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 정상회담
윤석열 대통령은 4년 5개월 만에 재개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5월 26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 외교안보대화’를 신설하기로 하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을 8년 만에 재개하기로 했다. 13년째 중단된 한중 투자협력위원회도 재가동되고 양국의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한 ‘한중 수출통제대화체’도 출범한다.
양국 간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그동안 경색됐던 양국 관계 개선에 물꼬를 터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장관급 대화가 재개되고 지방정부 간 교류도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며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상호 존중하며 공동이익을 추구해나가자”고 말했다. 리 총리도 이에 화답해 “한중관계를 중시하며 이를 계속 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중국 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한국 측과 함께 노력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먼저 한중 외교안보대화를 신설하기로 했다. 외교안보대화 신설은 중국 측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양국 외교부와 국방부가 참여하는 ‘2+2’ 대화 협의체다. 이는 양국 관계가 흔들림 없이 발전하려면 긴밀한 소통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두 정상의 공통된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민관 1.5트랙 대화, 외교차관 전략대화 등 외교안보 소통 채널이 재개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양국 관계는 외교안보의 긴장 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협력 단계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중 FTA 2단계 논의가 재개되면 외부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협력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정상회담 후 가진 브리핑에서 “그동안 추진된 상품교역 분야 시장 개방을 넘어 서비스 분야, 특히 문화·관광·법률 분야에 이르기까지 교류와 개방을 확대하는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중 FTA는 2014년 상품 분야에 대한 협상이 타결돼 2015년 12월 발효됐다. 당시 양국은 먼저 포지티브(허용하는 것 외에는 불허하는 규제) 방식으로 서비스·투자 시장을 개방하고 2년 내에 네거티브(모두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제한을 두는 규제) 방식의 후속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한 중국이 2017년 한한령을 내리고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협상이 이어지지 못했다.
투자 분야에서도 양국 정상은 성과를 도출해냈다. 13년 만에 재개될 한중 투자협력위원회에 대해서 대통령실은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중국 상무부 간 장관급 협의체”라고 설명하며 “양국 간 무역·투자 활성화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리 총리에게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활발히 투자하고 안심하고 기업 활동을 펼 수 있도록 글로벌 기준 스탠더드에 맞는 투자 지원 정책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법치에 기반한 시장화를 계속 추진하고 국제화를 더욱 높여나가겠다”고 화답했다.
공급망 분야에서도 한중 수출통제대화체가 새로 출범한다. 대통령실은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한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설치됐던 한중 공급망협력조정협의체와 한중 공급망 핫라인도 가동을 확대할 방침이다.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자는 두 정상의 합의는 실질적인 성과도 이끌어냈다. 경제교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중 하나로 2024년 하반기 중 한중 경제협력교류회 2차 회의가 열린다. 2023년 11월 중국 지린성에서 기획재정부와 중국의 발전개혁위원회가 공동으로 1차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양국의 기업인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 교류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협의체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두 정상은 서로의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창의적인 콘텐츠가 풍부하게 생산될 수 있게 교류를 넓혀나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 2021년 9월 이후 중단됐던 한중 인문교류촉진위원회를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 24세부터 33세까지의 청년을 50명씩 교류하는 양국 청년 교류 사업도 재개된다.
이처럼 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여러 대화체를 개설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한중관계가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국제사회에서 한중 양국이 직면한 공동의 도전과제가 엄중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지난 30여 년간 한중 양국이 여러 난관을 함께 극복하며 서로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해왔듯이 오늘날의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도 양국 간 협력을 계속 강화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 반갑게 리창 총리 맞이한 윤 대통령
2023년 3월 취임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국가 서열 2위인 중국 국무원 총리가 한국을 찾은 것은 9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리 총리는 2023년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나 회담을 가졌는데 8개월 만에 한국에서 재회했다. 이에 반가움을 표시한 윤 대통령은 리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배웅하는 길에 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보의 시를 인용했다. 마침 회담이 끝날 무렵 비가 내리는 것을 두고 ‘봄밤에 내리는 기쁜 비’라는 뜻의 두보의 시 ‘춘야희우’를 언급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재회에 대한 반가움과 더불어 한중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긴밀하게 협력하자”고 말하자 리 총리는 “중국은 한국과 함께 노력해 서로에게 믿음직한 좋은 이웃, 또한 서로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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