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교육돌봄연구회’ 좌장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
2024년 2학기부터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늘봄학교가 전면 도입된다. 이와 관련해 늘봄학교를 오해하는 의견도 있다. 늘봄학교를 기존 방과후학교의 연장선으로만 보는 시각이다. 늘봄학교의 전면 도입을 단지 방과후학교나 돌봄교실의 운영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봄학교는 방과후학교나 돌봄교실과 다르다. 늘봄학교의 확대는 그동안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로 나뉘어져 있던 교육과 보육의 역할을 가정에서 국가로 돌리겠다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이런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월 5일 열린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라는 주제로 열린 아홉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모두발언에서 “학부모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기고 마음껏 경제·사회 활동을 하려면 학교 돌봄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어런츠 케어(parents care)’에서 ‘퍼블릭 케어(public care)’, 즉 국가돌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이제 우리나라도 서둘러 ‘사회적 교육·돌봄체계’를 만들 시기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2023년 6월부터 늘봄학교의 중장기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교육부의 ‘미래교육돌봄연구회’ 좌장을 맡고 있다. 늘봄학교를 전면 도입해야 하는 필요성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다.
늘봄학교를 왜 전면 도입해야 하나?
늘봄학교 전면 도입 정책을 일종의 정원의 울타리 만들기로 생각하면 좋다. 원칙적으로 하자면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드는 것이 맞다. 늘봄학교 관련 제도를 만들고 장기적으로 시범 운영해보고 보완해가며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는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기에 너무 급박한 상황이다. 일단 울타리를 만들어둔 다음 정원을 완성해갈 수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가 무엇인가?
우리만의 위기는 아니다.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한 번쯤은 겪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문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찾아오는 저출산 현상은 다른 국가에도 있었다. 그런데 이 위기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이 바로 부모의 ‘일·가정 균형’, ‘사회적 교육·돌봄체계’였다. 이걸 일찍부터 신경쓴 북유럽 국가는 위기에서 금방 벗어났고 이제 이 문제를 신경쓰기 시작한 독일도 출산율 반등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교육·돌봄체계라는 말이 낯설다.
쉽게 말해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아이의 교육과 돌봄을 지원하는 것이다. 개인이 알아서 학원에 보내고 돌봄도우미를 고용하지 않아도 국가가 아이를 맡아 지원해준다. 다만 오해하기 쉬운 것이 사회적 교육·돌봄체계가 국가가 전적으로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적 교육·돌봄체계가 완성된다는 것은 부모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루면서 부모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늘봄학교는 사회적 교육·돌봄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늘봄학교가 제대로 자리 잡힌 사회를 상상해보자. 부모는 일 때문에 아이의 교육과 돌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느라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늘봄학교에서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빠짐없이 돌봐주기 때문이다. 대신 부모는 일이 끝나고 아이들을 만나 부모로서 역할만 하면 된다. 숙제를 다그칠 필요도, 뒤늦게 간식을 챙겨줄 필요도 없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형성에 집중할 수 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늘봄학교가 자리 잡으면 저출산의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던 독일에는 저출산 위기가 찾아왔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면서 생긴 일이다.
독일도 처음에는 현금 지원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영유아기 돌봄을 보장하고 초등 전일제학교, 우리로 치면 늘봄학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현금 지원과 사회복지 서비스의 균형을 이루게 됐다. 그러면서 저출산 현상이 반등한 것이다.
늘봄학교를 당장 2학기부터 전면 도입한다는 방침이 조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인구학적 도전은 차근차근 해결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다. 거기다 우리는 종종 어떤 나무를 심을지를 두고 끝없이 토론하다가 제대로 심지도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니 일단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나무를 심어보자는 것이다.
그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데 공감한다.
저출산·고령화뿐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인구 문제는 하나 더 있는데 다문화사회로 급격히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유입이 늘어나는 유럽에서도 겪고 있는 문제다.
