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 디지털 전환 H2O호스피탈리티 이웅희 대표
여행가방을 끌고 호텔에 들어선 순간을 떠올려보자. 안내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숙박정보를 확인하고 체크인 서류를 작성한다. 예약한 객실에 올라가 입구에 카드키를 꽂으면 전원이 들어온다. 룸서비스나 모닝콜이 필요하면 프런트 직원에게 전화해야 한다. 다음날 방을 늦게 나서면 청소하는 직원과 마주칠 때도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많은 호텔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왜 호텔은 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일상의 다수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시대에.
호텔업계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단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은 것뿐이다. 2010년대 들어 저가항공 붐이 일며 호텔은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아도 투숙객이 넘쳤다. 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다. 코로나19는 변화를 요구했다.
H2O호스피탈리티(이하 H2O) 이웅희 대표는 그 변화를 일으킬 준비를 했다. H2O는 자체 생산한 스마트 도어록에 일회용 객실 비밀번호를 부여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체크인·체크아웃과 룸서비스, 실시간 청소 신청 등을 고객이 직접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했다. 호텔 이용 전 과정을 자동화한 것이다. OTA(숙박예약 대행 채널)와 호텔 사이에 공유되지 않던 예약 고객 정보도 호텔이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어렵지 않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는 일이지만 호텔업계 입장에서는 수십 년을 이어온 시스템에 대한 혁신이었다. 이웅희 대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그게 가능한가?”였다. 물론 가능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호텔업계의 운영 체계는 유지한 지 70~80년 정도 됐어요.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는데 학교 다닐 때 배운 걸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를 마주한 호텔산업의 선택지는 두 개뿐이었습니다. 문을 닫거나 돈을 잃으며 운영하거나. 그때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한 H2O 방식이 제3의 선택지가 된 겁니다.”
H2O 시스템은 호텔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종이로 주고받던 투숙객 서류는 전자파일로 전면 대체됐고 플라스틱 카드키는 모바일 인증 방식으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운영 방식이 디지털 전환으로 효율성을 높이자 호텔은 투숙객 서비스 향상이란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고객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자동화된 운영 방식으로 종이·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게도 됐다. 호텔 운영의 효율성도 높아지자 매출이 20% 가까이 오르는 효과를 거뒀다.
이 대표는 “H2O 시스템이 숙박시설 밸류체인(가치사슬)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H2O의 목표는 새로운 형태의 OTA를 만들거나 프랜차이즈 호텔을 건설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 호텔 운영에서 H2O의 체계가 표준화돼 효율적인 운영이 정착되는 데 있다. 호텔은 접객이란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다.
H2O는 2017년 일본에 진출하며 더욱 주목받았다. 일본이 주택을 숙박시설로 운영할 수 있게 주택숙박사업법을 개정하면서 도쿄올림픽 특수가 맞물린 기회를 잡은 것이다. 더불어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의 자회사 라쿠텐라이풀스테이가 직영하는 숙박시설 물량을 도맡으며 일본 최대 공유주택(셰어하우스) 기업인 GG하우스 등과도 실적을 올렸다. H2O는 현재 일본에서 1만여 개 객실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롯데호텔, 포코호텔(성수점), 오크밸리리조트, 하이원리조트, 모나파크 용평리조트 등이 H2O 시스템을 적용했다. 한국과 일본을 거점으로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등 34개 도시에 진출한 H2O는 총 4만여 개 객실을 관리하고 있다. H2O의 월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12배 성장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 KDB산업은행, 인터베스트 등 유수 투자사로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투자를 유치했고 누적 투자금은 480억 원에 이르렀다. 2021년 <포브스 아시아>는 H2O를 100대 유망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UAE가 글로벌 진출 거점
H2O는 계속해서 신규 시장을 발굴해갔다. 최근 주목하는 곳은 아랍에미리트(UAE)다. UAE는 조사할수록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5성급 호텔 총지배인이 되려면 두바이나 아부다비에서 3년은 일해야 업계의 인정을 받을 만큼 고급 호텔 산업을 선도하는 지역이었다. 앞으로 잠재력이 더 큰 곳으로 H2O의 지향점과 맞닿은 지점이었다.
“H2O가 버짓호텔(합리적 가격대 호텔)에 치중하고 있었으면 중동시장 확장이 오래 걸렸을 거예요. 대개 버짓호텔은 국가별로 쓰는 언어나 PMS(호텔 운영 관리) 시스템이 달라요. 4~5성급 호텔은 영어와 오라클의 PMS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장 진출에 큰 무리가 없는 거죠.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 들었던 ‘그게 가능한가’란 질문을 UAE에서도 똑같이 들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정착된 시스템의 전후 효과가 보이니 설득하긴 더 쉬웠지만요.”
H2O의 사업 방식은 UAE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UAE 숙박 매출의 절반 이상은 부킹닷컴, 아고다 등으로 유명한 미국 회사에서 나오는 상황이었다. 판매채널 수수료로 약 20%를 지불하는 것을 감안하면 UAE 입장에서는 외부로 나가는 금액을 최대한 내부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H2O 운영 시스템을 도입하면 호텔이 직접 고객데이터를 관리하며 자국 호텔 규모를 키우는 데 유용할 터였다.
중동 지역의 특징 중 하나가 B2G(기업과 정부 간 거래)가 많다는 점이다. 정부를 상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초기기업(스타트업) 입장에선 다소 낯선 방식인 것이다. 이때 정부가 지원군이 돼줬다. 이 대표는 “우리 기업이 진출할 때 정부가 돕는다는 걸 UAE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에 동행하며 인적자원도 확보했다.
“UAE 대통령과 장관들이 함께한 왕궁 오찬에 초대받았는데요. 그중 UAE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인은 했던 말을 꼭 지켜서 좋다는 내용이었어요. 한국에 대한 긍정 이미지가 신뢰를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생긴 듯했습니다. 바닷물을 식수로 만드는 담수화 사업,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수 있는 전력사업, 의료시스템 협업 등 인프라(기반시설) 전반에 한국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겠죠. K-팝이 미친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이 대표는 아부다비 거리를 다닐 때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환대를 경험했다고 한다. 카페에 가면 어김없이 “한국 분이세요?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받았고 한국어로 ‘아미(BTS 팬클럽)’라고 쓰인 옷을 입은 사람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을 향한 호의적인 이미지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듯했다. 두 가지 감정이 일었다. 기회와 부담. 지금까지 잘 쌓아온 긍정적 인식에 사업가로서 해를 끼쳐선 안되겠다는 마음이었다. 막연히 먼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UAE와의 심적 거리감은 점차 가까워져 갔다.
H2O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호텔·관광 산업)의 2.0을 의미하는 동시에 변화가 용이한 물질인 물의 변화력, 연결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호텔·여행·숙박·레저 산업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도약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H2O의 2023년 주요 사업지는 중동이다. 중동을 발판 삼아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확장할 예정이다. H2O 시스템은 UAE 호텔업계에 단비 같은 존재가, H2O에도 UAE는 중요한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