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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체력이 여행할수록 다져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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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토요일 아라뱃길, 운명의 날, 첫 도장: 아들 친구와 토요일 이른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목동 집부터 자전거를 탄 것이 그만 아라뱃길까지 가버렸네요. 기념으로 수첩을 사서 첫 도장을 찍고 말았습니다….”

첫 도장의 마력에 걸려든 탓일까. ‘40대 중반의 배불뚝이 아저씨와 고도근시의 중2 아들’은 그날 이후 틈틈이 길을 떠나 4대강 국토종주를 해내고야 말았다. 지난 10월 20일 영산강을 끝으로 국토종주를 마친 아버지는 네이버 블로그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cafe.naver.com/biketravelers)’에 ‘동앤소’란 아이디로 아들 동윤(14)이와의 자전거 여행기와 사진들을 올렸다.

많은 이들이 부러움이 가득 담긴 댓글로 이 멋진 부자를 격려했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동안 여행거리만큼 쑥쑥 자라나는 아들의 모습을 맛깔나게 적은 글솜씨, 아이와의 자전거여행에 도움이 되는 생생한 정보는 “나도 한번쯤…” 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렇게 부러움을 산 동앤소님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보니 그의 ‘정체’는 자본시장연구원 남길남(43) 파생상품실장이었다. 남 실장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집에서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까지 8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해 온 ‘자출족’이기도 했다.

남 실장의 부친 남태우(73·강원도 춘천)씨도 거뜬하게 서울과 춘천을 자전거로 오가는 자전거마니아. 지난 추석 때에는 3대가 서울에 집결한 뒤 춘천까지 ‘자전거 추석귀향’을 하려다 일정 문제로 무산되어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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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국토종주에 나선 남 실장 부자는 5월 27일 양평~충주댐, 6월 3일 충주~문경 새재길, 6월 10일 목동~양평 구간을 완주해 순서는 좀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한강종주를 마쳤다.

다음 코스를 낙동강으로 정한 남 실장은 아들의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7월 14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세 차례 파주, 가평, 춘천을 오가며 특훈을 했다. 8월 9일 새벽 안동을 출발해 11일 저녁 부산 을숙도까지 무려 4백3킬로미터를 주파했다. 숙소를 찾거나 식사를 위해 국토종주자전거길을 가끔 벗어나다 보니 공식거리 3백85킬로미터보다 더 달린 것이다.

이어 10월 6일 금강, 10월 20일 영산강 종주를 마치면서 부자의 자전거 국토대장정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국토종주자전거 인증 등록번호는 부자가 나란히 2639번, 2640번.

남 실장은 자녀가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하려면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은 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아이의 체력은 처음엔 좀 힘들어해도 여행을 하면서 다져지는 것 같다고.

“아들이 편식이 좀 심했는데 4시반 기상 후 변변한 식사를 못하다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식사를 하게 되자 남김없이 먹어치웁니다. 충주시에 다 와서 아들이 남한강에 떠 있는 데크로 만든 작은 선착장을 보더니 벌렁 누워버리네요. 날 잡아잡수!”(5월 27일 남한강 종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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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사진들을 보면 동윤이는 여행 초기 다소 지친 표정의 사진들이 많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지친 표정이 사라지고 여행에 적응을 잘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부자는 이번 국토종주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비가 낙동강 자전거길의 달성보와 합천창녕보 사이의 MTB코스와 업힐코스를 지날 때였다고 했다.

“우회로가 있었는데도 우리 자전거가 MTB인 데다 아들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아 MTB코스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난코스인 데다 소나기가 제법 내려 시간은 지체되고, 아이는 지치고, 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왔고…. 계속 앞으로 갈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타이어가 펑크 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어려움을 참으며 펑크 난 타이어를 수리하고 예정대로 완주를 했다.

동윤이 역시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함께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하지만 힘든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그동안 보지 못한 세상 모습들을 보며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고 깊이 성찰하는 마음가짐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의젓하게 여행소감을 말한 동윤이는 또래 친구들을 위해 “자전거여행이란 단단한 각오를 갖고 출발해야 하는 것 같다. 또 여럿이 하는 것이 안전하고, 지칠 때 서로 격려해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남 실장은 자전거로 누빈 우리 땅 곳곳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사람들을 만난 일이라고 했다.

“걸어서 국토종주를 하는 젊은이도 만났고, 자전거여행을 함께하는 부부, 자전거세계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분도 만났습니다. 낙동강 삼강리 근처에서는 자신의 집에서 수도를 끌어내 지나는 자전거족들에게 사용하게 해주신 어르신을 만나기도 했고요.”

부자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4대강 길 국토종주 추억 자체일 것이다.

“자기에게나 대단한(그것도 지금이나 그렇지만) 아빠지 사회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소시민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아직은 모르다가 이번 여행을 통해 눈치라도 챘으니 저로서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속으로 ‘아들아, 아빠는 슈퍼맨이 아니란다.

결국 네 인생은 너의 힘으로 꾸려가야 한단다’ 하고 아들에게 이야기해봅니다.”(10월 20일, 국토종주를 마치며)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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