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패스, 딥페이크 탐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출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수십 초, 길게는 수 분에 이른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지만 심정지 환자나 화재처럼 골든타임이 생사를 가르는 상황이라면 이런 지체는 치명적이다. 우리나라 주거의 절반 이상(51.14%)이 공동주택인 만큼 공동현관은 긴급상황 대응에서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돼왔다. 때로는 현관문을 파손해 진입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119패스’가 도입되면서 소방대원은 비밀번호 입력이나 인터폰 호출 없이도 공동현관을 즉시 통과할 수 있게 됐다.
119패스는 소방대원이 사전에 부여받은 권한을 활용해 공동현관을 자동으로 개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전자태그(RFID) 기반 시스템이다. 입주민의 보안 우려에 대비해 주민 개별 비밀번호나 주민정보는 일절 포함하지 않은 인증코드 방식으로 설계됐다. 소방청이 각 아파트 단지와 공동주택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한 결과 전국 공동주택 1만 1542곳 중 7554곳(65.5%)이 119패스 도입을 마쳤거나 준비 중이다. 현재까지 보안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119패스는 긴급차량 접근 시 신호를 녹색으로 자동 전환하는 ‘교차로 신호제어시스템’, 무인 차단기 등을 자동으로 열어주는 ‘긴급차량번호 998’ 과 함께 도로 진입부터 현장 도착까지 ‘무장애 출동체계’를 완성한 모델로 평가된다. 소방대원의 제안에서 출발해 소방청이 제도화하고 전국으로 확산한 이 사례는 ‘2025년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적극행정은 공무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를 뜻한다. 반대로 소극행정은 공무원의 부작위·직무태만 등으로 국민 권익을 침해하거나 국가에 재정적 손실을 초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부는 공직문화 혁신을 위해 적극행정을 장려하고 소극행정을 근절하기 위해 매년 적극행정 우수사례를 선정·포상하고 있다. 올해 본선 심사와 시상식은 11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렸다.
중앙·지방정부와 공공기관·지방공공기관 등 343개 기관이 649건의 사례를 제출했고 이 가운데 18건이 본선에 올랐다. 최종 순위는 국민심사단의 사전 현장 심사(30%), 본선 현장에서 진행된 전문가 심사(50%), 인사처TV 생중계를 통한 국민투표단의 실시간 온라인 투표(20%)를 합산해 결정됐다. 대상 6건과 최우수상 12건이 선정됐다.
중앙행정기관 부문에서는 소방청과 더불어 행정안전부가 대상에 올랐다. 행안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딥페이크 탐지 기술을 본격적으로 적용해 ‘조작’을 과학적으로 판별하는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존 디지털 감정기법은 대조할 원본 영상이나 음성이 없으면 딥페이크 판별 감정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과수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딥페이크 탐지 모델은 영상탐지 정확도 95%, 음성탐지 정확도 91%를 확보해 감정의 한계를 극복했다. 실증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딥페이크 영상 약 1만 건을 삭제했고 2024년 한 건에 불과했던 딥페이크 감정은 현재까지 22건으로 크게 늘었다.
농업법인 투기 근절, 고속도로 위험 진단 등
지방정부 분야에서는 광주광역시와 파주시가 대상을 받았다. 광주시는 지방세 자료를 연계해 농업법인의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지방재정을 확충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기초자료가 부족해 관리가 어려웠던 농업법인 분야에서 자치구 세원 전문가와 협업해 분석기법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탈법적 농지 활용, 부동산 투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파주시는 지방세 체납자의 가상자산을 법인 계정을 통해 직접 매각한 전국 최초의 사례를 냈다. 이 과정에서 가상자산 추심의 어려움, 비주류 가상자산의 상장폐지로 인한 처분 불가 문제를 해소했으며 고의적인 재산 은닉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공공기관 부문에서는 한국도로공사가 빗길 및 포트홀(도로 파임) 사고를 줄이기 위해 개발한 AI 기반 초정밀 도로탐지 기술을 구축한 사례가 선정됐다. 최근 5년간 고속도로 빗길 사고는 7500건, 도로 파손으로 인한 피해 보상은 9705건에 달했지만 도로 진단은 육안 점검에 의존해 정확성과 효율성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초정밀 센서를 장착한 차량이 주행하며 위험 요인을 자동 분석하는 방식을 개발해 분석 정확도 98.3% 이상을 확보했다. 새 기술을 적용한 결과 갓길로 빠진 빗물이 주행차로로 재유입돼 수막이 형성되는 구간, 5㎝ 깊이의 도로 침하로 비 웅덩이가 생기는 지점 등 기존 방식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찾아냈다.
서울교통공사는 승강안전문이 하나라도 열려 있으면 열차가 출발하지 못하도록 제어체계를 개선했다. 이 조치로 시민중대재해 예방 효과를 높이고 약 26억 원의 개량 비용 절감 효과까지 거두며 사전 예방 행정의 의미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김관용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번 대회에서 발굴된 우수사례를 널리 알려 공직사회 내 적극행정 문화를 확산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