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7년까지 우울,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 100만 명에게 전문 심리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신건강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8년까지 권역 정신응급의료센터는 32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서 정신재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정신과 진료 이력을 이유로 보험 가입이 거부되는 일이 없도록 관련 보험 상품의 개발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6월 26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원회) 1차 회의를 열고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의 세부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2023년 12월 열린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선언한 정신건강정책의 대전환에 대한 이행방안이다. 윤 대통령은 비전선포대회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한 국가 의제로 삼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설치된 혁신위원회가 이날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혁신위원회 위원장은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맡았다. 정신질환 당사자, 자살유가족,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혁신위원회는 정신건강정책 혁신의 이행방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주재한 이번 회의에서 혁신위원회는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 세부 이행계획을 보고하고 혁신위원회 운영방안과 정신건강 인식개선 캠페인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혁신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민 행복과 마음건강을 위한 정신건강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국민 100만 명에게 전문 심리상담 지원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은 네 개의 핵심과제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핵심과제는 예방 차원에서 일상적 마음돌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7월 1일부터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2024년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시작됐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국민은 여덟 번의 일대일 심리상담을 지원받을 수 있다. 2024년 하반기에는 8만 명이 지원받지만 2027년까지 총 100만 명의 국민이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일상에서 모바일로 스스로의 마음건강을 점검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된다. 9월부터 제공될 계획인 정신건강 자가진단 시스템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울증을 자가진단할 수 있는 도구다. 정부는 우울증을 시작으로 불안증 등 자가진단이 가능한 질환을 확대할 예정인데 진단 이후에 정신질환 치료·서비스 등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mentalhealth.go.kr)도 개편된다.
청년의 정신질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인식하에 검진주기를 단축하고 조기 개입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10년 단위로 우울증을 검진하는 제도가 있지만 검진시점 간 간격이 길고 검진 이후 사후관리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보완해 2025년부터 20~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우울증과 조기정신증 등을 2년에 한 번씩 검진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된다. 따라서 정부는 조기정신증 등이 발견된 청년을 청년마음건강센터로 연계하기 위한 검진결과 안내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근로자의 마음건강 관리 인프라도 조성된다. 직업트라우마센터를 2025년까지 24곳으로 확충하고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서비스를 활성화한다. EAP는 직무스트레스, 조직 내 소통능력 등 15개 상담분야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대기업 등이 EAP를 도입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감정노동자와 교원을 위한 보호·지원체계도 강화되고 구직자의 마음건강 문제도 진단검사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체계가 마련된다.

2028년까지 권역 정신응급의료센터 32곳 설치
혁신방안의 두 번째 과제는 치료 분야에서 정신응급 대응 및 치료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현재에도 자살시도 등 정신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경찰과 합동 대응하는 위기개입팀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 34개 팀 204명에 불과해 만성적인 인력부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위기개입팀의 인력을 2024년 50% 추가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야간·주말 교대근무 수당 등을 통해 처우도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
정신응급 입원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외상 등을 동반한 정신질환자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에 설치된 10곳의 권역 정신응급의료센터도 대폭 늘린다. 2028년까지 32곳 운영을 목표로 하고 수요에 따라 정신응급병상도 2023년 119병상이던 것을 2028년까지 180병상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한다.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정신병원 입원제도도 보완·개선된다. 비자의입원제도에 대해 가족의 부담을 완화하면서 당사자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되고 있고 사법입원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전반적인 입원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추진된다. 퇴원환자가 퇴원할 때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해서 지속적으로 관리받게 하는 외래치료 지원제도는 활성화시킨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독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치료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마약중독 수준에 따라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역치료보호기관을 2029년까지 17곳 이상 선정해 지원한다. 마약중독자의 치료보상을 강화하고 의원급 정신건강의학과의 마약치료를 2029년까지 150곳으로 확대한다. 또 2029년까지 108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마약치료를 위한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할 전망이다.
