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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속 은신부터 하수구 노트북까지… 흩어진 조각 맞춰 주가조작 잡는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국 수사1팀 이광용 수석검사역
“증거를 지워도 결국 어딘가엔 남아 있습니다.”
압수수색 현장은 늘 예상을 벗어난다. 영장을 들고 찾아간 집의 장롱 안에 사람이 숨어 있던 적도 있다. 압수수색이 시작됐다는 공범의 전화를 받고 불과 1~2분 사이에 노트북을 아파트 복도나 배전반, 하수구에 감춘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증거를 숨기려 해도 특별사법경찰들의 눈을 벗어나기는 힘들다.
금감원 본관 2층 홍보관에서 만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국(금감원 특사경) 수사1팀 이광용 수석검사역은 특사경을 한마디로 ‘증권시장의 경찰’이라고 소개했다.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금융·세무·노동 등 전문성이 필요한 특정 분야의 범죄만 수사하는 사법경찰이다. 해당 분야의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나 기관 직원이 법률에 따라 사법경찰관 권한을 부여받아 수사한다는 점이 일반 경찰과 다르다. 2025년 말 기준 중앙행정기관 35곳과 1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2만 명이 넘는 특사경이 노동·관세·식품·환경 등 분야별 범죄를 단속·수사하고 있다. 금감원 특사경도 그중 하나다.
증권시장의 범죄는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6월 금감원 특사경은 현직 기자들이 가담한 주가조작 세력을 검찰에 송치했다. 공인회계사인 총책과 기자들은 4년 8개월 동안 특징주 기사 1800여 건을 이용해 85억 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사와 주거지 등 50여 곳을 압수수색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반칙이 통하는 시장에서는 누구도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없다. 주가조작 세력이 진화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쫓는 것, 금감원 특사경이 존재하는 이유다. 금감원에서 16년째, 2024년 1월부터는 특사경으로 뛰고 있는 이 수석검사역에게 증권시장 범죄 수사의 현장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본시장 특사경은 어떤 일을 하나요.
일반 경찰이 모든 범죄를 수사한다면 특사경은 전문성이 필요한 특정 분야의 범죄만 수사합니다. 금감원 특사경은 증권시장을 담당하며 크게 세 가지 범죄를 다룹니다. 첫째는 미공개중요정보 이용입니다. 상장사 직원이 회사가 대기업과 대규모 공급계약을 맺는다는 내부 정보를 미리 알고 주식을 사거나 지인에게 알려주면 처벌받습니다. 둘째는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시세조종, 셋째는 허위·과장 공시나 호재성 기사를 악용한 부정거래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을 ‘3대 불공정거래’라고 부릅니다.
금감원 특사경은 어떤 조직으로 운영되나요.
수사1·2·3팀과 디지털포렌식반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수사팀은 특정 분야를 고정하기보다 팀별 수사 일정을 고려해 사건을 배분받습니다. 디지털포렌식반은 휴대전화와 노트북, 이메일, 서버 등 디지털기기에서 삭제된 증거를 복원하고 분석하는 기술 조직입니다. 정보기술(IT) 전공자와 과학수사 경력자를 채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견 인원까지 합치면 46명이고, 이 중 9명은 금융위원회와 중대범죄수사청 등에 파견돼 있습니다.
금감원의 행정조사와 특사경의 수사는 무엇이 다른가요.
가장 큰 차이는 강제성입니다. 금감원 조사부서의 조사는 임의조사여서 상대방이 거부하거나 증거를 숨기면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특사경의 수사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통해 상대방 의사와 관계없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할 수 있습니다.
수사는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하나요.
먼저 금감원 조사국이 행정조사를 하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고발이나 통보를 의결하면, 중수청으로부터 일부 사건을 이첩받아 수사에 착수합니다. 지난 4월부터는 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조사국이 조사 중인 사건 중 증거인멸 우려가 크고 신속한 강제수사가 필요한 중대사건은 금융위 수사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곧바로 특사경 수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집행합니다. 압수수색 당일에는 전 부서가 동원됩니다. 압수해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을 달아 공소청에 송치합니다. 수사에 걸리는 시간은 사건마다 다르나, 큰 사건은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리기도 합니다.
