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시 의료·돌봄 통합지원단 김범석 중동한의원장
경기 부천시 좁은 골목 끝, 한 주택 문을 열자 A씨가 김범석 중동한의원 원장을 반겼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며 앞으로 걸어오던 A씨는 몇년 전만 해도 거의 움직이지 못하던 루게릭병 환자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집 천장에서 비가 샐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천시의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대상자가 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A씨는 “방금 전 집 앞에 핀 꽃을 구경하러 나갔다 왔다”고 말했다. 그는 김 원장의 지시대로 팔을 들었다 내렸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김 원장은 A씨를 진찰한 뒤 “루게릭병이라는 퇴행성질환이 극적으로 호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통합돌봄’이라는 처방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이 말하는 통합돌봄은 2026년 3월부터 시행될 의료·돌봄 통합지원 사업을 말한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해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 47개 시·군·구에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부천시도 그중 한 곳이다. 부천시는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2024년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성과대회 및 정책포럼’에서 유공 부문 우수기관 표창과 우수사례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부천시의 의료·돌봄 통합지원이 성공한 데는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힘이 됐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재택의료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재택의료센터 운영과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부천시 곳곳을 누비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 의료·돌봄 통합지원이 어떤 서비스이며, 왜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부천시청 돌봄지원과 통합돌봄팀의 안내를 받아 김 원장의 일정에 동행했다. 홍은영 통합돌봄팀장이 인터뷰에 함께했다.
루게릭병과 같은 퇴행성질환의 예후가 좋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 알고 있다. A씨는 어떻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나?
(김범석 중동한의원 원장, 이하 ‘김’) 만약 A씨가 병원을 오가면서 진료를 받아야 했다면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을 것이다. 통원 치료가 힘들어 치료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살던 곳에서 필요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홍은영 부천시청 돌봄지원과 통합돌봄팀장, 이하 ‘홍’) 처음 A씨를 만났을 때는 거의 거동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중증 우울증도 앓고 있었고 주거 환경도 열악했다. A씨의 부인도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딸도 마찬가지였다. 부천시에서는 A씨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의료 처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A씨의 삶 전반이 개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는 어떤 도움을 통해 어떻게 나아졌나?
(홍) 낡은 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거지를 찾아주고 가사 서비스를 제공했다. 병간호에 지쳐 본인이 아픈 줄도 몰랐던 A씨 부인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게 했다. A씨의 딸은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드림스타트 사업’ 대상자가 돼 학습·정서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면서 A씨의 우울증도 나아졌다. 의료진과 A씨 모두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루게릭병 증세까지 개선됐다.
모든 의료·돌봄 통합지원 대상자는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나?
(홍) 그렇다. 면밀한 조사를 통해 의료·돌봄 통합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전반적인 지원 계획이 수립된다. 부천시는 기존에 마련된 다양한 복지지원 시스템을 연계해 다방면으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지원이 필요한 신청자는 어디서나 통합안내창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을 받으면 협력체계를 구축한 보건·복지 부서가 사례를 조사하고 판정해 지원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는 낙상 방지 장치를 설치하고 밑반찬 등을 만들어주는 가사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의료 지원도 한·양방이 협진해 가장 효과적인 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계획한다.
의료·돌봄 통합지원이 왜 필요한가?
(김) 재택의료를 해보니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 상당수가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만성질환이나 퇴행성질환, 자가면역질환 같은 경우는 생활 전반의 개선이 있어야 하는데 의료진이 현장으로 가야 풀 수 있는 문제다.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살게 하려면 돌봄과 의료의 통합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이뤄지나?
(김) A씨 다음으로 찾아갈 B씨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B씨는 류머티즘성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알고 보니 10여 년 전 우리 한의원에도 왔던 환자였다. 10년 사이에 노쇠해져 이제는 병원에 찾아오기도 어려운 상태가 된 거다. 이런 사람에게는 ‘병원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던 곳에서 건강을 되찾아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치료해야 한다. B씨의 경우 진료하다 보니 관절염 외에도 다른 문제가 있어 양방 진료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전반적인 건강관리도 필요했다. 그래서 부천시민의원과 협진을 시작했고 부천시에서 진행하는 ‘건강돌봄리더’ 사업도 연계했다.
