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경기 여주군 여주읍 연양리 강변유원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광길(60) 씨는 태어나면서부터 남한강과 인생을 같이했다. 박 씨는 중학교 때까지 맞은편 신륵사 아래에 있던 조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아련한 옛일이 됐지만, 남한강은 박 씨의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였다. “낚시도 하고 배도 타고, 이곳만큼 천혜의 자연자원을 갖고 있는 곳이 없어요.”
하지만 여름 장마와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남한강은 사나운 호랑이처럼 변했다. “아마 1995년인 것 같아요. 비가 엄청나게 와서 강물이 여기 유원지까지 차올랐어요. 바로 아래 야영지는 물론 우리 식당도 삽시간에 잠겨 떠내려갔죠.”
4년 주기로 이런 물난리를 겪은 박 씨는 그때마다 흙을 퍼날라 바닥을 더 높여 식당 건물을 다시 지었다. “더 높이 쌓고 지어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충주댐 물을 방류한다는 뉴스만 나오면 강물이 넘칠까 노심초사합니다.”
![]()
박 씨는 그러나 최근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저 맞은편 신륵사 육각정 보이죠? 이맘때쯤이면 육각정 아래 하얗게 보이는 곳까지 물이 찼어요. 근데 올해에는 그곳에서 1미터 정도 아래에 물이 차 있거든요.”
강바닥을 준설하고 강폭을 넓혀 물그릇이 커지니까 수위가 그만큼 내려간다는 것이다. 박 씨는 “4년 주기로 큰비가 오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도 범상치 않다”며 “다행히 수위가 1미터가량이나 낮아져 있으니 예전 같은 물난리는 겪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한강살리기 사업으로 박 씨에게 생기는 혜택은 특별히 없다. 오히려 유원지 내 야영지가 일부 정비사업에 포함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까 걱정이다.
박 씨는 “지금까지 봐온 이득을 생각하면 4대강살리기 사업에 반대해야 하지만, 이 지역의 숙원인 홍수피해 방지가 확실히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4대강살리기 사업의 효과가 이렇게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반대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주군 대신면 초현3리 이용기 이장은 어릴 적, 강에서 낚시하고 미역 감던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50년 넘게 이곳에 살면서 강은 점점 변해갔다. 반복되는 물난리에 강은 친구 같은 존재에서 무서운 ‘강도’로 변했다. 한번 물난리가 나면 천서리, 당남리, 보통리, 초현리, 양촌리 등 대신면 일대 마을들이 성한 곳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실의에 빠졌다.
특히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물난리 때마다 강변에 쌓이는 쓰레기 더미와 강 인근 비닐하우스촌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물이 예전만큼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이장은 최근 남한강살리기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강 둔치로 소풍을 가고 낚시도 하던 옛 추억이 재현될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이렇게 강 가까이 나온 게 얼마 만인지 몰라요. 얼마 전까지도 여기는 어른 키만큼 자란 수초와 쓰레기, 물웅덩이 때문에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자갈밭이 생기고 앞으로 피크닉장, 선착장도 생긴다니 마을 주민 단합대회를 여기서 해야겠어요.”
이 이장은 제방 안쪽 비닐하우스촌을 가리켰다. “이곳은 원래 강물이 흐르던 곳이었어요. 1986년 물난리 이후 강폭을 줄여 제방을 쌓았고, 정부가 이곳을 임대 분양하면서부터 비닐하우스촌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남한강살리기 사업으로 이곳 비닐하우스들은 모두 철거된다. 그리고 우기 때 강물이 불어나면 홍수 예방을 위해 물을 잠시 담아두는 저류지로 조성된다. 우기가 아닐 때는 생태공원, 체육시설 등을 갖춘 친수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이장은 “남한강살리기 사업은 여주가 발전할 수 있는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공사 현장과 인근 마을을 오가며 홍보와 민원 해결도 맡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주군민이 이 사업에 대해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잘 알고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이곳 사정을 잘 모르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여기 직접 와보고 무엇이 옳은 일인지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
여주군 능서면에 자리한 유적지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에서 만난 문화해설사 양인숙 씨는 “여주는 제2의 경주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재가 많은 매력적인 곳”이라고 자랑했다. 선사시대 유적은 물론 조선시대 두 임금을 모신 곳이기도 한 여주는 훼손되지 않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양 씨는 “여주의 문화재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번 남한강살리기 사업을 통해 조명받게 됐다”고 기뻐했다.
예를 들어 여주보, 이포보, 강천보 등 남한강에 건설되는 보(洑)는 각기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 여주보의 인공섬(세종광장)은 세종대왕의 발명품인 앙부일구(仰釜日晷·해시계의 일종) 모습을 형상화했고 가동보의 기둥탑은 자격루(自擊漏·물시계의 일종)에 새겨진 용의 형상을 본떴다.
양 씨는 또 “옛날 여주에는 이포나루, 조포나루, 부라우나루터 등 크고 작은 나루터들이 많았다”며 “이번에 나루터 복원도 4대강살리기 사업에 포함돼 있다니 옛것을 되살려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늦게 돌아오는 길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주민들의 얼굴에 ‘수해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수심이 가득했을 텐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 보였다.
글과 사진·공감코리아(korea.kr)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