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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한 토란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토란밭을 성곽처럼 둘러싸고 우뚝 서 있는 옥수수 줄기 곳곳이 도톰한 게 열매를 품은 게 틀림없다.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신륵사와 여주대교 사이 강변공원에 누군가 가꿔 놓은 텃밭 모양새가 기특하다. 신륵사 앞에서 시작해 여주대교 아래까지 이어지는 강변도로 아래 공원에서는 올해 같은 장맛비에도 토란이며 고추, 콩, 파 등속이 물에 쓸린 흔적 없이 알뜰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거야 손바닥만 한 텃밭인데 재미삼아 기르는 거지.”
지난 8월 3일 낮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친구들과 함께 강변공원으로 나들이 나온 김용화(77·여주읍 오학리) 어르신. 텃밭 가꾸는 이와 얼굴도 모르는 사이라지만, 같은 농부의 마음인가. ‘무단으로’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이를 은근히 두둔했다.
이렇게 하천변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하천점유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더구나 지금 이곳 강변에서도 4대강살리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허가받고 농사를 지을 리는 만무하다. 길고 비 많은 올해 장마에 끄떡없이 자라고 있는 이들이 신통했다. 더구나 비만 좀 왔다 하면 만날 침수되는 신륵사 앞 강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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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장사한 지 40년쯤 됩니다. 여름만 되면 홍수 걱정이었죠.
2002년 홍수 때도 그렇고, 우리 식당 아래 강변도로까지 한강물이 올라왔죠. 강변도로 아래 저 강변공원은 매년 물에 잠겼고요. 그런데 올해는 저기 강가에 나 있는 풀 말고는 물에 잠기지 않고 멀쩡했다니까요.”
이곳 강변도로 위쪽으로 도로변 식당가 한 횟집 ‘명성회관’의 정유상 사장은 남한강을 바라보며 물이 어디까지 찼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가만 보니 텃밭뿐만 아니다. 이날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아예 텐트까지 치고 나무그늘을 즐기는 나들이객들도 있었다.
이곳 강변공원은 완만한 경사가 강으로 이어지는 자연제방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물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던 흙더미를 걷어 내니 이곳 강변공원까지 강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지난 2002년 홍수 때에 침수피해를 입었던 여주대교 인근 천송리와 현암리 지역은 올해 유난스러운 장마에도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기록관측 사상 전국적으로 두번째로 많은 강우량을 기록한 올여름, 여주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주대교 상류지역에서 한강살리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강천보건설단에 따르면 여주에서는 지난 6월 22일~7월 3일 사이 442.8밀리미터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이 때문에 평균수위 3미터(해발 기준)인 강천보 수위가 7월 4일 4미터84센티미터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8월 3일 현재까지 이번 장마기간 중 총 850밀리미터의 비가 내렸다. 하지만 준설로 수위가 낮아져 강천보 아래쪽 여주 지역내 상습 침수지역 어느 한 곳도 침수피해를 입지 않았다.
강천보를 지나 상류로 올라가면 용인에서 북상한 청미천이 여주군 점동면의 도리와 삼합리 사이를 지나 한강 본류와 합류한다. 청미천과 마주보는 한강 북쪽의 여주군 강천면에서는 섬강이 한강으로 흘러든다. 두 강이 만나는 동네 이름이 3개의 강이 만난다 하여 ‘삼합리’다. 이곳도 올해 장마에는 침수에서 해방됐다.
“여기 한강변 제방이 완공된 게 지난 5월쯤이에요. 이 마을에 40년째 사는데, 비가 와도 올여름 처음으로 발 뻗고 자 보네요. 4년에 한 번씩은 마을회관과 우리 집 사이 논밭이 다 침수돼 우리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배를 타고 다녔다니까요.”
도리노인회 이강원(73) 회장의 집은 마을회관에서 건너다 보이는 강변 구릉지 위에 있다. 이회장집과 마을회관과의 사이는 지대가 낮은 데다 개울이 있다 보니 한강물만 불어나면 강물이 차오르고, 물이 잘 안 빠져 농사를 망치곤 했다.
도리로 오다 보면 마을 입구 오른쪽은 마을회관, 왼쪽은 ‘새마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1972년 대홍수 당시 마을회관 앞마당까지 침수되는 큰 홍수피해를 입는 바람에 저지대에 살던 주민 15가구가 옮겨가 살고 있는 산자락이 ‘새마을’이다.![]()
“홍수만 없으면 참 살기 좋은 마을이에요. 강변 경치 좋죠, 인심 좋죠, 물 맑고 공기가 좋아 밤이면 반딧불이도 볼 수 있어요.”
‘청정마을’이란 점에 착안해 도리는 ‘늘향골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을 운영 중이다. 올여름 6백명가량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회장은 요즘 홍수가 아니라 장마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더 걱정이다.
“비가 너무 와서 습하니까 고추는 탄저병이 걸리고, 막 열매 맺기 시작한 깨도 타들어 갑니다. 가지도 곰팡이에 시달리고 한창 자라야 할 고구마, 콩도 누렇게 변하고 있어요.”
유난스레 긴 장마, 그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은 모두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4대강살리기 사업에 대해 여전히 찬반논란이 일고 있지만, 우리의 농촌 풍경은 찬반논란에 매몰될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기후변화란 과제는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방대한 문제이고, 우리는 그러한 과제 중 하나를 해결하고 있을 뿐이다.
“홍수 걱정은 덜었지만 비가 빨리 그쳐야지요. 그래야 농작물도 살고 우리도 살지요.”
갈수록 변화무쌍해지는 기후변화 속에서 농촌을 지키고 살아가는 소박한 농부 이 회장의 바람이었다. 더욱이 나날이 고령화되는 우리 농촌이다. 도리도 전체 주민 1백80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회 회원이 40명. 4대강살리기로 한숨 돌린 우리 농촌은 더 많은
해결 과제를 안고 있었다.
글과 사진ㆍ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