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1일 경남 산청·하동을 시작으로 경북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울산 울주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산불 피해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북·경남·울산 지역에서 3월 21일부터 30일까지 발생한 산불 피해액은 1조 818억 원으로 피해 면적은 10만 4788헥타르(㏊)에 달했다.
이처럼 대형화되는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856㎞에 불과한 산불 진화 임도를 2030년까지 매년 500㎞씩 확충해 3856㎞로 확대한다. 삼림의 관리를 위해 만든 도로, 즉 ‘임도’는 산불이 발생했을 때 진화 인력과 장비가 현장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된다. 산불 진화 임도는 폭이 3m인 기존의 임도와 달리 도로 폭을 5m로 늘린 것으로 임도변에 취수장과 진화작업 공단을 설치해 산불 진화 효과를 극대화한 임도다.

산불 취약 지역에 임도 우선 설치
산림청에 따르면 임도가 있는 경우 2㎞를 진입하는 데 차량으로 약 4분이 소요되는데 없을 경우에는 도보로 약 48분이 걸려 진입 시간에서 12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비를 수송할 때도 임도를 통하면 30㎏에 달하는 펌프나 호스릴 등을 신속하고 충분하게 운송할 수 있다.
야간 진화효율도 임도가 없을 때보다 있을 때 5배 이상 높고 진화 시간은 약 9배 단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3월 21일 발생한 경남 산청·하동 산불은 진화되는 데 213시간 34분이 걸려 피해 면적이 3400㏊에 달했지만 4월 7일 발생한 경남 하동 옥종면의 산불은 23시간 55분 만에 진화됐다. 이 같은 차이는 산불영향구역 내에 분포된 임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먼저 일어난 산청·하동 산불의 경우 지리산국립공원 인근의 구곡산 지역은 임도가 없어 해당 구역의 진화 마무리에만 56시간이 추가 소요됐지만 옥종면 산불의 경우 임도가 상대적으로 많아 임도 주변의 화선부터 효율적으로 진화 작업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일부 산불 환경에서 임도는 방화선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산지 경사가 25도에서 45도 사이고 풍속이 초속 1m에서 4.5m 이내일 때, 임도 폭이 6m에 달하면 산불을 가장 강력하게 차단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정부는 산불 진화 임도를 동해안이나 경남·경북 지역과 같이 대형 산불에 취약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숲이 울창하고 산세가 험한 동해안과 영남 지역은 2002년 이후 여러 차례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이 지역에 산불 진화 임도가 확대되면 대형 산불 대응력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정부는 산불 대응 관련 연구개발을 현장 수요를 반영해 신속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5월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생활안전 긴급대응연구’ 사업 연구 주제로 국산 고성능 (대형) 산불진화차 개발을 선정했다. 기존에 과기정통부와 행안부는 약 4억 원을 투입해 2020리터의 담수 용량과 고성능 펌프를 갖춘 중형급 산불 대응 차량(다목적 산불진화차량)을 국산화해 산불 현장에 투입한 바 있다. 이 차량은 상당한 효과를 거둬 산림청에서는 다목적 산불진화차량 64대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대형화되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대용량의 물탱크를 구비한 고성능 산불진화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대형 산불 대응을 위해 담수량 6000리터 이상의 진화차를 운용하고 있다. 국내의 고성능 산불진화차 용량은 3500리터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는 군용차량을 개조해 차체와 장비를 모두 국산화한 고성능 산불진화차를 개발해 산불 진화 주력헬기인 KA-32(카모프) 담수량의 2배에 달하는 6000리터급 물탱크를 갖출 계획이다.
산불 피해복구를 위한 대책도 촘촘하게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5월 2일 중대본 심의를 거쳐 산불 피해복구비 총 1조 8809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한 만큼 이재민에게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조속히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산불 피해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복구비를 편성한 것이다.

