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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홍수 걱정으로 살아온 여주 주민들은 홍수 피해의 고통과 우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입니다. 당사자들의 소리는 외면당하고, 소수 의견이 다수로 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들고 나선 겁니다.”
8월 21일 경기 여주군 주민 3천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인간 띠 잇기 행사를 벌인 데 대해 김춘석 여주군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주 출신인 김 군수는 지역현안 해결과 경제발전을 공약으로 걸고 6·2지방선거에서 재선돼 여주 군정을 이끌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간부들이 이포보 교각을 불법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들이 국책사업을 방해하면서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고 농성을 벌이는 행태는 소수 의견이 마치 다수 의견인양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여주 주민들이야말로 홍수 피해 당사자임에도 소위 환경운동단체라는 외지 사람들이 한강살리기 사업 현장에 와서 공사를 방해하고 있으니 화가 났고, 이에 대응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민들이 결속을 다지게 된 것이라고 김 군수는 설명했다.
“여주 주민들은 각자 바쁜 생업을 놔두고 자발적인 행동으로 인간 띠 잇기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저는 여주의 밝은 미래를 봅니다.”
이포보 점거 농성에 여주 주민들이 화난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여주지역은 1천5백35년 만에 호기(好機)를 맞고 있습니다. 서기 475년 ‘골내근현(骨乃斤縣)’이란 이름으로 여주가 역사에 등장한 이후 처음 맞는 기회입니다. 한강살리기 사업은 생태계 복원과 홍수 예방은 물론 수질을 개선하는 것이고, 부수적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고 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사업입니다. 수십 년간 홍수를 겪고 피해를 봐온 여주 주민들에겐 생존과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세력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포보 점거 농성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이미 평균 30퍼센트 이상 진행된 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당위성이 없습니다. 법원에서도 8월 20일 이포보에서 농성 중인 4대강살리기 사업 반대 농성자들에게 떠나라는 결정을 내려 여주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기들의 주장을 펴는 것은 독선이고 아집입니다. 하루빨리 이들이 이포보 공사현장을 떠날 수 있도록 법 집행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공사가 진행돼 한강살리기 사업이 성공리에 마쳐지길 기대합니다.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반대 주장 중 정책에 반영할 부분이 있다면.
물론 여주 주민들도 ‘1백 퍼센트’ 찬성은 아니죠. 그렇지만 일부의 반대 주장을 들어보면 대개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강살리기 사업은 대운하 사업의 전 단계다’ ‘여주지역은 홍수 피해가 없다’ ‘자전거도로는 여주 주민에게 혜택을 줄 게 없다’는 주장을 펴는 등 가장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부분을 문제 삼아 반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반대는 할 수 있지만 그 반대행위가 지역화합을 가로막고 이익을 감소시킨다면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소수의 편향된 생각으로 전체 이익을 훼방 놓는 행위가 있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당연히 환경은 보존돼야 하지만 지역발전이 없으면 환경보호와 녹색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앞으로 주민 의견수렴을 통해 환경보전과 성장의 균형을 맞춰나갈 것입니다.
3개 보의 설치와 퇴적토 준설 등으로 기대되는 홍수 방지효과는.
해마다 홍수 걱정에 시달리는 여주 주민들은 ‘홍수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72, 1990, 1995, 2001년에 큰 물난리를 겪었고, 주민들에게 가장 심각한 홍수로 기억되는 1972년 대홍수 때는 여주읍 시가지에서 배를 타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강우량이 여름철에 집중되고 나머지 기간에는 가뭄에 시달리는 현상도 심해져 1995년 8월 7백22밀리리터였던 강우량이 2006년 8월엔 8백44밀리미터로 증가했습니다. 여주의 3개 보는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고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적의 장소를 선정했습니다. 앞으로 여주는 보 건설로 용수를 확보하고, 하천 준설로 수위가 1.0~1.9미터 낮아져 장마에 의한 홍수 피해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한강살리기와 지역경제 회생을 연계해 모델로 삼는 곳이 있으신지요.
역사는 회귀하는 특성이 있어 물로 흥했던 곳은 물로 쇠하고, 자원으로 부흥했던 지역은 자원이 고갈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여주지역은 1895년부터 지금까지 오직 정체만을 겪었습니다. 태화강 개발 후 ‘경제성장의 거점’에서 ‘관광자원’으로 새롭게 탄생한 울산처럼 행정이 좀 더 적극적인 방향에서 경제나 관광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살리기 사업을 마친 후 여주는 어떤 모습일지.
1469년 세종대왕릉이 광주(廣州) 대모산에서 옮겨져 오면서 여흥에서 이름이 바뀐 여주는 이후 이포, 조포나루가 한강의 4대 나루로 성장해 교통의 요지가 됩니다. 그러나 육상 운송로와 화폐의 발달로 여주는 침체의 길로 들어섰고, 근래엔 수도권정비계획법 발효로 공장, 대학교 등의 입지가 불가능해지면서 1960년대 10만명이던 인구가 지금도 그대로인 상황입니다. 한강살리기 사업으로 하천 환경정비는 물론 생태하천 조성과 자전거도로 조성, 이포·여주·강천보 설치 등으로 새로운 관광자원이 조성되면 침체된 여주도 확 달라질 것입니다. 남한강살리기 사업 구간 중 여주 구간은 38.9킬로미터로 1조9백1억원이 투입됩니다. 여주지역은 남한강 정비사업의 최대 수혜지역으로서 2011년 말 공사를 마치게 되면 새로운 변화와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글·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