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태 우리수산물지키기운동본부 위원장
평생을 바다 곁에서 살았고 40년 동안 바다를 터전 삼아 일했다. 지홍태 우리수산물지키기운동본부(이하 수산물운동본부) 위원장은 “후손들에게 깨끗한 바다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온 ‘바다 지킴이’다. 지 위원장은 우리나라 굴 양식의 1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조합장으로 있는 굴수하식수산업협동조합(이하 굴수협)에서 가장 앞 번호를 달고 있다. “원래는 26번이었는데 앞 번호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내가 1번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은 지 위원장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일은 우리 수산물 소비촉진 운동이다.
지 위원장은 “어업인들은 몇 년 사이 여러 번의 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겨우 버틴 어업인 중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논란으로 주저앉은 사람이 많다. 오염수가 방류되기 전부터 수산물 소비를 꺼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다. 이후에 어업인들이 합심해 우리 수산물의 안전을 홍보한 덕택에 소비심리가 조금씩 살아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과학적인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지 위원장은 “우리 수산물의 안전은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보장된 것”이라며 “방류에 대한 찬반을 떠나 우리 바다와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사실은 믿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류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 수산물을 예전처럼 즐겨도 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왜 어업인들이 오염수 방류에 찬성하느냐”고 한다.
방류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방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막고 싶다. 그러나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주권국가로서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어민들은 방류를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방류하더라도 우리 수산물에 영향이 없으니 안심하고 먹어달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철저하게 방사능 검사를 끝낸 안전한 수산물을 섭취하는 일이다.
수산물 기피 현상으로 어민들이 얼마만큼의 타격을 입었나?
굴을 예로 들면 10㎏에 7만~8만 원 하던 것이 20%, 많게는 30% 떨어진 가격으로 유통됐다. 거의 모든 어종이 타격을 입었지만 우럭은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세슘 우럭’이 잡혔다는 뉴스 때문인가?
정확한 사실과 정보보다 단편적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우럭에서 세슘이 초과 검출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우럭 소비가 급감했다. 나중에 그 우럭은 오염수 방류와 관계없을 뿐 아니라 결코 우리 수산물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사람들에게는 ‘세슘 우럭’이라는 단어만 각인됐다. 그래서 우럭 소비가 급감했다.
과학적 정보를 충분히 얻더라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오염수 방류가 우리 바다와 수산물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찜찜하다’는 생각에 수산물 소비를 꺼리는 측면이 있었다. 왜 우리 수산물을 찜찜한 것으로 여기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오염수 방류 문제가 과학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다뤄졌기 때문이다. 오염수 방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 과학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문제이고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줬다. 편견을 걷어내고 사실만 보면 오염수 방류 때문에 수산물 소비를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우리 수산물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 믿을 수 있나?
나는 방사능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바다를 잘 아는 어민일 뿐이다. 바다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정보를 취했다. 예전에는 우리 어업인 중에도 방류에 반대하는 집회에 더러 참석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렇게 대할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때는 공기 중에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런데 오염수를 잘 처리해 희석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의 방사능만 남는다는 것을 알고 나니 오히려 비행기 타는 것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토론회에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 방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만약 오염수가 안전하다면 굳이 여러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바다에 버리지 말고 자기네 땅에 버리라고 하라’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몰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디다 버리든 결국은 다 바다로 흘러들어간다는 점에서 별 차이 없다고 한다. 일본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방법을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는 어땠나?
별다른 동요 없이 어업을 계속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야 오염수를 처리하는 시설도 갖췄고 엄격한 절차를 거쳐 방류를 하게 됐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안전장치도 없었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검토해보면 우리 바다와 수산물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하물며 지금처럼 모두가 감시하는 가운데서 방류하는 오염수가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우리 어업인들이 안타깝게 피해를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우리 수산물을 예전처럼 사주십사 이야기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수산물운동본부는 어떻게 결성됐나?
일본이 오염수 방류 결정을 내리고 나서 방류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산물 소비가 급감했다. 만약 오염수 방류로 인해 우리 수산물이 오염되는 것이라면 우리 어업인들이 앞서나가 방류에 반대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어업인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을 타개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수산물운동본부가 발족됐고 전국 곳곳에서 우리 수산물 소비 촉진 캠페인이 펼쳐졌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오염수 방류에 대한 거짓정보가 더 많이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격려와 응원의 말을 남겨주는 시민이 늘었다.
시민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누나?
‘12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들에게 듣기로 태평양 해류가 한 바퀴 도는 데 4~5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12년이 지났으니 세 바퀴가 돈 셈이다. 그 사이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수산물을 섭취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와서 갑자기 기피 대상이 된 것이다. 이건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강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트리는 것과 같은 변화가 있다는데 우리 어업인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될 일이다.
바다와 수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만큼 더욱 속상하겠다.
통영 굴을 예로 들면 통영 굴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굴이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씨알이 굵은 참굴을 양식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통영의 바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하는 청정해역이다. FDA는 패류를 수입할 만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2년에 한 번씩 해역을 조사한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조사에서 계속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굴을 키우기 좋은 환경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자연히 맛있는 굴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통영 굴은 우리나라 굴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전 세계 생산량의 5%다. 그만큼 이름 있고 인정받는 굴이다.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굴수협 조합장을 맡아 굴 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아버지 대부터 굴 양식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양식법을 우리 바다에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환경이 다르니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 우리만의 굴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굴수협도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창립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위판액이 1000억 원을 넘어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굴 산업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를 테면 굴 껍데기를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는 일이다. 굴은 참 좋은 식품이지만 폐기물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굴 껍데기가 여러모로 친환경적이다. 온실가스를 흡수하기 때문에 자연 해안선을 조성할 수도 있고 탄소 흡수 소재를 만들 수도 있다. 석회석 대체제로 만들어 건축자재로도 쓸 수 있다.
깨끗한 바다를 보존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어민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오염된 바다는 좋은 수산물을 낳을 수 없으니 어업인으로서는 깨끗한 바다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누구보다 바다의 오염에 민감한 사람이 어업인들이다. 오염수 방류 문제로 돌아가자면 방류될 오염수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검토한 것도 아마 어민들일 것이다.
우리 수산물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나?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수산물은 안전했고 계속 안전할 것이다. 안전한 수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방사능 검사도 계속하고 있고 바다를 감시하는 일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원전 오염수 방류라는 사건에 대한 걱정도 결국 바다에 희석돼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수산물을 예전처럼 즐겨달라.
김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