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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수서동 대왕중학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에너지 다소비 학교였다. 여름철 실외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학생들은 교실에서 에어컨을 켜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겨울이면 서울 강남의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교실 온도를 높여달라는 학부모들의 전화도 빗발쳤다.
그랬던 이 학교 학생들이 요즘에는 전기 1킬로와트, 가스 1세제곱미터의 가치를 따지고 있다. 학부모들도 자녀와 함께 가정용 전기, 수도, 가스, 생활쓰레기가 어느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계산하고 있다. 교사들은 녹색성장 교육을 위해 교과과정을 바꾸는 한편 학교 건물에다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학습효과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대왕중 1학년 환경인증 도서의 제목은 ‘즐거운 불편’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이 책을 보고 저탄소 생활을 익히도록 도와준다. 화석연료인 석유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거나 쓰레기 분리수거에 나서는 일에는 불편이 뒤따른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 이런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먹이사슬(Food Chain)에서 포식자(Predator)와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Scavenger)을 알아 봅시다.’ 대왕중 2학년 생활영어 시간에 나오는 질문이다. 학교는 환경 용어를 교실에서 익힐 수 있도록 환경교육 자료를 영어 교실에 배부한다. 1학년 창의적 재량 시간과 3학년 외국문화 이해 시간에도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온 캐나다와 같은 외국 사례와 저탄소 실천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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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성장 개념을 머리로 익힌 학생들은 체험 학습에 들어간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뒤 식물에 미치는 영향 조사하기, 화력·원자력·풍력 발전소 탐방, 학교 앞 숲 가꾸기 운동이 그런 예다. 대왕중 앞 대모산은 학생들이 스스로 저탄소 생활을 배우는 천혜의 환경이다.
학생들은 주말이나 방학 동안 시간 나는 대로 발전소를 찾아가 에너지 생산 과정을 지켜본 뒤 환경 리포트를 학교에 제출한다. 학생들이 낸 환경 리포트는 학교 녹색성장교육부 파일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저탄소 녹색생활에 습관이 붙은 학생들은 환경 동아리 활동을 하고 환경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미래의 그린 리더들은 학교 밖으로 자주 나간다. 환경 동아리 회원 중 도시 습지를 탐구하고 있는 1학년 이현우 군 등 학생 4명은 주말이면 학교 주변 양재천에서 물고기를 관찰하기 위해 수시로 강물에 들어간다.
학생들의 녹색생활 실천은 학부모들의 호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과 함께 가정용 전기, 수도, 가스 소비량을 매달 점검하면서 생활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대왕중 건물 1층 중앙 통로에는 태양광 발전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날씨 좋은 날 이 발전기에서 축적된 전기는 일단 학교가 사용한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에 생산되는 전기는 한국전력공사로 보내진다.
학교는 한 달 전기 사용량에서 태양광 전력 생산량을 뺀 나머지 전력량을 돈으로 환산해 사용료를 낸다. 이 학교의 월평균 전기요금은 2백만원 안팎. 학교는 태양광 발전기를 가동한 뒤 매월 20만원가량의 전기요금을 절약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기 가동으로 얻는 온실가스 감축 규모는 연간 5톤이다. 교사들은 지금 기술 수준에서 태양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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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환경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1학년 한주엽 군은 “태양광 발전기 모니터에서 발전량을 점검하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하루빨리 녹색 기술을 개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대왕중을 ‘그린스쿨’ 모범학교로 지정했다. 대왕중은 그린스쿨 프로그램을 2년간 운영하면서 학교가 달라졌다. 교실에서는 불끄기 습관이 뿌리를 내렸다. 또 쓰레기로 가득 찼던 매점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이 학교 화장실은 쓰레기와 담배꽁초 등으로 얼룩진 지저분한 공간이 아니다. 화장실은 요즘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학교 급식과 교통정리를 돕는 환경 자원봉사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그린스쿨 효과다.
대왕중은 2년 동안 축적한 그린스쿨 경험을 다른 학교와 공유할 계획이다. 김승수 교감은 “환경오염 방지 등의 ‘친환경’ 교육과정만 운영하던 주변 학교들이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익숙하지 못해 우리 학교에 많은 것을 문의한다”고 말했다. 학생들 입에서 ‘녹색성장이 단순히 공해를 줄일 뿐 아니라 경제도 새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김 교감의 얘기다.
김 교감은 “지금까지의 그린스쿨 운영 경험을 자료로 만들어 올해 안에 녹색성장 교육 모델을 주변 학교에 전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정위용(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