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창업의 활성화는 최우선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좋은 일자리 창출의 동력을 키우려면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에 정부는 2019년 3월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을 발표하고 창업 친화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시장에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 기반의 창업이 늘어났고, 유망한 벤처 창업에 대한 민간투자도 크게 늘었다. 창업 준비와 초기 창업 단계를 넘어 투자-성장-회수 및 재투자에 이르기까지 단계마다 활력이 커졌거나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기업-대학-지원기관 등이 한데 어우러진 탄탄한 창업 생태계의 조성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혁신창업의 성과와 앞으로 과제 등을 짚어본다.
성과와 과제
정부가 촉진하려는 창업은 옥석이 구분된다. 창업의 단순한 증가는 의미가 없다. 생활 수단으로 시작하는 생계형 창업은 억제하는 대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새로운 기회를 추구하는 창업을 활성화하자는 게 정부 창업 정책의 기본 방향이다. 생계형 창업은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의 과밀화를 부추기고 자영업 도산 위험을 키울 뿐이다. 반면 기회형 창업이 증가하면 새로운 시장, 새로운 성장 동력, 새로운 일자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시장의 경쟁과 산업의 혁신도 촉진한다. 그래서 기회형 창업은 다른 말로 혁신창업이기도 하다.
혁신창업의 활성화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보유한 초기 창업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Start-up)’의 증가로 나타난다. 스타트업의 등장과 도약, 퇴장과 재기가 활발할수록 혁신주도형 선진 경제로 평가된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확정하면서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을 주요 국정전략의 하나로 발표했다. 또 2017년 11월에는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혁신성장의 핵심 동력은 혁신창업 활성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벤처와 스타트업을 주축으로 삼는 일자리 대책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어 2019년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에서는 임기 말까지 정책 목표와 세부 과제, 일정 등을 망라해 제시했다. 전략의 뼈대는 ‘창업-투자-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을 강화해 스타트업 친화적인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혁신적 포용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게 목표다.
▶벤처기업인 2019년 송년 행사| 벤처기업협회기술형 창업 뜨고, 생계형 창업은 지고
정부 정책과 전략의 성과를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창업 통계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하는 ‘창업기업 동향’을 보면, 2019년 들어 9월까지 전체 창업기업 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7% 줄었지만, 기술기반 업종의 창업(기술형 창업)기업 수는 5.5% 늘었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 기준을 적용해 분류하는 기술기반 업종은 제조업 대부분에다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업, 사업지원 서비스, 교육 서비스, 보건·사회복지, 창작·예술·여가 서비스 등 지식기반 서비스업을 포함한 업종이다. 이런 기술형 창업이 다른 일반 업종의 창업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중기벤처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6년 이후 처음 나타나는 양상이다. 1~9월 중 전체 창업에서 기술형 창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15.5%에서 2019년 17.6%로 높아졌다. 특히 전문·과학·기술업과 사업지원 서비스업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기술형 창업을 주도했다. 정보통신업과 교육 서비스업도 6% 넘는 증가율을 보이며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창업을 이끌었다. 반면 자영업의 개인 창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임대업과 중개업, 음식·숙박업, 개인 서비스업 등은 2019년 들어 크게 줄거나 미미한 증가에 머물렀다. 이런 업종별 창업 증감 추이를 요약하면 ‘기술형 창업이 뜨고, 생계형 창업은 지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창업기업의 형태와 규모에서도 질적인 개선이 뚜렷하다. 2019년 1~9월 중 법인으로 창업한 기업은 전년보다 5.6% 많은 8만 1196개로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간 반면, 개인사업자 창업은 86만 4126개로 7.8% 감소했다. 법인 창업은 개인 창업보다 고용 개선에 대한 기여도가 더 높다. 또 지속성이나 성장성에서도 법인 창업이 유리하다. 통계청의 2018년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14년에 창업한 기업이 2017년 말 현재까지 사업을 지속하는 5년 생존율은 29.2%다. 10곳이 생기면 7곳은 5년 안에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인기업의 5년 생존율은 39.8%로, 개인기업 28.3%에 견줘 훨씬 높다. 법인 창업의 비중이 커지면 전체 창업 생존율이 개선되고, 이는 창업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벤처 투자 역대 최대 4조 원대 진입 예상
혁신창업을 위한 훈풍은 벤처 투자 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집계한 2019년 1~10월 중 신규 벤처 투자액은 3조 5249억 원으로, 2018년 같은 기간보다 21.7% 증가했다. 이로써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18년 벤처 투자 규모(3조 4249억 원)를 이미 넘어섰으며, 지금까지 추세로 볼 때 2019년에는 연간 벤처 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4조 원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 수는 2018년 1~10월 중 1152개에서 2019년에는 1333개로 15.7%의 증가율을 보였다. 업종별 비중은 생명공학(바이오)이 27.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정보통신업(25.2%), 유통·서비스업(20.1%), 문화콘텐츠(11.4%) 등이 뒤를 이었다. 업력으로 구분하면 창업한 지 3~7년 중기 단계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40.4%로 가장 많고, 3년 이내의 초기 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가 34.4%를 차지했다.
