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고용보험위원장│이씬정석
음악노동자가 말하는 예술인 고용보험 효과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됐다. 잦은 실업과 고용 불안으로 지속적인 창작 활동이 어려웠던 예술직업인들에게 고용안전망이 갖춰진 것이다. 제도화에 오랜 시간 목소리를 보탠 뮤지션유니온 소속의 음악노동자이자 문화예술노동연대 고용보험위원장인 이씬정석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거 “계속 음악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던 그는 이제 “일은 멈춰도 예술은 멈추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예술인 고용보험에 희망을 걸었다. 다음은 음악노동자가 들려주는 희망가다.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코로나19 원년을 지나왔다. 2020년 한해를 뮤지션으로서 돌아본다면?
=2020년은 내 음악활동으로 치면 ‘삭제하다(delete)’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언제가 될지 몰랐던 ‘예술인 고용보험’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력이 여러 부분에서 열렸다.
-법안 통과 당시 6개월 안에 빠르게 시행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6개월 준비 기간을 두고 급하게 현실 조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시행’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2020년 12월 예술용역으로 계약된 것부터 2021년 1월에 신고할 수 있다.
-고용보험의 핵심인 실업급여와 출산전후급여에 앞서, 그간 문화계에 잘못된 계약 관행이 먼저 바뀌지 않을까 기대된다. 최근에도 시끄러웠던 임금체불 문제도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도 역시 기대하는 바다. 하지만 40% 정도를 제외하고는 구두계약조차 맺지 않았던 현실을 처음부터 바꿔나가는 게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예술인 고용보험법은 사용자가 아닌 예술인에게 유리한 제도다. 근데 행정 지원이나 처리는 사용자가 해야 한다. 초반엔 이 부분이 현실에서 작동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문화예술계 활동 계약이 3~4월에 시작한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의 공모지원 사업 시작에 맞춰서다. 9개월 지나야 실수급자가 처음 발생하니까. 그때까진 신고·납부 등 과정을 확인하면서 조정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계약서 작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단발성 공연이 많은 문화계에서 연습, 준비 기간을 계약서에 포함해야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고.
=1시간 공연이든, 30분 공연이든, 10분 공연이든 계약됐을 때 준비 기간을 며칠 자동 산입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연습, 준비기간을 계약서에 넣기가 어렵다. 이 부분은 표준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기관과 사회단체 등에서 앞장서 줘야 한다. 계약서를 체결하는 활동과 계약 과정에서 연습과 준비 기간을 산입하게 하는, 모범 사례를 발굴하는 작업을 상반기에 집중하면 의미 있는 진전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
-본격 시행을 위한 6개월 준비 기간을 앞두고 ‘시행령 싸움’이라고 언급했다. 현장 예술인들로 구성된 전담 조직(TF) 제안도 했고. 시행령 개정안에 그간 논의되고 반영된 내용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행령 처음 논의 당시 정부 안은 ‘월 산입조건’ 등 몇 가지 쟁점 사항이 있었다. 저소득이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예술인에게 필요한 제도인데, 계속 불안정한 예술인들의 생계 조건들을 제외시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행령 싸움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조정을 해서 불안정한 예술인들을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아쉬운 대로 월 산입조건을 조금 개선했다. 처음엔 월 산입조건이 80만 원이었다. 그것도 건당으로. 이는 일반적인 노동자 조건에서 출발한 기준이다. 예술인들이 얼마를 받고 활동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내린 판단이다. 이 조건으로 못 들어가는 예술인들이 많다. 그래서 합산 조건으로 하자고 설득했고, 그 결과 월 합산을 50만 원까지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3개월간 소득이 20% 줄면 실업급여를 지급한다는 조건을 두고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너무 지나치다. 예술인 수급액은 일반 노동자보다 훨씬 적다. 기여 조건이 월 50만 원 이상이라고 했지만, 80만 원 기준으로 보험료를 낸다. 그중 60%를 예술인이 받는다. 액수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예술인에게는 절박하고 의미 있게 작동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기여를 해서 고용보험을 받는 거다. 소득이 있을 때 보험료를 내고 그에 따른 수급 조건이 됐을 때만 수급 하는 것이다. 또 예술인들은 고소득자도 많고, 잘사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굉장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피보험 단위기간인 9개월에 대해 다른 업종을 겸업하는 예술인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여건이 엄격하다고 보이진 않는지.
=그런 면이 있다. 그래서 다른 일반 노동자처럼 6개월로 요청했는데, 특혜 논란에 부딪혀 9개월로 정해졌다. 기여 조건이 낮아졌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긴 하지만, 띄엄띄엄 일하는 예술인 입장에서 9개월을 채운다는 게 2년을 해도 못 채울 경우가 많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공연을 했다, 단기 예술인 11일을 채우라고 했지만 못 채웠다, 다음 날로 또 다음 달로 넘어간다. 그걸 22로 나눠 월 계산을 한다. 이렇게 24개월 내에 9개월을 채울 수 있겠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의 근간인 ‘예술인복지법’ 개선 작업의 필요성도 대두되던데.
