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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도 생시에서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저절로 경탄이 나오는 그런 장소를 만날 때가 일생을 통해 어쩌다 있다. 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서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까지 약 20킬로미터, 도보로 약 6시간 거리의 길이 그런 곳이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절로 시인이 되고, 어린이가 되고, 신선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야말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임을 간파한 괴테는 자신의 문학 조수이던 에커만과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것은 경탄(驚歎)이다. 인간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처음 본 어린애가 거기에 비친 물상(物像)들이 신기해서 그 뒤에 무엇이 있는가 하여 뒤집어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곳에는 연둣빛으로 물드는 강이 있고, 흐르는 강물 소리가 가슴팍을 적시고 지나가는 강변이 있다. 그 강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멈추는 곳이 바로 ‘비단강’이란 이름을 가진 금강 상류의 한 지역이다. 비단강이 흐르는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마을 뒤로 난 언덕길은 이리저리 휘어지는 곡선이 강과 어울려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 길을 지나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강물이 휘감아 도는 산이 보인다. 산 아래 난 길은 그 산이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벼랑을 정으로 쪼아 만든 벼리길이다. 경남 창녕의 양아리에서 남지장 가는 개비리(개벼리)길보다 더 가파른 벼랑길 아래로 새파란 강물이 유장하게 흐른다.

강변에는 버드나무가 줄지어 섰고, 행여나 헛디뎌 떨어질까 긴장감으로 한 발 한 발 걷는 바윗길 옆으로 수진달래(철쭉)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길,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파른 벼랑에 피와 땀으로 얼룩진 길을 내면서, 그 강에서 떠나지 못하고 일생을 살다 간 질곡의 삶이 아릿하게 가슴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봉소’라고도 부르는 강 건너 봉길(鳳吉)마을은 금강 상류에 둘러싸여 있어 봉황의 집처럼 보인다는 마을이다. 마을이 너무 편안하게 보여 문득 그곳에 들어가 한 시절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앞서간 사람들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벼리길을 휘돌아가고, 멀리 바위 하나가 보인다. ‘상사바우’라는 이 바위는 상사병에 걸린 처녀가 굿을 해도 낫지 않으면 바위 위에 올라가 몸을 던져 죽었다는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상사바우 아래로 언제 뚫었는지 모르는 굴이 하나 있고, 강물은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앞으로 잔잔하게 흐른다. 대치교를 지나 같은 부남면의 굴암리에 이르는 봄 물드는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린 곳에 이른다.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잠두마을 건너편의 길이다. 야생 복숭아꽃과 벚꽃, 그리고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어디가 길이며, 어디가 강이고 산인지 분별할 수 없어 정신이 몽롱해지는 곳이다.





 

땅의 생김새가 누에의 머리같이 보인다 하여 ‘누에머리’ 혹은 ‘잠두(蠶頭)’라고 부르는 마을 앞 강변은 봄이면 봄마다 야생 복사꽃으로 온통 불이 붙는다. 수십여 년간 이 나라 이 땅을 떠돌아 다녔어도 복숭아 과수원이 아니면서 이렇게 강이고, 길이고, 산이고, 온통 복사꽃이 별천지처럼 펼쳐진 곳은 본 적이 없다.

그뿐인가, 길가에 심어진 벚꽃이 만개해서 ‘꽃 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는데’가 아니라 ‘만 점 꽃잎이 가슴을 후비고 지나가는’ 이 강변에 조팝나무 꽃들과 벚꽃이 바람에 우수수 흩날리니, 이를 어쩐담. 이처럼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정경을 사랑했던 당나라 시인 이백은 <산중문답(山中問答)>이란 절창 한 편을 남겼다.

“왜 산에 사느냐기에/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가다가 뒤돌아보면 산은 분홍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멀리 대전~통영 고속국도가 지나는 강에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만들어진 세 개의 다리가 마치 ‘다리 박물관’처럼 놓여 있다.

머물러 있는 것이 무엇이며 기다리지 못하고 가는 것은 또 무엇인지, 멀리 흐릿한 나무들이 조금 있으면 푸른 잎들로 무성할 것이다. 그 사이 어느덧 봄꽃이 지면서 가버리고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올 봄, 그 봄이 지나가는 소리 들리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지류가 무주 구천동을 지나서 온 남대천이다.

남대천을 받아들인 금강은 더욱더 넓어진 채 충청도 금산군 부리면을 향해 흐를 것이다. 망연히 서서 강물을 바라보는 그 시간 속에 옛 당나라 시인들의 시 구절들이 스쳐 지난다.

“돌아보니 봄바람에 하나같이 꽃(回看春風一面花)”이라는 호증의 <식성(息城)> 시 한 구절과 “미인은 간 곳 없고 도화만이 휘날리더라(人面桃花相映紅)”는 최호의〈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 한 소절이 강물을 따라 흘러서 간다.
 

글과 사진·신정일(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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