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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금강가에 있는 도시다. 예부터 그 유역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살게 하였다. 그래서 도시가 이루어졌다. 충북의 제천으로부터 청주, 대전, 충남의 금산, 공주, 부여, 논산, 서천이 모두 금강이 흘러가는 유역에 생긴 도시들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으며 백제란 나라 또한 금강에 깃들여 발전해온 나라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공주가 아닌 서천이다. 어려서 금강을 보았다면 장항이나 군산, 황토빛 금강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공주에 와 공주사범학교를 다니면서 비로소 금강다운 금강을 보았다.
그것은 눈빛이 맑고도 서글서글한 시원한 금강이었다. 다정한 모성의 강이었다.


강의 흐름이 길다보니 그 이름도 여러 가지다. 부여사람들은 백마강이라 부르고 청주 사람들은 부강이라 부르고 공주 사람들은 비단강이라 부른다. 비단강이라? 이는 한자로 된 금강을 우리말로 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정말로 공주어름에서 바라보는 금강은 비단 같은 강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공주는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공주사범대학이 공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에서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공주의 추억 몇 가지를 간직하고 떠나가곤 했는데 그 추억의 장소가 바로 금강이요 공산성, 곰나루, 철탑을 쓴 금강교였다.
이제는 세월도 변하고 금강도 변했다. 대청댐이 생긴 뒤로는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 암갈색으로 흐르던 금강은 보기조차 민망했다. 더러는 금강천이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금강에 강물이 돌아오고 나니 그 풍광이 확 달라졌다.
이렇게 달라진 금강변에서 공주 사람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를 연다. 백제문화제다. 부여도 마찬가지다. 실상 백제문화제는 금강에서부터 비롯된 문화제이다.
1955년 부여군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백제 3충신의 제사를 지내고 백마강에서 삼천궁녀의 원혼을 달래는 수륙제를 지내면서 부터 백제문화제가 시작되었고, 공주에서 역시 웅진백제시대 네 임금의 추모제를 지내면서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백제문화제는 경주의 신라문화제와 진주의 개천예술제와 더불어 3대 문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공주에서 열린 백제문화제는 주로 공주 구시가지 길거리나 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옹색하고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공산성 아래 연문광장 부근에서 열리기도 했지만 최근엔 신관동 금강변 둔치를 정비해 만든 신관공원에서 열린다.
우선 장소가 넓고 시원스럽고 주변경관과 잘 어울려서 좋았다. 금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지는 공주의 중심부이기도 해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 사이사이에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지 모른다. 연문광장의 알밤 축제. 공산성 안의 백제체험마을과 공북루 아래를 지나면서 얼핏 보이는 신관동, 금강의 야경. 부교로 금강을 건너 코스모스 꽃밭과 갈대숲. 마상무예 공연장. 신관공원에 마련한 문화제 주무대. 그리고 금강교의 루미나리에. 그야말로 환상적인 코스이다.
올해 백제문화제가 열린 9일간(9월 9일~10월 7일)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다. 우선은 신관공원 주무대에서 밤낮없이 계속된 각종 공연과 경연이 볼 만했고 금강 물을 수놓은 유등축제가 좋았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과 곰나루 전설을 모티프로 한 유등은 의미심장했고 부교 위에 두 줄로 서 있던 쏘가리 모양의 등이 인상적이었다.
쏘가리는 예부터 금강에서 잡혔던 물고기인데 그 머리 모양이 관모를 닮아 있고 한자 이름인 궐어의 궐자가 대궐의 궐자와 음이 같아 입신양명과 출세를 상징하는 물고기이다. 그러므로 부교 위에 쏘가리 모양을 본뜬 등을 달아놓은 것은 부교를 건너는 사람들 모두에게 입신양명과 출세를 기원하는 뜻이 있다. 이런 걸 부교를 건너는 사람들이 알기나 했을지 모르겠다.
금강교 위에서 있었던 인절미 만들기 프로그램도 역사적 의미가 깊은 행사였다. 금강교 위에 길게 이어진 1천5백37미터의 인절미는 백제 문주왕이 공주로 수도를 옮긴 해가 올해로 1537년이 된 것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떡을 나누며 즐거워했는지. 우리가 진정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폐막식 행사에서의 대합창도 잊을 수 없다. 그동안 관주도형 축제와 이벤트성 축제, 외부사람들이 와서 판치고 돈 벌어가는 축제에 대해 말들이 많았었는데 이를 일거에 씻어내는 행사가 바로 이번 폐막식 행사였고 또 시민 합창이었다.
대합창을 위해 16개 팀이나 되는 시민합창단이 나와 한나절 경연을 벌였고, 출연한 합창단원들이 모두 나와 함께 부른 대합창은 감동 그것이었다. 합창이 끝나면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하얀색종이 폭포는 놀라운 연출이었다.


그날 우리는 한마음으로 환호했고 한목소리로 노래했고 한뜻으로 백제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가슴에 새겼다. 그날의 박수소리 노랫소리는 우리들 가슴에서 금강으로 흘러 넘쳐 맑은 금강물을 더욱 맑게 해주었으리라.
백제문화제 9일간. 그것은 금강물과 함께 축배를 든 기간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축제에 간다는 말은 강물을 찾아간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이렇게 금강은 백제문화제와 함께 다시금 태어나고 생명을 가진 강물이 되었고 공산성과 금강교 또한 문화제로 다시금 의미가 부여된 공간이 되었다.
글·나태주 (시인·공주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