=고용보험법에서는 예술인복지법에 근거해 가입 대상을 잡고 있다. 근데 예술인복지법에서 현재 예술인에 대한 정의나 예술인의 범위를 협소하게 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제외되는 문화예술 분야가 발생한다. 분야별로 보자면, 출판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나 편집자 등 외주 인력은 모두 제외 대상이다. 방송 작가의 경우 드라마나 예능 분야는 적용 대상인데, 보도 분야는 제외시켰다. 그리고 활동 영역의 문제인데, 문화예술교육 영역이 아예 대상이 아니다. 상당수 예술인들이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예술활동에서 제외되어 대다수 예술 강사를 사업자 관계로 보고 자영업자로 가입하라고 정리하고 있다.
또 근본적으로 고용보험법 예술인 특레조항에서 문제될 수 있는 사항이 있다. 문화 예술 용역계약으로만 한정하다 보니 예술활동 소득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상이 안 된다. 대표적으로 작가들과 화가들이다. 1인 창작자들은 전혀 대상이 안 된다. 창작을 할 때 의뢰를 받아 용역계약을 맺은 경우만 대상이 된다. 출판사와 인세 계약이나 매절 계약을 맺은 경우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문제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예술인들의 활동 상황과 생활 실태부터 조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전엔 어디 협회 소속 정도 말고는 증빙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점점 예술인 실태가 객관화되어 가는 중이다.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워진 예술인들이 예술활동 증빙을 많이 신청했다고 한다. 등록하고 증빙해가는 과정에서 예술인의 실태와 존재 증빙 자료가 드러났다. 또 3년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술인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이 다음 차례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을 맞아, 현장의 목소리를 더욱 세심히 듣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술인에 대한 시혜적 조치로 생각하면 안 된다. 현대사회는 누구나 불안정 노동과 고용 속에서 살고 있다. 특정 공간에 가서 시간 딱 맞춰 칼같이 ‘나인투식스(9to6)’로 일하는 사람만 노동자가 아니다. 이 부분부터 개선되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크다고 본다. 근로기준법 자체의 근로계약의 관계를 넓히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또한 당사자 목소리가 제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 중요하다. 예술인 고용보험뿐 아니라 지금 청원되어 있는 예술인권리보장법도 계속 기다려만 왔다. 예술인 당사자들이 현실 제도나 정치 안에서 권리 주체로서 참여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책임을 질 수 있는 길이 과감히 열렸으면 한다.
심은하 기자
문답으로 알아보는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적용 대상은?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대상은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예술활동증명서를 발급받았거나 문학·미술·사진·건축·음악·국악·무용·연극·영화·연예·만화 등 11개 분야에서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다. 신진예술인이나 경력단절예술인 등도 포함되며, 계약 기간이 1개월 미만이라도 ‘단기 예술인’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다만, 65세 이후로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새롭게 체결한 경우와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의 평균 소득액이 월 50만 원 미만인 경우에는 가입이 제한된다. 단, 각 계약의 월 소득은 50만 원 미만이지만 둘 이상의 계약을 체결해 월 소득이 50만 원이 넘을 경우 소득합산을 신청해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단기 예술인의 경우에는 소득과 상관없이 노무 제공 건별로 모두 적용이 된다.
-가입 방법과 보험료는?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은 원칙적으로 보험가입자인 사업주가 신고해야 한다. 만약에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한 사업주가 해당 예술인에 관한 고용보험 가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예술인이 직접 공단에 피보험자격 관련 사항을 신고할 수 있다.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서 등 계약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예술인 고용보험료율은 예술인의 보수액(사업소득·기타소득-비과세소득·경비)을 기준으로 예술인과 사업주가 각 0.8%씩 실업급여 보험료를 부담한다. 또한 ‘기준보수(월평균보수 하한액) 80만 원 제도’를 도입해 월평균보수 80만 원 미만의 저소득 예술인도 월평균보수 하한액 80만 원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의 보험료는 기준보수 80만 원으로 보험료가 부과된다.
-지원 사항은?
=해당 자격을 갖춘 예술인들은 구직급여와 출산전후급여 등을 임금 근로자와 동일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예술인이 이직일 전 24개월 중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고, 자발적 이직 등 수급자격 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1일 지급액은 이직 전 1년간 일평균 보수의 60%이며, 최대 상한 금액은 6만 6000원으로, 피보험기간 및 연령에 따라 120~270일간 받을 수 있다. 출산전후급여에 대해서는 출산일 전 피보험단위기간이 3개월 이상이고, 소정기간 노무제공을 하지 않을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출산일 직전 1년간 월평균 보수의 100%를 90일간 지급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