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12일 오전 10시 충남 청양군 청양읍 농협 하나로마트. 청양군지역활성화재단 직원 신연옥 씨가 쇼핑카트를 끌며 매장 안을 분주히 오갔다. 손에 든 장보기 요청 목록에는 ‘오이 3개, 무 1개, 양배추 1통, 양파 1망, 두부 2모, 고무장갑 2개’ 등 항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목록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물건을 담는 사이 쇼핑카트가 가득 찼다.
장보기를 마친 신 씨는 물건을 차량에 싣고 곧장 대치면 이화리로 향했다. 하나로마트에서 차로 10여 분, 마을 입구에서 다시 좁은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한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 심(心)부름꾼, 부르면 달려가유(이하 심부름꾼)’ 서비스를 통해 장보기를 요청한 유병천 씨의 집이다.
신 씨가 차량에서 장바구니를 내려 유 씨에게 건네자 유 씨는 전달받은 물품과 마트 영수증을 꼼꼼히 대조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신용카드를 건네자 신 씨는 휴대용 카드단말기로 결제를 진행했다. 가격은 마트에서 구매한 금액 그대로였다. 물품값은 이용자가 부담하지만 배달이나 심부름에 대한 별도의 수수료는 없다.
유 씨는 일주일에 한 번에서 많게는 세 번까지 이 서비스를 이용해 생필품을 구매한다. 유 씨는 “차가 없어 장보러 가기 어려웠는데 전화 한 통이면 장을 대신 봐주고 배달까지 해줘 생활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주민 맞춤 생활편의 서비스
심부름꾼 서비스는 청양군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편의 서비스다. 청양군은 생활 인프라가 부족하고 군민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일 만큼 고령인구 비중이 높다. 청양군은 이러한 지역 특성을 반영해 이동과 외출에 제약이 있는 군민들의 생활 불편을 덜고자 2024년 8월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이 사업을 도입했다. 수리, 청소, 생필품 배송 등 다양한 편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4년 8월부터 10월까지 남양·화성·비봉면에서 3개월간 심부름꾼 서비스를 시범운영한 결과 주민 만족도가 높고 이용 수요가 계속 늘어나 같은 해 11월부터 청양군 10개 읍·면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사업의 실질적인 운영은 청양군지역활성화재단이 맡고 있으며 재원은 정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한다.
현재 심부름 요청은 하루 평균 15~20건에 이른다. 심부름 요청이 가장 많은 것은 단연 장보기다. 이용자는 교통편이 불편한 60~70대 주민이 다수를 차지한다. 동시에 육아로 외출이 어려운 주부, 농번기에 바쁜 청년 농부 등 젊은층 이용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장보기를 담당하는 신 씨는 “채소나 과일 등 생필품 주문이 가장 많고 개나 닭 사료를 부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고령의 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마을 곳곳을 다니며 얼굴을 마주치고 안부를 묻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주민 한 분 한 분의 취향을 생각해 신선하고 좋은 상품을 고르다 보니 이용하는 분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물건 하나만 구입해도 배달은 공짜
심부름꾼 서비스는 장보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업체와 연계해 가전제품·농기계 수리, 집안 청소 등 일상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한다. 노인들의 전동 이동보조기구 대여부터 수리·점검, 변기·세면대 교체 같은 서비스도 중개한다. 세 명 이상의 주민이 공동 신청하면 출장 미용도 제공한다. 말 그대로 주민의 ‘심부름꾼’이자 일상 속 불편을 덜어주는 ‘손과 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청양군지역활성화재단에 전화하거나 ‘주민심부름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오프라인 신청과 모바일 신청 방식을 병행해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어르신은 물론 모바일 활용에 익숙한 젊은 세대까지 누구나 손쉽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젊은 세대에 집중됐던 서비스 수요를 노인 등 정보 취약계층으로까지 확대해 모든 군민이 보편적인 생활편의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심부름비가 없다는 점이다. 물건 하나도 무료로 배달해준다. 배달 앱처럼 최소 주문 금액도 없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매한 가격 그대로 물건값만 지불하면 된다. 물품 수리나 청소 서비스 등을 이용할 때는 재료비나 서비스 이용료만 부담하면 된다. 출장비는 군에서 지원해준다.
즉 물품 구매나 서비스 이용에 따른 비용은 신청자가 부담하지만 심부름 수수료나 출장비는 군이 낸다. 청양군지역활성화재단 김우정 사회적경제팀장은 “출장 거리와 비용 부담으로 서비스 이용이나 수리가 어려웠던 사례가 많았지만 군이 출장비를 지원하면서 업체는 출장이 가능해지고 주민은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효과도
심부름꾼 사업에는 청양에 사업장을 둔 17개 사회적경제기업과 소상공인이 참여하고 있다. 사업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거둔다는 게 청양군의 설명이다. 사업 운영 과정에서 재단 직원과 현장 인력이 투입되며 직접적인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가전수리·청소·설비·미용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경제기업과 소상공인이 참여하면서 간접고용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수익성이 낮아 접근이 어려웠던 면 단위 지역까지 서비스가 확산되며 지역 기반 서비스 일자리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또한 장보기와 생활 서비스가 지역 업체 중심으로 연계되면서 소비가 지역 안에서 순환되는 등 면 단위 지역까지 경제적 활력이 확산되고 있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처럼 생활 불편 해소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뤄낸 청양군의 심부름꾼 사업은 지방소멸 대응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돈곤 청양군수는 “심부름꾼 사업은 단순한 생활편의 제공을 넘어 군민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행정 사업 모델”이라며 “앞으로도 주민 목소리를 세심히 반영해 더 촘촘한 생활편의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정미 기자
지방소멸대응기금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에 대한 지역 주도의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 도입됐다. 2031년까지 매년 1조 원씩 15개 광역자치단체와 107개 기초자치단체(인구감소지역 89곳·관심지역 18곳)에 배분된다. 그간 지방소멸대응기금은 각종 건축·인프라 확충 등 시설 조성 중심으로 활용돼 왔다.
정부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인구유입과 정주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올해부터 지역에서 실질적인 인구유입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 중심으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하도록 운용 체계를 전환하기로 했다. 또 인구유입과 정주확대 효과가 있는 사업을 가려내기 위해 평가 체계를 세분화하고 성과와 집행률을 반영한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아울러 시설뿐 아니라 제도·프로그램 운영에도 기금 활용 범위를 넓혀 지역 주도의 실질적인 지방소멸 대응을 지원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