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 7000억 달러 시대
미국발 관세 인상과 글로벌 경기 둔화 같은 악재 속에서도 올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지난해보다 2.5%가량 늘어난 7005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2월 7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1~11월 누적 수출은 6402억 달러로 전년보다 2.9% 증가했습니다. 하반기에 관세협상이 타결되면서 수출이 늘어나 6개월 연속 증가한 덕이 큽니다. 12월에 598억 달러만 추가되면 처음으로 연간 7000억 달러를 넘게 됩니다.
1970년 8억 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수출이 55년 만에 875배로 늘었습니다. 올해 무역수지 흑자도 10월까지 564억 달러로 2018년 이후 최대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역수지 역시 2023년 6월 이후 꾸준하게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선박 같은 주력 산업에서 수출을 늘렸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과 유럽연합(EU) 등으로의 수출 시장 다변화를 꾀했던 노력도 빛을 발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등을 앞세운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화장품과 의약품 같은 생활·식품 소비재 수출도 성장했습니다.
올해 초만 해도 글로벌 무역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집권을 시작하면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한층 심화했으니까요. 그러나 관세 타결 이후로는 수출 환경도 점차 호전됐고 미중 중심의 수출 지역이 신흥 시장으로 다변화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K-컬처의 확산도 도움을 줬고요. 올해 우리나라의 수출 성적표를 좀 더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슈퍼사이클 진입한 반도체 수출 ‘껑충’
전체 수출액 증가분의 대부분을 견인한 것은 반도체였습니다. 반도체 분야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서버가 늘어나고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초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덕분에 11월까지 누적 수출이 1526억 달러에 달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지난달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도 28.3%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고요. 2000년대 초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10%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20여 년 만에 세 배 가까이로 뛴 셈입니다.
아세안, EU, 대만 등 수출국이 다양해진 것도 수출 회복세를 도왔습니다. 올해 1~10월 동안 수출이 증가한 국가는 135개국으로 지난해(123개국) 대비 12개국이 늘었습니다. 아세안(5.5%)은 반도체·선박류, EU(3.9%)는 무기류·반도체·자동차, 대만(51.0%)은 반도체·반도체 장비·컴퓨터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었습니다.
K-콘텐츠·소비재 수출도 증가
K-콘텐츠에 힘입어 소비재 수출액도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콘텐츠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136억 달러)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5.9% 늘어났습니다. 상승세가 계속되는 모습입니다.
콘텐츠 종류별로는 음악(62.9%)과 방송(65.1%)의 수출 증가세가 큰 폭으로 늘었고 영화와 드라마에 많이 등장한 화장품·의약품·식품 같은 K-콘텐츠 관련 소비재 수출도 덩달아 증가했습니다. 특히 화장품 경우엔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처음 한국 화장품의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섰습니다. 폴란드(112.3%), UAE(59.1%) 등에도 수출됐고요. K-푸드 열풍도 거셌습니다. 면류는 18.7%, 김은 21.5% 증가했습니다. 특히 김은 중국과 싱가포르 시장에서 두 배 이상 수출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소기업 수출 늘었다
올해 수출 회복은 중소기업이 주도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올해 1~3분기 중소기업 수출은 6.0%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총수출 증가율(2.3%)을 크게 웃도는 수치입니다. 특히 3분기 중소기업 수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1.6%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국가별로는 미국, 중국, 베트남, 일본 등 4개국으로 수출한 금액이 가장 컸고요. 홍콩과 인도, 대만, 키르기스스탄 등으로도 수출이 이어졌습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아시아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최대 수출 지역이고 중동은 최근 한국산 제품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신흥 유망 시장”이라고 했습니다.
신산업 수출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차세대 반도체, 바이오헬스,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신산업, 전기차, 첨단신소재, 로봇 등 8대 신산업의 올해 1~10월 수출은 6.6% 증가했습니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14.1%), 바이오헬스(7.8%), 항공우주(24.9%) 분야의 수출 증가 폭이 컸습니다. 8대 신산업 수출 비율도 20.5%로 처음 20%를 돌파했습니다.
전통산업은 감소
다만 전통산업 수출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일반기계·석유화학·철강·이차전지 분야에선 수출액이 줄었습니다. 일각에선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너무 큰 것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반도체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사이클과 AI 투자 흐름에 따라 수요와 가격이 크게 흔들리는 산업인 만큼 업황이 한 번 꺾이면 수출이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은행이 최근 “반도체 호황은 ‘양날의 칼’로 의존도가 큰 만큼 하강 시 충격도 과거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밝힌 이유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내년엔 수출액 상승세가 지금처럼 계속되면서도 신산업과 전통산업의 경쟁력이 골고루 함께 커져 대한민국 경제가 더욱 튼튼해지길 기대합니다.
송혜진 조선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