중기벤처부 관계자는 “유망 신산업 중심으로 벤처 투자가 2년 연속 큰 폭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 확대와 관련 규제 개선 등 정책적 노력과 함께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까지 가세해 제2 벤처 붐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모태펀드란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를 하지 않는 대신, 민간 벤처캐피털(VC)이나 창업투자회사가 결성한 조합(펀드) 등에 ‘마중물’ 성격의 자금을 투자하는 ‘펀드의 펀드’를 말한다. 2019년 9월 말 기준 모태펀드 총 조성 금액은 4조 5217억 원이며, 여기에서 출자한 자펀드 722개에서 지금까지 누적 투자액은 17조 2828억 원에 이른다.
2020년에는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 예산이 크게 늘어나 벤처 투자 열기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국회에서 통과된 중기벤처부의 모태펀드 출자 예산만 해도 2019년 2900억 원(추가경정예산 포함)에서 2020년에는 8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정부는 증액된 모태펀드 예산을 활용해 2020년에는 8000억 원 규모의 혁신창업 펀드를 추가로 조성해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헬스, 미래형 자동차 등 신성장 분야의 기술형 창업을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유망 스타트업에는 초기 사업화 자금 지원뿐 아니라 연구개발(R&D)과 마케팅,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을 연계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또 현재 기술보증기금 등에서 주관하는 벤처기업 확인제도를 민간 전문가 중심의 벤처확인위원회로 넘기고, 예비 창업자에게 사업화 자금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비창업 패키지 지원사업의 대상을 청년층에서 전 연령층으로 확대한다. 2020년에는 메이커 스페이스(주문자가 원하는 사물을 3D 프린터 등으로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공동작업 공간) 64곳, 스타트업 파크 2곳 등을 추가로 개설하는 등 혁신창업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 지원 역시 확대한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인 ‘컴업(ComeUp) 2019’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경험을 나누는 소규모 토론회| 창업진흥원 제공혁신적인 중소·벤처기업 투자 재원 대폭 확대
혁신창업을 촉진하기 위한 민관협력 사업도 확대된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조성해온 창업, 벤처 생태계에 대기업, 은행, 국내외 투자회사가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일부 대기업과 금융권의 참여는 이미 본격화했다. 포스코는 국내 대기업에서는 처음으로 벤처 투자를 위한 모펀드 조성에 나선다. 2019년부터 5년 동안 8000억 원 규모의 벤처 투자 전용 모펀드를 조성해 기술형 창업, 신기술 개발, 유망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 등에 투자하는 자펀드에 출자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자펀드의 전체 운용 규모를 최대 2조 원으로 키울 예정이다. 벤처 창업의 인프라 구축에도 2000억 원을 투자한다.
또 금융권에서는 KEB하나은행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전용 펀드’에 3000억 원, 신한금융그룹은 일반 벤처투자 펀드에 20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정부 모태펀드 출자로 조성되는 모펀드에 일정 비율로 투자금을 내는 방식이다.
정부의 2020년 혁신창업 활성화 정책에서 또 다른 주요 화두는 ‘스케일업(Scale-up)’이다. 성장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스타 기업’으로 등단하는 사례를 많이 만들자는 게 정부 구상이다. 먼저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을 상대로 투자 유치, 사업화와 판로 개척 등을 전방위로 지원해 2022년까지 유니콘기업 20개 창출을 목표로 세웠다. 유니콘기업이란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가 1조 원(또는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말한다. 국내에서 유니콘으로 등재된 기업은 2018년부터 빠르게 늘고 있다. 2017년 말 3곳에서 2018년 말 6곳으로 늘었다가 2019년 12월 현재 11곳으로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패션 정보 공유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무신사가 10번째, 면역치료제 복제의약품(바이오시밀러) 제조업체인 ㈜에이프로젠이 11번째 유니콘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유니콘기업 보유 순위에서 미국, 중국, 영국, 인도에 이어 독일과 함께 공동 5위로 올라섰다. 유니콘기업의 증가는 혁신창업과 벤처 투자 생태계의 성숙 지표로 여겨진다.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 그리고 유니콘으로
정부는 2020년에도 더 많은 유니콘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강화한다. 우선 모태펀드 예산 4000억 원을 따로 출자해 3조 2000억 원 규모의 스케일업 전용 펀드를 만든다. 또 예비 유니콘(유니콘 후보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별 신용보증으로 2000억 원을 공급할 방침이다. 기업당 최대 100억 원이 지원되는 예비 유니콘 특별보증 사업의 대상 기업 27곳은 이미 선정돼 있다. 아울러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벤처 창업자에게 성장 재원 마련을 위한 투자유치 과정에서 경영권 잠식 우려를 줄여주자는 취지다. 혁신창업을 위해서는 성공 사례 발굴과 육성 못지않게 실패의 경험을 자산으로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는 사업 실패 경험이 혁신적인 재창업의 자산으로 순조롭게 연결될 수 있도록 우수한 예비 재창업자나 재창업 뒤 1년 이내의 초기 재창업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2018년 2월부터 재기지원 펀드를 조성해 2019년 10월 말까지 3300억여 원을 운용하고 있다. 140개 재창업 기업에 1800억여 원의 투자도 이뤄졌다. 2020년에는 재창업 지원 대상으로 좀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선정할 수 있도록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신설해 재창업 전용 평가체계를 도입한다. 또 재창업 기업에 대한 민간투자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창업진흥원 주관으로 ‘재도전 성공패키지 사업’을 펼친다. 이를 통해 민간 투자사가 능동적으로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투자한 재창업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최대 1억 원까지 사업화 자금을 추가로 지원해준다. 예비 창업자와 창업 희망자들에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실패의 아픔을 딛고 재창업한 기업은 더욱 다양한 도움의 손길을 얻어 성과를 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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