피해 주민 생활안정·이재민 주거 지원에 초점
먼저 산불로 전소된 주택을 복구하는 데 기존 지원금과 추가 지원금, 기부금 등을 포함해 최소 1억 원 이상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생활안정 지원에 나선다. 주택 피해로 인한 철거·폐기물 처리 비용은 전액 국비로 부담하고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에게는 지원 기준에 따라 구호금과 장례비가 지원된다. 특히 산불 진화 과정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공무원과 진화대원은 관련 법령에 따라 보상금이 지급된다.
산불로 소실된 농작물과 농업시설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피해가 극심한 사과·복숭아 등 6개 농작물과 밤·고사리 등 8개 산림작물은 지원단가를 실거래가 수준으로 100% 현실화하고 지원율 또한 종전 50%에서 100%로 높였다. 가축 폐사로 어린 가축을 새로 들이는 입식 비용도 50%에 그쳤던 지원율을 100%로 상향했다. 농기계 피해 지원품목은 기존 11종에서 38종 전 기종으로 확대하고 지원율도 50%로 높였다. 농·축산시설 지원율도 35%에서 45%로 상향됐다.
산불 피해로 주소득자가 휴업·폐업하거나 주생계수단이 피해를 입어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 지원하는 생계비도 기존에는 1개월분에 그쳤으나 최대 7~11개월분까지 추가 지원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도 확대해 사업장 전소 등 대규모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는 1000만 원이 지원되고 정책자금에 금리 인하 등 지원을 제공한다.
산불로 인해 주거지를 잃은 이재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지원 방안도 마련됐다. 임시조립주택에 입주하기 희망하는 세대가 본격적인 장마철이 찾아오기 전에 입주할 수 있도록 주택 설치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 자력 복구가 어려운 이재민에게는 산불 피해 지역에 소규모 신축 매입 임대주택 1000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동시에 지역별로 관리해오던 이재민 관리를 개인별 맞춤형 관리로 전환해 정부 지원이 빠짐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고령층 이재민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통합심리지원단이 심리상담 지원에 나서고 돌봄이 필요한 주민에게는 생활지원사가 매일 안부를 확인하고 회복관리 등을 지원한다.
마을 전체가 소실된 지역은 대개 고령 인구가 많은 데다 생계수단이 없어져 지역 자체가 소멸될 우려가 있다. 이에 마을 공동체 기능을 근본적으로 복원하는 ‘마을단위 복구’를 추진한다. 5개 마을에 대한 마을단위 복구·재생 사업은 도로, 상하수도, 산불 경보 시스템 등 기반시설과 커뮤니티센터, 소공원 등 주민편의시설을 함께 구축해 주거환경과 생활 여건을 개선한다.
5월 21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경북·경남·울산 등 피해 지역 주민에 대한 수신료도 면제된다. 그간 방통위는 재난 피해 지역민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신속한 피해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2000년 이후 총 20차례에 걸쳐 수신료 면제를 시행해왔다. 이번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한 주민이라면 수신료 면제를 받을 수 있다.

피해지 복원과 2차 피해 예방 조치도 함께 추진
지역 주민의 회복과 더불어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산림에 대해서 피해지 복원에도 나선다. 산림청은 ‘영남지역 산불 피해 복구 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산불 피해지 복원 분야 연구 경험이 있는 전문가, 피해 지역 주민 등으로 구성된 추진단은 2022년 울진·삼척, 강릉·동해, 영월 대형 산불 복구과정에서 확립된 복구 기본 원칙을 기초로 과학적 의사결정을 통해 산불 피해지 복구 방향을 확정할 방침이다.
숲과 토양은 복원 방법에 따라 회복 양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1996년 강원 고성 산불과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산불 피해지 4153㏊를 20년 이상 장기 모니터링한 결과 숲의 회복은 자연 복원보다 조림 복원지에서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산불의 경우 ‘산불피해지 복원추진협의회’를 통해 마련된 ‘산불피해지 복구 의사결정 기준’과 지역 주민 등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지역 여건에 맞는 산림복원 방식을 결정한 바 있다. 이번 산불 피해 복구 과정에도 지역별 현장토론회와 기본계획 점검 지원 등을 거쳐 추진단 운영을 통해 연말까지 지역별 산불 피해지 복구·복원 기본계획 수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여름철 호우에 대비한 응급복구와 산사태 등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도 함께 진행된다. 정부가 5월 14일 발표한 ‘2025년 산사태방지 대책’에 따르면 산불 피해 지역에 대한 집중관리가 이뤄질 방침이다. 산불 피해 상황을 반영해 산사태 위험 등급과 피해 영향 범위를 긴급조정하고 산사태정보 시스템에 탑재했으며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대피소, 임시주거 시설의 안전성 여부, 대피 경로 등 대피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했다. 산불 피해 지역에 대한 산사태 예측 정확도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 대형 산불 사례를 분석해 산사태 발생 위험을 1~48시간 전에 예측해주는 예측 모델도 조정해 위험 정보가 누락되지 않게 했다.
산불 피해 지역 중 민가로부터 100m 이내에 있는 지역 등 2차 피해 우려가 있는 6466곳에 대해 긴급진단을 실시했고 이 중 복구가 필요한 대상지 615곳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2차 피해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은 279곳에 대해서는 6월 15일 이전에 최우선으로 응급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다.
김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