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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시간 동안 풍파를 견디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첨성대는 볼 때마다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진 경주시

경주 대릉원·황리단길
경북 경주는 ‘천년고도’이자 ‘APEC 개최도시’다. 여기에 하나 더 ‘한국관광 100선의 도시’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2년부터 격년제로 선정해오고 있는 한국관광 100선에 경주 대표 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7회 연속 이름을 올린 데 이어 대릉원(동궁과 월지, 첨성대)은 6회 연속, 황리단길은 2회 연속 선정됐다. 월정교는 이번에 새롭게 추가됐다. 대릉원의 온화한 능선에서 시작해 첨성대의 건축미, 동궁과 월지 그리고 월정교의 야경, 황리단길에서 만나는 ‘깨알 재미’까지, 한국관광 100선만 따라가도 경주 여행의 알짜 코스가 완성된다.
경주 시내로 들어서면 고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 나온다. 사람들이 고분 사이를 거닐고 고분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긴다. 고분과 눈높이를 나란히 마주하고 차를 마시거나 미술관 창 너머로 불쑥 들어온 고분을 감상한다. 최근에는 고분을 곁에 두고 달리는 러너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천년고도 경주의 중심에는 신라 고분군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역사 유적지구’에서도 고분군은 경주를 가장 고도(古都)답게 만드는 풍경이다.
봉긋 솟아오른 봉분 형태의 고분들은 봄에 연초록으로 시작해 여름에는 진초록으로 채도를 달리했다가 가을 햇살 아래에선 금빛으로, 겨울에 눈이 내리면 순백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여기에 때로 미디어아트로 만나는 빛의 축제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경주 대릉원’(9월 27일까지) 등도 더해진다. 고분 하나만도 사시사철 극적으로 풍경이 달라지기에 계절마다 경주를 찾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고분군 중에서도 대릉원은 노동동과 황남동 사이의 신라시대 고분군을 통칭한다. 장년 이상에겐 ‘황남동 고분군’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12.65㏊ 넓이에 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유료 관람) 등 23기의 고분이 한데 모여 있다. 대릉원에 들어서면 예로부터 죽은 자의 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덤가에 심었다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먼저 반긴다. 그 사이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미추왕릉이다. 대릉원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 속 미추왕 대목에 나오는 ‘재위 23년에 돌아가니 대릉에서 장사 지냈다’에서 유래했다. 주변을 벚나무가 두르고 있어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미추왕릉을 크게 돌아 연못 쪽으로 향하면 황남대총과 만난다. ‘대총’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황남동에서 가장 큰 고분이다. 연못에서 바라보면 작은 언덕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책로를 따라 뒤편으로 이어지는 능은 대릉원에서 가장 ‘핫’하다. 누리소통망(SNS)에서 ‘경주 인생사진 명소’로 알려져 평일에도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이 줄을 선다. 봄이면 목련꽃이 더해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대릉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신라 왕과 귀족의 거대한 무덤이 모인 역사 공간이다. 그 의미에 방점을 찍는 곳이 천마총이다. 출(出)자형 신라금관을 비롯해 허리장식, 금반지 등 엄청난 양의 유물과 천마도 등 유적이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던 천마총은 고분미술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천년고도 경주를 온화하고 포근한 인상으로 품어주는 건 신라의 고분들이다. 계절뿐 아니라 해와 구름의 방향, 하늘빛에 따라 다양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남천(문천) 위를 가르는 목조교량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얽힌 길이다.

‘고분 뷰’, ‘유적 뷰’ 즐기는 황리단길
대릉원을 나서도 시야에서 고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분 뷰’, ‘무덤 뷰’, ‘유적 뷰’ 맛집으로 불리는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최근에는 인근에 ‘오아르미술관’ 등이 개관하며 대릉원 일대는 문화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대릉원과 황남동고분군, 첨성대 사이에 자리한 황리단길은 경주 시내 최고의 번화가다. ‘내남네거리’에서 시작해 ‘황남초등학교사거리’까지의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의 황남동·사정동 일대 지역을 일컫는다. 서울 ‘핫플레이스’로 대표되는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착안해 전국에 ‘~리
단길’이라는 이름이 유행하던 시기, 황남동 핫플레이스라는 의미에서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0~1970년대 낡은 건물이 감각적인 스테이, 아기자기한 소품숍, 기념품 가게, 개성 있는 식당·카페로 변신했다. 황리단길에서 탄생한 ‘경주 십원빵’ 같은 이색 간식을 먹으며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을 따라 걷다 보면 천년고도와 오늘의 경주가 한 골목에서 만난다.

봉긋 솟아오른 봉분 형태의 고분에는 ‘미디어아트로 만나는 빛의 축제’(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경주 대릉원·9월 27일까지) 등 다양한 볼거리도 더해진다. 사진 경주시

첨성대 지나 동궁과 월지로
‘신라의 과학기술과 건축기술의 집약체’라는 설명이 아니더라도 천년의 시간 동안 풍파를 견디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첨성대는 볼 때마다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첨성대에서 동궁과 월지로 가는 길엔 꽃 군락이 발길을 붙잡는다. 시들해진 해바라기 뒤로 배롱나무 꽃이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
핑크뮬리가 더해질 10월 풍경을 기대하며 첨성대에서 15분쯤 걸으면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에 닿는다. 중년 이상 세대에겐 ‘안압지’라 불렸던 곳이다. 안압지는 신라가 멸망한 뒤 폐허가 된 연못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면서 붙은 이름이다. 2011년에 고증을 거쳐 ‘월지’로 이름을 바로잡았다.
동궁은 신라 왕자의 거처이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장소다.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 때 연못 월지가 조성되었고 삼국통일 이후에 동궁이 지어졌다. 신라 땐 동궁 내에만 27동의 건물이 존재했는데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면서 훼손되거나 소실됐다. 현재 월지와 함께 3채의 전각이 복원돼 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조경 예술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인 월지는 못 둘레에 굴곡과 경사가 있어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못의 전체를 한눈에 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방향에서든 고풍스러운 운치가 느껴진다. 특히 일몰 후 야간 경관 조명이 들어오면 빛을 발한다. 조명에 의해 물 위로 반영(反影)이 나타나며 월지에 또 하나의 전각이 들어선다. ‘경주 야경 제일 명소’라는 명성처럼 수수하면서도 고아한 멋을 뿜어낸다. 고요한 물빛에 비친 신라의 달밤에 숨소리마저 고요해진다. 천년고도와 만나기 좋은 계절이다.

박근희 기자

가까이 있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
월정교
동궁과 월지를 시작으로 경주 여행 후반전인 야경 투어 코스로 이어가보자. 남천을 가로지르는 목조교량 월정교는 신라 왕궁이었던 월성과 서라벌 남쪽 지역을 연결했던 다리다. 고증을 통해 10년에 걸쳐 복원돼 2018년에 놓였다.
남천 위 징검다리에 서면 월정교 야경을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다.
9월 18~20일에는 ‘2026 경주 국가유산야행’이 열린다. 월정교를 시작으로 경주읍성, 교촌마을, 첨성대, 계림 일원까지 밤늦도록 걸어볼 기회다.

경주 대릉원
주소 경북 경주시 황남동 31-1 문의 (054)750-8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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