올해 4월 금융위가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 집무규칙’을 개정하면서 수사 전환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전까지 특사경이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통보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은 한국거래소 심리 결과에 따른 조사사건과 금융위·금감원 공동조사 사건으로 한정됐다. 개정 이후에는 금융위나 금감원이 조사 중인 사건도 범죄 혐의가 상당하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면 수사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수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시세조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주식을 반복적으로 사고팔아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거래량을 부풀리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한 사람이 여러 계좌를 동원해 스스로 매수와 매도 주문을 동시에 내는 걸 ‘가장매매’, 공범과 미리 가격·시간을 짜고 주식을 주고받는 걸 ‘통정매매’라고 합니다. 일반 투자자는 거래량이 갑자기 늘고 주가가 오르면 ‘호재가 있나’ 하고 따라 사게 됩니다. 핵심은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이려는 목적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시세조종보다 부정거래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최근 주가조작 수법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누리소통망(SNS)이나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플랫폼이 범죄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소수의 작전 세력이 자금을 모아 주가를 띄웠다면 지금은 다수의 일반 투자자 자금을 끌어들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종목을 추천하면 투자자들이 따라 사니까요. 겉으로는 객관적인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추천하기 전에 주식을 미리 사두고 매수세가 몰려 주가가 오르면 파는 ‘선행매매’를 하는 겁니다. 선행매매는 자본시장법상 대표적인 부정거래입니다.
금감원 특사경이 그동안 적발한 사건들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지난해 2월에는 구독자 수만 명을 둔 텔레그램 증권정보 채널 운영자, 이른바 ‘핀플루언서’ 등
5명을 송치했다. 중소형주 위주로 306개 종목을 미리 사들인 뒤 채널에서 매수를 추천하고 곧바로 팔아 약 22억 7000만 원의 부당이득을 거둔 혐의다. 지난해 11월에는 특징주 기사 보도 전에 주식을 사고 보도 후에 판 전직 기자와 증권사 출신 전업투자자를 구속 송치했다.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은 111억 원이 넘는다.
증거를 삭제하거나 숨기면 수사를 피할 수 있나요.
압수수색은 공범들의 거주지와 관련 장소에서 동시에 하기 때문에 혼자 증거를 지운다고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한 명이 지워도 공범의 기기에서 녹음 파일이나 대화 내역이 나오기도 하고요. 통화 기록만 있어도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납니다. 이런 간접증거를 시간 순서대로 모으고 진술의 모순점을 파고들며 보강합니다. 수첩이나 메모지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증거물을 하나씩 이어 퍼즐을 맞추는 겁니다. 특히 조직적 증거인멸 시도는 구속영장 발부 사유가 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공범끼리 주범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고요.
수사관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요.
열린 상상력과 유연한 사고입니다. 예단을 갖고 수사에 들어가 판단을 그르친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혐의가 짙어 보였는데 수사할수록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단순 참고인처럼 보였는데 실제 주범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내 첫인상과 기준이 틀릴 수 있다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치밀한 관찰력과 끈기도 중요합니다. 방대한 포렌식 자료는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보이는 게 다르고, 사건을 깊이 이해할수록 안 보이던 단서들이 보입니다.
금감원 특사경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저희는 자본시장 수사를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특사경에는 변호사 6명, 공인회계사 9명이 있고, 검찰 수사관 출신 경력자와 IT 포렌식 전문가도 있습니다. 금감원 안에는 공시를 분석하는 공시국, 계좌를 추적하는 조사국도 있습니다. 형사소송 절차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자본시장과 회계, 공시에 대한 깊은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수사를 잘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더 큰 힘을 내는 게 우리의 강점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압수수색은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여러 곳에서 같은 시각에 집행해야 하는데, 장소마다 거리가 달라 캄캄한 새벽부터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력적으로 가장 고된 부분입니다.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시골 논밭 옆 주택을 압수수색하러 영장을 들고 갔는데 건물이 이미 철거돼 장소 자체가 없어진 적도 있었죠. 외부인 출입을 철통같이 통제하는 아파트에 들어가야 했을 때도 진땀을 뺐습니다.
힘든 수사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일이 흥미롭고 보람찹니다. 작은 단서들이 하나로 연결돼 범죄 혐의가 입증될 때 희열을 느낍니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니까요. 조사실에서 피의자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 사람은 정말 억울한가 보다’ 싶었는데 휴대전화에서 범행을 주도한 충격적인 증거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씁쓸함이 들기도 하지만 강제수사 없이는 묻혔을 진실이죠. 무엇보다 증권시장에서 반칙을 해도 처벌이 약해 믿고 투자하지 못하겠다는 투자자들의 지적이 많았습니다. 엄정한 수사로 처벌이 이뤄지면 주가조작 세력도 몸을 사립니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된다는 자부심이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주식 투자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SNS 종목 추천이나 특징주 기사를 접할 때 ‘왜 지금 나에게 이런 정보를 줄까’ 하고 합리적으로 의심해 보셨으면 합니다. 모든 투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책임입니다. 소중한 자산을 지키려면 풍문에 휩쓸리기보다 공시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서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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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