의사가 처방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치료·지원 계획도 세워야 하는 것 같다.
(김) 매주 부천시에서 진행하는 통합지원회의에 참석한다. 선정된 대상자들에게 어떤 치료와 지원이 필요한지 담당자들과 함께 지원 계획을 세우고 진행 상황도 공유한다.
한 명 한 명 관리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홍) 부천시에서는 이 사업만 전담하는 직원이 22명 있다. 집중적으로 사례 관리를 할 때는 직원들이 집에 방문해 집안에 어떤 집기들이 있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무엇이 불편하고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하는지를 샅샅이 파악한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욕구도 발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한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나?
(홍) 약 28가지 서비스가 있다. 생활지원 분야에서는 식사 영양관리나 돌봄 서비스가 있고 주거 분야에서는 낙상 사고 등을 예방하는 장치를 설치하거나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해 독거노인 안부와 건강을 확인하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이렇게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다 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경증 치매 환자들은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합지원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치매를 의심하게 돼 진단을 받아보니 치매 환자로 판정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지원을 받고 싶어 하는 주민이 많은가?
(홍)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건강을 유지하며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어르신이 87% 이상이다. 부천 중동지구는 1기 신도시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다.
(김) 실제로 진료를 나가보면 10년 전, 15년 전 우리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던 환자인 경우가 종종 있다. 어르신들이 기력이 있을 때는 병원에 직접 나오지만 노쇠해지면서 점점 집 안에만 머물게 된다. 그러면서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생활환경은 악화돼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런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제는 병원에서 환자를 기다리기보다 직접 찾아가야 한다.
꼭 신청해야 이용할 수 있나?
(홍) 그렇지 않다. 부천시에는 기존에 구축돼 있는 복지 발굴 시스템이 있다. 동 주민센터나 구청 등에서 대상자를 발굴해 시에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A씨의 경우에도 위기가구로 발굴돼 지원이 이뤄졌다. 돌봄서비스 한 가지만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신청한 서비스 외에 추가로 발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어 B씨의 집에 일어서고 앉기 편한 보조장치를 달았는데 담당 공무원이 B씨의 집을 찾아가보고 면담한 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설치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 의료인 등이 서로 협력하는 일이 무척 중요할 것 같다.
(김) 지역사회의 의료인, 지방자치단체, 주민. 이 세 주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서로 협력해보니 주민들의 삶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루게릭병 증상이 호전된 A씨 외에도 인지장애, 우울 증상이 개선된 환자도 있었다. 통증이 줄어들어 살기 편해졌다는 환자는 매우 많다. 이는 단지 의료 서비스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통합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통합지원 수요는 더욱 커질 것 같다.
(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의료·돌봄 통합지원 방향으로 의료·복지 서비스가 발전해나갈 것이라 본다. 의사로서도 환자가 아플 때만 찾는 존재가 아니라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래서 환자를 직접 찾아다니는 것이다.
김효정 기자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확대
현재 47개 지자체 참여… 시범사업 지자체 추가 모집
보건복지부는 4월 11일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의 전국 확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할 지방자치단체를 추가 모집한다고 밝혔다.
2026년 3월에 본격 적용될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생활을 하도록 시·군·구가 중심이 돼 의료·요양·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해 제공하는 사업이다. 시범사업에서는 지자체가 통합지원체계를 선제적으로 경험해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재 전국 47개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다.
추가로 시범사업에 선정될 지자체에는 기존의 시범사업과 마찬가지로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적용을 위한 민·관 협력 인프라를 마련하고 표준모델 프로세스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일대일 컨설팅을 지원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관련 전문기관과 협업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본 사업에서 활용될 종합판정체계를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데이터 등 정보 이용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