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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서대(西臺) 장령(長嶺) 밑에 샘물이 솟아나는데, 그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였다. 무게도 보통 물보다 무거웠고 사람들은 그 샘물을 우통수(于筒水)라고 불렀다. 우통수는 바로 한강의 수원이다.”

조선 초기 학자 권근의 글이다. 여러 문헌에는 한강의 발원지가 ‘오대산 우통수’로 기록돼 있다. 현재는 강원 태백시 창죽동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검룡소에서 비롯된 물은 삼척시 하장면을 지나 정선군 임계면에 이르면서 강의 모양새를 갖춘다. 임계천을 받아들인 골지천이 바위 안 마을과 가랑이 산자락을 지나 경관이 빼어난 구미정에 이른다.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골지천가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구미정은 33평방미터 넓이의 아담한 정자다. 조선 숙종 때 이조참의를 지낸 이치가 기사사화(己巳士禍)를 피하기 위해 이곳 봉산리에 은거하면서 세웠다고 하는데,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의 경치가 아홉 가지 특색이 있다고 해서 구미정이란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주인도 없는 정자에 나그네들이라도 자주 찾아와 한잔 술 곁들이며 시 한 수 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바쁜 나그네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가고 그저 강물만 무심하게 흐를 뿐이다.

개병교를 건너자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째 뽑혀 넘어져 다른 나무에 열십(十)자로 접목돼 있는 것을 본다. 받아들인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물막이 댐이 아래 부근에 있는지, 물의 흐름은 보이지 않고 바람이 잔잔히 인다.

‘고기 반 물 반인 우리 동네에 산불 없네, 반천2리 주민 일동’이라는 플래카드를 보며 이곳이 반천리 어천동임을 안다. 반천대교 아래로 강은 다시 푸르게 흘러가고 마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돌담을 아름답게 두른 집, 뻥 뚫린 나무로 굴뚝을 만든 집, 나무 구유가 찌그러진 함석지붕 밑에서 저절로 낡아가는 집…. 저 집에 사람이 살았던 시절은 어느 때쯤일까.

도장골에서 노일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골지천은 깎아지른 벼랑과 푸른 소나무 숲, 그리고 깊은 소(沼)가 빚어낸 천혜의 경관을 자랑한다. 강은 임계면을 지나 북면의 봉정리에 이르고, 강물 위에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유유히 헤엄쳐 간다. 버들강아지가 늘어진 강 속에는 푸른 소나무들이 더 푸르게 가라앉아 있다. 한 폭의 풍경화가 어찌 저 물빛을 온전히 닮을 수 있을까 싶다.






 

강의 상류마다 빈 집들이 많다.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로 허물어져가는 저 빈 집들의 돌담들이여! 그래,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의 돌담들도 저렇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 새카만 오디를 따먹던 뽕나무에 어느 여름날에는 구렁이 여러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기도 했고, 어느 날에는 돌담으로 들어가는 황구렁이를 또래 친구들이 달려들어 잡기도 했지. 저 집에 살다 떠나간 그 사람들은 저 돌담에 어떤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드디어 골지천이 아우라지에 접어든다.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터로, 평창군 도암면의 황병산과 구절리에서 흘러내린 송천과 동쪽에서 흘러온 임계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이 아우라지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가 ‘정선아리랑’이다.

이 노래가 처음 불린 것은 조선 왕조 초기였다고 하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고려 왕조를 섬기고 벼슬에 올랐던 선비들이 지금의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으로 이사를 와서 그리움과 애달픔으로 부른 노래였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옛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동백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유천리에 있는 싸리골에서 만나곤 했다.

그러다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처녀는 총각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정선아리랑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자꾸 새로 만들어졌다. “반달 같은 우리 오빠는 대동아전쟁 갔는데 샛별 같은 우리 올케는 독수공방 지키네”라거나 “사발그릇은 깨어지며는 세네 쪽이 나고 삼팔선이 깨어지며는 한 덩어리로 뭉치네”라며 분단 상황을 노래하기도 했다.

낙천리에서 아우라지로 흐르는 골지천 길을 마감하는 시간, 정선아리랑 한 구절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글과 사진·신정일(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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