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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펜스 도시를 입히다




허름하던 벽도 그림과 함께하면 유명해진다. 최근 이승기가 기념촬영해 화제가 된 <날개 벽화>는 왕십리광장의 새 명물이 됐다. 그림이 그려진 공사장 펜스도 인기를 누린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 공사장 펜스는 야간에 조명까지 비춰 연인들의 포토존이 됐다.

덕분에 도시는 거대한 전시장이다. 거리마다 설치된 조각품, 그림이 그려진 건물 외벽과 높다란 계단. 권위를 벗고 미술관 밖으로 나온 미술은 ‘공공미술’로 편안해졌다. 다양한 이미지로 삭막한 도시에 활기를 준다.



그런데 이게 과연 최선일까. 일상 속에 스며든 미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작가 임수현의 <Fence>(펜스) 시리즈는 그렇게 나왔다. 어느날 작가가 집으로 가는 길 ‘모순으로 가득한 현대’를 발견했다.

관악산 입구가 터널로 변하는 동안 공사장 펜스에 붙은 나무 사진을 봤다. 포토샵으로 나무들을 조합하여 이미지를 만든 후 크게 출력하여 펜스에 부착해 그 자리에 나무가 있는 듯이 나무병풍을 만든 것이다.



‘실제인 눈 맞은 하얀 나무’와 ‘실사 이미지인 하얀 벚나무’를 동시에 보고 겨울과 봄, 현실과 이미지의 대립을 느꼈다. 사진기를 들고 나와 촬영했다. 촬영은 주로 밤에 했다. 처음 촬영하게 된 계기가 밤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컴컴한 밤에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아 홀로 서 있는 펜스의 모습은 흡사 연극의 무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왜 하필 자연의 이미지일까?”

공사장을 돌아다녔다. 많은 공사장 펜스는 건물조감도나 시공사를 크게 강조한 광고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사 이미지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 자연 이미지를 담은 실사 펜스는 공사기간이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현장에서만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자연을 파괴하고 도시의 경관을 생각한 시공사의 양심”이라고 여겼다.

지난 3월 16~21일 서울 관훈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연 임수현의 사진전은 이미지의 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방형의 프레임인 핫셀로 촬영한 이미지들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정면 구도로 담아낸 이미지는 오히려 당당하다. 진짜(자연)를 가리는 가짜(펜스), 진짜(펜스 이미지) 같은 가짜(펜스).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을 꼬집는다.

“우리들 삶의 모습이 흡사 펜스 속의 나무들을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조악한 실사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한 펜스처럼 우리들도 허망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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