정신장애인 특화 고용모델도 개발
예방·치료에 이은 혁신방안의 세 번째 과제는 회복이다. 정부는 정신질환자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복지서비스를 혁신할 방침이다. 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신재활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지역 인구와 정신질환자 규모 등을 고려해 정신재활시설 설치 기준안을 마련한다. 또 정신질환자 재활 인프라가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회복지원사업을 확대해 정신질환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정신장애인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정신장애인 특화 고용모델도 개발하고 맞춤형 일자리를 확대해나간다. 살 곳이 없어 장기입원 중인 정신질환자도 많다는 점을 고려해 연간 48호 규모로 정신질환자 주거지원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2029년까지 100호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일반인이 체감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두드러진 차별 중 하나는 보험 가입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정부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이용을 활성화한다.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경증 정신질환으로 인해 보험 가입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합리적 인수기준을 마련하는 대신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식이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정책 추진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혁신방안의 마지막 과제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는 언론보도를 막기 위해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논의한다. 자살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하고 초·중·고교생에게 사회정서 및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활성화한다. 정신건강 전문요원 확대를 위한 수련·양성제도를 개선하고 지자체에 정신건강·자살예방 전담조직 설치를 권고해 정책 수행기반을 마련한다.
이처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정신건강정책을 마련하는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우리가 아무리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글로벌 문화 강국으로 도약했다고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이제는 국민의 마음을, 정신건강을 돌보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 국정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국민 정신건강정책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해왔다”며 “그 결과 정신건강의 전 주기를 아우르는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 동의해 예방, 치료, 회복이라는 세 가지 큰 방향에서 이행계획을 수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정신건강정책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효정 기자
*조기정신증
정신증은 환각, 망상, 사고력 저하 등 정신병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다양한 정신질환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조기정신증은 이러한 정신증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전의 기간을 말하는 것으로 15~30세 사이 젊은층에서 가장 많이 발병한다. 조기정신증은 조기에 인식하고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명백한 정신증으로 발전하기 전에 위험한 문제를 예방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근로자가 업무수행·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직무 스트레스 등 업무 저해요인을 해결하도록 무상 제공하는 상담서비스를 말한다. 현재는 상시근로자 수 300인 미만 중소기업 사업장 혹은 그 소속근로자가 지원 대상이며 근로복지넷(welfare.comwel.or.kr)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비자의입원제도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신병원 비자의입원제도는 정신건강복지법에 근거해 보호자 2명과 전문의 2명의 판단이 일치할 때 이뤄지는 보호입원과 전문의나 경찰이 지방자치단체에 입원을 요청해 이뤄지는 행정입원, 전문의와 경찰의 동의를 받아 입원을 의뢰하는 응급입원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의 입원이 보호입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환자 가족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법입원제
법원에 의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키는 제도로 2023년 잇따라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를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박스기사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신청하세요
우울·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은 7월 1일부터 정부가 실시하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통해 이용권(바우처)을 받아 전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지원대상은 정신건강복지센터·대학교상담센터·정신의료기관 등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 국가건강검진에서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이 확인된 사람 등이다. 대상자에게는 전문적인 일대일 대면 심리상담 서비스를 8회 받을 수 있는 바우처가 제공된다. 대상자는 의뢰서 등 구비서류를 갖춰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온라인(복지로) 신청은 10월부터 진행될 계획이다.
정부가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실시하는 이유는 국민의 마음건강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하반기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8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지만 정부는 대상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2025년에는 16만 명, 2026년에는 26만 명의 국민이 참여할 수 있고 2027년에는 전국민의 1%인 50만 명이 지원사업에 참여할 전망이다.
지원사업에 선정된 대상자는 국가자격과 민간자격을 갖춘 1·2급 유형의 전문가 상담을 1회당 50분 이상 8회 받을 수 있다. 상담료는 1회에 1급 유형은 8만 원, 2급 유형은 7만 원이 책정돼 있는데 소득수준에 따라 0~30%의 본인부담금을 부담하면 된다. 자립준비청년과 보호연장아동은 본인부담금이 면제된다. 자세한 사항은 보건복지부 누리집(www.mohw.go.kr)에 게시된 ‘2024년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안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기억하세요
정부는 1월 1일부터 여러 개로 흩어져 있던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109로 통합하고 운영 중이다. 그간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청소년 상담 1388 등 여러 자살예방 상담채널이 있었지만 기억하기 어려워 접근성이 낮고 유선상의 상담만 제공된다는 점을 개선한 것이다. 실제로 109로 통합된 이후 1월부터 3월까지 걸려온 상담전화 건수는 2023년 같은 기간 대비 70% 가까이 늘어났다. 앞으로는 청소년과 청년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하반기 중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상담도 도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