다문화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격차다. 격차는 교육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교육·돌봄체계가 없는 상황에서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교육·돌봄수준이 달라지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자녀가 이어받는 격차가 발생한다. 늘봄학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아동이든 양질의 교육기회를 얻고 세심한 돌봄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늘봄학교는 어떻게 운영될까?
지금까지 방과후 따로, 돌봄 따로 운영되고 있던 것이 늘봄학교 하나로 합쳐진다. 그러면서 구성원의 역할도 확실히 구분되는데 교사가 아이들의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새로 투입된다. 돌봄은 기존에 돌봄전담사라고 불렸던 늘봄전담사가 맡고 방과후 강사는 늘봄프로그램강사로 배치된다.
따로 운영되고 있던 걸 합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초등학생까지는 교육과 돌봄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돌봄이 필요할 때는 교육이 아쉽고 교육을 받다 보면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종종 교사가 돌봄까지 해야 하고 돌봄교실에서 만족하지 못해 사교육을 받곤 했다. 늘봄에서는 이 둘을 단순히 하나로 합치는 것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한 공간에서 희망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서비스를 받나?
일명 ‘늘봄허브’라는 플랫폼이 생길 예정이다. 늘봄 프로그램을 다양하고 내실 있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한데 모은 플랫폼이다.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할 때를 예로 들자면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인공지능(AI) 교실, 언론사가 참여하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 기업이 참여하는 방과후 프로그램 같은 것이 다양하게 생겼는데 이걸 한데 모아 학교가 비교·선택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서비스의 질이 기존 사교육이나 개인 돌봄보다 더 좋아야 성공할 텐데?
그래야 부모들이 늘봄을 선택할 것이다. 우선은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학교가 알아서 강사를 섭외하게 하지 않고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이를 적극 지원한다.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과 강사 섭외를 돕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사교육보다 훨씬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늘봄학교 맞춤형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운영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아이들의 체육활동을 위해 태권도, 축구처럼 사교육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학교의 훌륭한 시설을 백분 활용해서 훌륭한 강사진에게 체계적인 체육 수업을 받을 수 있다. 늘봄허브 같은 플랫폼 덕분에 우수한 강사와 프로그램을 학교가 직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 간 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지역 간 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늘봄학교를 도입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기존 방과후학교가 각 학교의 책임 아래 운영됐다면 늘봄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모두 지원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늘봄지원실 같은 조직이 만들어질 것이고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개발될 것이다. 오히려 유휴자원이 많은 지역에서 더 좋은 늘봄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일선 교사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막상 들어보니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늘봄학교는 참여하는 인력의 처우 개선을 전제로 운영돼야 한다. 늘봄지원실이 만들어지면 교사는 오히려 행정업무에 대한 부담이 줄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다. 늘봄전담사는 돌봄에만 집중하고 방과후교육은 늘봄강사가 할 것이다.
전문가 입장에서 이번 정책이 잘 운영될 것으로 예상하나?
미래교육돌봄연구회가 2023년 11월에 늘봄학교 정책에 대한 권고문을 냈는데 그게 이번 정책에 잘 반영됐다. 권고문을 통해 “늘봄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장소가 학교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내 아이가 지금보다 질적·양적 수준에서 더 나은 돌봄과 교육기회를 가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믿음, 확신을 주는 것이 늘봄학교다.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막 시행하는 정책이다보니 교육주체, 교사나 부모 모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늘봄학교는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돼야 한다. 교사도 늘봄학교를 통해 교육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부모는 아이가 더 안전하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거라고 믿어야 한다.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늘봄학교다.
정부가 발표한 늘봄학교 확대 정책의 목표가 ‘누구나 만족하며 누릴 수 있는 종합 교육프로그램 제공’이다.
부모와 학생의 만족은 궁극적으로 안심하고 편하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가족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고 저출산의 걸림돌, 교육격차를 만드는 장애물이 사라질 것이다. 늘봄학교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인구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첫발을 이제 뗐다고 보면 된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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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