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보다 더 커져버린 아이를 승용차에 안아 태우고 휠체어를 들어 차에 싣고 또 내리고, 이러한 일상이 부모들에게는 너무나 힘들고 버거워 포기한 날들. 이제는 언제든 사회의 일원으로 좀 더 나은 일상이 될 듯합니다.”
9월 25일 서울 노원구 장애인 전동보장구 운전연습장에서 열린 ‘중증장애인 차량용 보조기기 시승 행사’에서 뇌병변장애인 곽성호 씨의 어머니 김혜경 씨가 낭독한 편지의 일부다. 김 씨는 노원구가 추진하는 ‘2025년도 장애인 차량용보조기기 구입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김 씨는 “장비 한 대를 지원한 것을 넘어 뇌병변장애인 가족이 다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라며 거듭 감사를 전했다. 김 씨가 말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문’은 차량용 ‘경사로(램프)’다.
45㎏에 달하는 휠체어와 아들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던 김 씨에게 차량에 설치한 좌우 폭 1m 남짓한 경사로는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문이었던 셈이다. 차량용 보조기기는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소득기준 따라 비용 지원
노원구는 올해 노원구에 거주하는 중증, 지체 및 뇌병변장애인 및 해당 장애인 보호자 중 보조기기 개조가 가능한 차량 소유자를 대상으로 차량용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공모했다. 신청자 중 총 세 명의 장애인 가족을 대상자로 선정해 이날 시승행사가 진행된 것이다.
시범사업은 세 가지 보조기기를 지원 품목으로 선정하고 이 가운데 한 가지 품목의 설치비를 소득기준에 따라 지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비용의 80%, 차상위계층은 70%, 차상위 초과 계층은 50%까지 지원하고 나머지 비용은 자부담 형식이었다.
지원 품목은 ▲휠체어를 탄 상태로 차량 승하차를 돕는 ‘리프트’ ▲경사로 ▲차량 내 조수석 좌석이 문밖으로 90도 회전해 중증장애인들의 차량 탑승을 돕는 ‘이동 회전 시트’다.
김기곤 노원구청 장애인친화도시팀장은 “중증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 대부분은 손목과 발목, 허리 등 여러 곳에 병을 안고 있다”며 “아이가 어릴 때는 그나마 이동이 가능하지만 성장할수록 무거워지는 자녀의 체중과 휠체어, 착석 보조기기까지 부모가 직접 들어 옮겨야 하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김 팀장은 “중증장애인에게 외출은 그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이동 제약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 최초로 노원구가 차량용 보조기기 지원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차량용 보조기기의 경우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이 800만~1400만 원 내외로 장애인 보호자들이 선뜻 구매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이다.
‘어떻게 가야 하나’에서 ‘어디로 가볼까’로
“이제는 하나도 힘이 안든다니까요 정말!”
10월 29일 시범사업 대상자 중 한 명인 정선경 씨를 만났다. 뇌병변장애를 앓는 아들을 둔 정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을 옮기다 보니 키가 5㎝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할 만큼 육체적 부담이 컸다. 외출할 때마다 아들을 들어 올리고 휠체어를 접고 펴는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허리와 어깨 통증은 오래전부터 일상이었다. 환갑을 넘기다보니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 언제까지 자신의 몸이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치료를 위해 주 5일 외출할 때마다 정 씨는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 두려웠다. 휠체어가 진입하기 어려운 건물이나 갑자기 나타나는 턱, 경사면, 좁은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마다 정 씨는 휠체어를 수차례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했다. 아들을 번쩍 들어 옮겨야 할 때도 있고 한 손에는 휠체어를, 다른 손에는 짐을 들고 진땀을 흘리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기진맥진 지쳐서 집에 돌아와도 끝이 아니었다. 중증장애인은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때문에 휠체어 바퀴와 손잡이, 의자 청소에도 한참이 걸린다. 이런 일상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체력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갔다.
하지만 차량용 보조기기인 경사로가 설치된 이후 정 씨의 일상은 달라졌다. 이동과 승하차에 체력적으로 여유가 생긴 덕분에 주말 근교 나들이도 계획해볼 수 있게 됐다. 외출할 때마다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이 앞섰던 것과 달리 ‘이번 주에는 어디를 가볼까’ 하는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정 씨는 “경사로 덕분에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이 정말 많아졌다”며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원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지원규모 두 배로”
정 씨의 말처럼 중증장애인 가족에게 차량용 보조기기 지원은 단순 편의가 아니라 ‘일상을 가능케 하는 필수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모든 차량에 보조기기를 설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종마다 구조가 달라 차량 높이와 내부 공간, 도어 형태 등이 설치 가능 여부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범사업에 포함된 보조기기 가운데 승하차 보조 I형에 해당하는 리프트는 구조적 제약이 커 설치 가능한 차량이 매우 적다. 리프트 장착이 가능한 차종은 ‘스타렉스’와 ‘솔라티’ 두 가지뿐이다. 경사로 설치가 가능한 차종 역시 ‘스타렉스’와 ‘카니발’, ‘레이’, ‘쏘울’ 등 네 가지 모델이다. 승하차 보조 II형에 포함된 이동 회전 시트는 적용 범위가 조금 더 넓다. ‘스타렉스’와 ‘카니발’을 비롯해 ‘팰리세이드’, ‘모하비’, ‘싼타페’, ‘레이’, ‘올란도’, ‘카렌스’ 등 여러 차종에서 설치가 가능하다. II형의 경우 일반 승용차에도 장착이 가능하지만 차량 구조에 따라 설치 여부는 개별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김 팀장은 “차종이 맞지 않아 신청조차 못한 경우도 있고 보조기기 설치를 위해 차량을 새로 구매하겠다는 보호자도 있었다”면서 “내년에는 보조기기 장착이 가능한 차종을 적극 홍보하고 올해 세 대였던 지원 규모를 두 배인 여섯 대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백재호 기자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해!
전동보장구 배터리 교체비 지원하고
보도 턱 없애고
서울 노원구는 지난 1월부터 저소득층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본적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 이동기기 수리·교체비’를 확대해 지원 중이다.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등 전동보장구는 장애인에게 필수 장비지만 배터리 교체 비용이 평균 30만 원에 달해 부담이 크다. 배터리 교체 주기인 18개월이 지나면 정부가 의료급여 수급자에게는 19만 원, 일반 가구에는 17만 1000원을 지원하고 있으나 저소득 장애인에게 남은 자부담 비용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에 노원구는 이동기기 수리업체와 협의해 올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배터리 교체 주기가 지난 경우 정부 지원금 외 최대 11만 원을 추가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비 사업도 추진 중이다. 노원구는 최근 불필요하게 설치돼 이동을 방해하던 보도 위 볼라드 1200여 개를 제거하고 450여 곳의 횡단보도 턱을 낮춰 전동보장구 이용자의 이동 편의를 크게 높였다. 또 공원과 하천 주변에는 긴급 방전에 대비한 급속충전기 64개를 설치해 장애인이 이동 중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2022년부터는 서울 자치구 중 최초로 전동보장구 보험에도 가입해 지난해 기준 자기부담금을 5만 원에서 3만 원으로 낮추고 배상 한도를 최대 5000만 원으로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