겠다”며 그의 농사 독립을 거들었다. 올해부터는 오 씨의 계획대로 블랙커런트 4,000 주를 심을 계획이다. 

“임대한 땅에는 나무를 심을 수 없거든요. 올해 융자로 땅을 구입하면서 과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전의 농업은 생산만 하면 끝났지만, 요즘은 생산과 동시에 직거래를 하고 가공·체험까지 하며 부가소득을 올려야 하는 시대다. 국가에서 장려하고 있는 6차 산업이 그렇다. 1차 산업인 농업에 그치지 않고 2차 가공, 3차 서비스·관광 등을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높이는 농촌융복합사업을 말한다.

“농업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기본 3~5년 이상이 걸리고, 이렇게 자리를 잡는 동안 많은 인력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이 기간을 버티지 못하면 모든 것을 날릴 수도 있죠. 때문에 전문성과 깊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오창언 씨는 농사를 잘 짓는 것을 넘어 어떤 걸 접목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제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농업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습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 건드릴 곳이 아직 많이 남아 있거든요.”

생명산업 계열인 농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1차 산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지원 기회도 어느 업종보다 많다. 오 씨도 젊은 농부답게 이리저리 부딪치며 배우는 중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품종으로 농사를 짓는 모험도 감행하고 있다. 첫해는 인제에서 처음으로 생으로 먹는 초당 옥수수를 심었고, ‘인디언 감자’로 불리는 아피오스 농사도 지었다. 노란 사과인 시나노골드와 블랙커런트도 심을 예정이다.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지만 오 씨는 희귀 품종과 작물을 선택했다. 새로운 품종에 도전하는 것은 농부로서의 안타까움 때문이다.

“대형 마트나 시장에 가면 사과는 계절 따라 아오리나 홍로, 부사밖에 없잖아요. 감자도 수미감자 정도이고…. 식자재의 다양성을 늘려가고 싶었어요. 소비가 있어야 새로운 품종이 생산되지만, 저처럼 먼저 시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송에서 씨앗을 뿌리는 것부터 수확하는 과정까지 모두 보여주다 보니 판매 요청도 줄을 잇는다. 하지만 재배부터 모든 과정을 혼자 처리하기 때문에 판매는 이벤트에 가까울 정도로 소량만 소화하고 있다. 제대로 된 농산물을 생산한 후에야 판로를 개척하겠다는 농부의 뚝심 때문이기도 하다. 구독자도 꾸준히 늘고, 농촌에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게 목표

▶ 농사일도 놀이처럼. 오창언 씨는 농사룰 잘 짓는 것을 넘어 어떤 걸 접목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사진은 오창언 씨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

지난해 오 씨가 생산한 주키니호박 10kg(한 박스에 18~22개입)의 경매 가격은 1000원이었다. 오 씨는 “포장박스 하나 가격이 1000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80박스를 생산해도 손에 쥐는 돈이 없다. 열심히 생산을 해도 출하를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인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농산물의 가치가 너무 낮습니다. 많은 사람이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일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호박 한 개에 1000원이라면 비싸다고 생각해요. 땀의 가치가 유통구조에 의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창언 씨는 농촌의 중요함과 어려움을 쉽게 풀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방송을 통해 농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방송을 하기 전에는 누군가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소개하면 온전한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구독자의 반응을 통해 농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사람들이 농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 농민들의 삶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요? 더디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져서 농촌에도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 좋겠어요. 돈 없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외로움인데, 함께 고민하고 어깨를 마주할 동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농부의 꿈은 더 멀리 있다.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새로운 목표이다. 농산물에 스토리를 입혀 브랜드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미래 농업은 스마트팜과 사회적 농업, 6차 산업 등 청년 창업농부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 농업기법에서 벗어난 오창언 농부의 비전은 미래 농업의 소중한 씨앗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는 청년농부 오창언 씨의 내일을 기대한다.

강보라│위클리 공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