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류 투약 사범의 재범을 막고 원활한 사회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치료·재활을 조건으로 한 기소유예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다고 4월 15일 밝혔다. 이에 따라 마약 투약으로 적발된 기소유예자는 마약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재판 절차를 통한 형사처벌을 면하게 된다. 다만 다시 마약 투약 등 재범을 저지르거나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으면 기소 절차가 진행된다.
정부는 제도 도입을 앞두고 2023년 법무부·대검찰청·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함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기소유예자 22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시범사업 평가 결과 참여자 22명 모두 보호관찰기간 중 추가 투약 행위는 없었으며 참여자 개별 심층 인터뷰에서도 심리상담 등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에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등 효과가 입증됐다.
이 제도는 마약류 단순 투약 사범 중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건부 기소유예자에 대해 정신건강의학전문의 등으로 이뤄진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개인별 중독 수준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종전 치료 조건부 등과 다른 것은 ‘재활’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원래 검찰에서 마약류 단순 투약 사범의 조건부 기소유예 조건은 선도, 치료, 교육 등 세 종류였으나 이번 제도 시행에 따라 ‘사법·치료·재활 연계 모델 참여 조건’이 추가돼 네 종류가 됐다.
이에 따라 해당 기소유예자에 대해서는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심리상담사, 중독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가 매월 두 차례 정기 개최돼 중독 수준을 평가하고 이들의 의학적 소견 등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위원회에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치료보호제도와 적극 연계해 원스톱 치료도 지원한다.
채규한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은 “이번 연계 모델의 전국 확대는 공중보건 관점에서 마약류 투약 사범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재활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복귀하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영빈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은 “회복 의지가 있는 마약류 투약 사범에게 치료와 재활의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며 “성실히 참여하지 않거나 재범을 저지르는 등 조건을 이수하지 못하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고 다시 사법절차에 따라 기소함으로써 대상자들이 성실하게 프로그램에 임해 치료·재활을 통한 재범방지와 사회복귀를 촉진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예방부터 재활까지 사회안전망 구축
이들의 재활을 위한 중독재활센터와 예방교육도 확대된다. 식약처가 4월 12일 발표한 ‘2023년 마약류 폐해 인식 실태조사’를 보면 각종 마약류 물질 중 하나라도 사용해봤다고 응답한 성인은 3.1%였고 청소년은 2.6%였다. 성인의 4.7%, 청소년의 3.8%가 주변 사람(가족, 지인, 또래 친구) 중 대마초 사용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고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할 것 같다는 응답도 성인은 11.5%, 청소년은 16.1%에 달했다.
또 성인의 86.3%, 청소년의 70.1%는 대한민국을 마약 청정국으로 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성인의 92.7%, 청소년의 84.4%는 국내 마약류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성인의 89.7%, 청소년의 84%가 인터넷 사이트·누리소통망(SNS)·지인 소개 등의 경로를 통해 마약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응답해 전반적으로 한국 마약류 문제의 심각성과 마약류 사용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마약류 확산 및 인식에 대응해 예방부터 재활까지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서울·부산·대전 등 3곳에서 운영 중인 중독재활센터를 전국 17곳으로 확대하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각 지부와 통합해 마약류로 고민이 있는 사람이 거주지역 내에서 마약류 예방 상담 및 재활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 단위 사회복귀 지원망을 구축한다.
지난 3월 문을 연 ‘24시 마약류 전화상담센터’를 본격 활용하고 교정시설 출소 전이나 보호관찰 종료 전 중독재활센터로 안내·유입해 재활 연계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 예방·재활교육, 상담, 심리검사, 프로그램 운영 등 종합적인 중독분야 역량을 갖춘 전문인재 양성을 위해 ‘마약류 예방·재활 전문인력 인증제(식약처장 인증)’를 도입한다. 그동안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인력을 마약류 예방·재활교육 강사로 위촉했다. 인증제가 도입됨에 따라 마약퇴치운동본부가 교육 및 양성과정 개발, 마약류 재활사업 홍보 등을 맡고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인증제 운영·관리를 식약처로부터 위탁받아 담당한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체계적인 전문인력 양성에서부터 마약류 예방·재활체계 수립이 시작된다. 미래세대인 청소년과 청년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마약류 예방·재활체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류 예방교육 의무화
마약류 예방교육도 2024년부터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 모두 의무화됐다. 교육부의 ‘제2차 학생건강증진 기본계획(2024~2028)’에 따르면 마약중독예방교육으로 고등학교 7시간, 중학교 6시간, 유치원·초등학교 5시간이 실시된다. 취약계층 청소년 및 군인 등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도 확대한다. 식약처는 2024년 청소년 196만 명, 군인 6만 명 등 202만 명을 대상으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강사를 활용해 교육할 계획이다. 가상현실 기술(AR, VR 등)을 활용한 맞춤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학교·군부대 등에 예방교육용 학습자·강사 맞춤형 표준교재를 제작해 보급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4월 17일 약사, 퇴직교사 등 ‘마약예방교육 전문강사’ 30명을 위촉했다. 마약예방교육 전문강사는 4월 22일부터 11월까지 희망하는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1500여 회의 마약예방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호기심에 마약을 접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약중독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2024년부터는 연령별 성장단계를 반영한 표준교육교재를 활용해 체계적인 마약예방교육을 한다. 서울시는 교육 수요가 증가한 만큼 ‘마약예방교육 전문강사’를 올해 30명에서 2025년 50명, 2026년 100명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경기 화성시도 4월 19일 화성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 청소년 마약폐해예방사업 ‘마지NO선’을 주제로 관내 학교 실무자인 교사를 대상으로 마약중독강좌를 실시했다. 마약·약물 노출 청소년에 대한 교사의 개입·대처 방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약물 노출 청소년을 조기에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유슬기 기자
박스기사
마약류 밀반입 차단 해외 공조 강화
한·캄보디아 공조 ‘강남 마약음료’ 범인 검거
2023년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를 상대로 마약음료를 마시게 했던 사건의 마약 공급 총책이 최근 검거됐다. 국가정보원은 4월 16일 해당 사건의 필로폰 공급 총책인 중국 국적의 남성 A씨를 캄보디아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A씨 검거를 끝으로 ‘강남 마약음료 사건’ 관계자 중 마약 제조·운반 인물은 모두 붙잡혔다.
우리나라와 캄보디아 현지 경찰의 공조수사로 붙잡힌 A씨의 체포 현장에서는 다량의 필로폰과 마약 제조 설비 등이 발견돼 캄보디아법에 따라 현지에서 처벌을 받을 예정이다. 캄보디아에서는 80g이 넘는 불법 마약류를 소지한 상태로 적발돼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
이처럼 정부는 세계적인 공조를 강화해 해외에서 밀반입되는 마약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관세청은 캄보디아 관세총국과 공조해 3월 3일 마약 운반책 2명이 국내에 밀수하려던 마약 2㎏의 국내 반입을 캄보디아 현지에서 막았다. 관세청은 캄보디아발 마약 밀수가 올해 1~2월 두 달 동안에만 2023년 한 해 적발 규모를 넘어서는 위험 수준에 이르자 찌릉 보톰랑세이 주한 캄보디아 대사와의 고위급 면담을 통해 캄보디아발 마약 밀수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행 우범 여행자에 대한 검사 강화 등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캄보디아 관세 당국이 한국행 여행자 검사를 강화했고 한국으로 마약을 밀수하려던 한국인 2명을 체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