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의 복을 빈다. 건강하고 행복하며 평안하고 장수하라는 축복을 담은 인사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이 복 받으라는 말이다. 축복의 내용은 크게 ‘복록수(福祿壽)’로 요약할 수 있다. 복록수에서 녹은 출세를, 수는 장수를 의미하는데 복은 그 모든 것을 다 아우르고도 남을 만큼 큰 의미를 담은 축복이다.
한국인들은 새해가 되면 친척이나 자손들에게 복주머니(福囊)를 선물했다. 단순히 복 받으라는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머니에 꼭꼭 담아서 주겠다는 의미다. 돌잔치나 회갑잔치는 물론이고 혼인한 신부가 근친을 다녀온 후 시댁에 갈 때도 시어른들께 복주머니를 선물했다. 아이들에게는 쌀이나 조, 팥 등 곡식을 넣은 복주머니를 허리춤에 달아줬다. 식복이야말로 만복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복주머니는 비단이나 무명천으로 만들었으며 1년 내내 복을 주는 부적과 같은 물건이기에 주머니 표면에 복을 상징하는 길상적인 글자나 무늬 등을 수놓았다. ‘수복강녕’과 ‘부귀영화’ 등의 글자, 또는 그런 뜻을 담은 모란·복숭아·십장생·불로초 등의 문양이 주로 선택됐다. 복주머니는 원래 한복에 호주머니가 없어서 물건을 넣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로 제작됐지만 어느 순간 복을 담는 행운의 상징이 됐다. 본질보다 거기에 담긴 뜻이 더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기왕이면 사방팔방에 복을 담아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래서 복주머니뿐만 아니라 도장주머니, 향주머니, 붓주머니, 수저주머니 등에도 복주머니에 새긴 것과 같은 글자나 문양을 디자인했다.
복주머니는 모양에 따라 두루주머니와 귀주머니로 나눈다. 두루주머니는 염낭 또는 협낭(夾囊)이라고 부른다. 주머니의 형태가 둥근 모양으로 윗부분에 주름을 잡고 두 개의 끈을 양쪽으로 꿰어서 잡아당기는 주머니다. 주머니의 주름은 보통 3개에서 9개까지 잡는데 영친왕비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수문(圓壽紋) 두루주머니’처럼 특별하게 17개의 주름이 들어가는 사례도 있다. 귀주머니는 줌치 또는 각낭(角囊)이라고 부르고 네모지게 만들어 아래 양쪽에 뾰족한 귀가 나오도록 만든 주머니다. 이때 끈은 주머니의 중간쯤에 꿰어서 열고 닫는다. 영친왕비의 유품으로 전해지는 ‘수복자문(壽福字紋) 귀주머니’가 대표적이다. ‘원수문 두루주머니’와 ‘수복자문 귀주머니’는 모양에서 차이가 나지만 ‘수복’이라는 글자를 배치하고 불로초, 박쥐, 석류, 파도, 바위 등의 길상적 문양을 넣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콘셉트다.
우리 민족은 특히 복을 중요하게 여겼다. 중국에서처럼 복이 이미 왔다는 의미로 ‘복’ 자를 거꾸로 써서 대문에 붙여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병풍과 자수, 밥그릇과 국그릇 등에도 ‘복’ 자를 새겨넣었다. 그렇다면 복을 비는 마음은 어때야 하는가? 복(福)은 ‘示(보일 시)+畐(가득할 복)’으로 구성된 문자다. ‘시’는 신에게 제를 지낼 때 사용하던 제단을 그린 것이고 ‘복’은 술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본뜬 글자다. 따라서 ‘복(福)’은 한해의 농사를 무사히 마치고 제사장이 제단에 나아가 술이 담긴 항아리를 공손하게 올려놓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복권에 당첨되기를 기다리거나 일확천금을 바라는 요행수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경건함의 영역이 복의 세계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림)의 마음으로 하늘의 축복을 기다리는 마음이 곧 복 받을 사람의 자세다. 이런 사람이라면 1년 내내 복주머니에 복이 가득할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