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경보 내비게이션’ 아이디어 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김도창
“500m 앞 홍수 주의 구간입니다. 오후 2시 ○○댐 방류 예정입니다.”
7월부터 집중호우 때 침수 위험 지역 주변을 운행하는 차량은 내비게이션이나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 같은 알림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다. 7월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주요 6개 내비게이션·지도 앱이 홍수경보, 댐 방류 경보 등 위험 상황을 운전자에게 실시간으로 알리는 업데이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카카오 내비게이션과 현대차·기아 내비게이션, 아틀란, 네이버 지도는 업데이트를 완료했고, 티맵모빌리티와 아이나비 에어는 이달 하순 차례로 업데이트된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도로·지하차도가 침수되는 사고가 반복되면서 막대한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2023년 7월부터 기업들과 내비게이션을 통해 홍수경보 등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업데이트를 마친 내비게이션은 차량이 홍수경보 발령지점 반경 1.5㎞ 내외, 댐 방류 반경 1㎞에 진입했을 때 화면과 음성으로 ‘500m 앞 홍수 주의’, ‘하천 수위 상승 주의’ 같은 경고를 보낸다. 환경부가 홍수경보 발령 지점으로 지정한 전국 223개 지역이 대상이다. 차량 운전자는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지하차도 진입 전에 속도를 줄이는 등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는 과기정통부 디지털사회기획과 김도창(38) 사무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있던 날, 하루종일 제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연락이 쏟아졌어요. 사고 소식을 듣고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저를 걱정해서였죠. 그날 지하차도에서 차가 물에 잠겨 시동이 꺼졌다가 주변 운전자들의 도움으로 차를 밀고 나와 가까스로 사고를 모면한 직원도 있어요. 나도, 가까운 지인도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김 사무관의 머리에 내비게이션이 번뜩 떠올랐다. 차량 운전자들이 필수로 사용하는 데다 차량 운행 중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긴급재난문자와 달리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으로 홍수경보 등을 알리기 위해선 홍수 등 물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민간 내비게이션 기업들과의 논의가 필요했다. 김 사무관은 담당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하고 협력을 위한 회의를 거듭하며 설명과 설득을 이어갔다.
결국 올해 1월 과기정통부와 환경부가 ‘도로·지하차도 침수사고 예방을 위한 민·관 합동 내비게이션 고도화 특별전담반(TF)’을 출범했고 국민이 자주 이용하는 민간 내비게이션의 고도화를 추진했다. 환경부는 실시간으로 홍수경보와 댐 방류 데이터 제공을, 과기정통부는 이 데이터를 각 내비게이션으로 연결하는 데이터 중계와 TF 총괄을, 각 기업은 홍수기에 맞춰 서비스의 업데이트를 서두르면서 이달부터 내비게이션을 통한 홍수위험 실시간 알림(홍수경보 및 댐 방류 정보) 서비스가 시작됐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21세기에 차를 몰고 가다 지하차도에 물이 차서 차가 침수되고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담했다.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 사고를 막을 수는 없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기정통부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침수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는 방법을 바로 생각했나?
처음에는 지하차도 침수 시 입구에 진입 차단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이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갈 게 분명했다. 홍수로 인한 침수사고는 불과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되풀이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떠오른 게 내비게이션이다. 당시 운전을 막 시작해서 내비게이션에 많이 의존했다.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정말 많은 정보를 주지 않나. 내비게이션으로 미리 위험 정보를 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자들에게 확실히 도움이 되겠다.
여름철에는 집중호우와 강 범람으로 인해 도로와 지하차도가 급격히 침수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한 사고 예방을 위해선 차량 운전자가 홍수 위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운전 중에 긴급재난문자나 뉴스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내비게이션은 운전 중에도 운전자가 주시하고 있어 위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이디어가 바로 정책에 반영됐나?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추진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려면 내비게이션 업체를 만나 설명을 해야 하는데 혼자 발 벗고 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부처차원에서 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고자 SK텔레콤, 네이버, 카카오 등 내비게이션 관련 기업 관계자와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책안을 설명했다. 기업들의 의견을 듣고 내비게이션을 통해 홍수경보 등 위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관련 기업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미 내비게이션이 제공하는 정보가 많은데 홍수경보까지 더해지면 이용자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위험 경보도 중요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생각해야 했다. 더욱이 정부가 도로 통제를 개시하는 등 명확한 신호를 줘서 이를 내비게이션에 표출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도로·지하차도 침수 위험을 판단해 미리 안내하는 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기업들의 부담이 컸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기업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방법을 찾고 설득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예산 시즌이 지나 추가적인 예산 투자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국민의 안전과 도로·침수사고 예방을 위해 기업들이 나섰다. 올해 1월 TF가 출범하면서 데이터 중계(가공), 모의 테스트 등의 과정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이번 장마철에 맞춰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와의 협의도 필수적이었을 텐데.
환경부도 올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홍수예보를 자동화하고 예보 지점을 75곳에서 223곳으로 대폭 확대하는 등 여름철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었다. 환경부는 ‘홍수 알리미’ 앱으로 223곳의 홍수예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데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면 더 많은 국민에게 위험 상황을 알릴 수 있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섰다. 환경부가 홍수 알리미 앱을 통해 실시간 제공하는 홍수경보를 데이터화해 내비게이션 업체에 제공하기로 하면서 기업과의 협상도 급물살을 탔다.
담당 업무가 아닌데 힘들지 않았나?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블록체인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후 과기정통부의 국가지식정보플랫폼 ‘디지털집현전(https://k-knowledge.kr)’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총괄 업무를 맡았다. 업무를 하면서 매달 내비게이션 기업을 만나고 야근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컸다. 부서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하는 걸 응원한다. 덕분에 ‘도로·지하차도 침수사고 예방을 위한 내비게이션 고도화 사업’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실제로 사용해보니 어땠나?
최근 집중호우로 내비게이션에 홍수경보가 화면과 음성으로 안내된 적이 있다. 주변에서도 안내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주더라. 알림을 보고 위험 지역을 피해 가거나 조심해서 운전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하다.
기대하는 효과는?
현재 아틀란을 제외한 서비스는 별도로 침수위험 지하차도의 우회도로를 안내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운전자 스스로 해당 지점을 피해 가거나 속도를 줄이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으로 홍수경보를 확인하고 위험 지역을 피하거나 외출을 삼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변화만으로도 도로·지하차도 침수사고를 예방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비게이션 고도화 사업’은 계속되나?
지난 7월 10일 정부와 내비게이션 기업들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앞으로 목적지를 설정하면 경로상에 홍수경보가 있는지를 알려주거나 침수위험 지하차도의 우회도로를 안내하는 등 추가적인 업데이트를 검토 중이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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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