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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를 하고 있는 나영준 앤틀러 대표│앤틀러
4월 ‘이달의 한국판 뉴딜’ 나영준 앤틀러 대표
“우리 축산은 지금까지 자기 경험으로만 또는 전문가의 일방적인 의견에 의존해 소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어요. 흐린 거울을 보고 화장을 하는 것과 같지요. 우리나라에서 키우고 있는 대부분의 송아지는 ‘축산물이력제’로 관리되고 있고 혈통·사육두수·시세 등 데이터도 투명 공개되고 있어요. 이 데이터를 예쁘게 만들고 또 예측해 농가와 협동조합이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깨끗한 거울을 만들고 있는 거라 할수 있죠.”
나영준 ㈜앤틀러 대표는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깨끗한 거울’에 비유했다. 우리가 먹고 키우는 모든 한우는 혈통정보·등급·가격 등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이력 정보가 빠짐없이 관리되고 있다. 정부가 안전한 축산물 생산 및 공급을 위해 국내에서 사육되는 모든 한우의 데이터를 공공데이터로 모으고 있고 디지털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이 모든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다.
이 축산 공공데이터를 활용·분석해 한우 축산농가에 꼭 필요한 정보·데이터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애니멀 데이터랩·Animal Data Lab)를 개발한 나영준 대표가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주관하는 2021년 4월 ‘이달의 한국판 뉴딜’ 수상자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앤틀러는 2020년 7월에 시작한 축산 데이터 신생기업이다. 좋은 송아지를 고르고 건강하게 키우고 농가 수익을 높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목표다.
축산물이력제는 엄청난 고품질 데이터
나 대표는 한우를 공부한 ‘소박사’다. 건국대 동물자원과학과 연구교수를 겸하고 있다. 책장에 꽃힌 논문을 벗어나 살아 있는 데이터와 지식을 사회에 활용하고 싶었다.
“축산학은 순수 학문과 달리 산업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요. 동물들과 부대끼며 연구하고 동물의 영양과 생리를 수학적으로 해석한 고품질 데이터가 축산분야에 많고 엄청난 가능성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지요. 지식과 데이터가 논문 속에만 갇히지 않고 역동성 있게 살아 움직이도록 하고 싶었어요.”
예컨대 과거 데이터와 현재 키우고 있는 가축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태시키거나 선발하는 기준을 정할 수 있다. 최적 출하 시점이나 육종·사료배합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준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축산을 잘 모르는 사람은 별거 아니라고 여길 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최적화하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이런 도움을 통해 소가 더욱 건강해지고 출하 시점을 2개월 정도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동물을 키우면서 나오는 분뇨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수많은 데이터·정보 중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는 게 중요해요. 데이터·정보의 수량이 많아지면 이용하는 사람들이 압도 당하기 쉬우니 필요 없는 것들을 최대한 걷어내고 본질적인 대목만 명확하게 보여줘 사용자가 자기 경험에 기반해 해법을 찾을 수 있게 제공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라도 농장주 본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측면들이 있거든요.”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그는 “축산물이력제라는 엄청난 고품질의 데이터가 눈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최고급 재료는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잖아요. 데이터 기반 사업에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고 고된 일은 좋은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고 분석하고 서비스 개발하는 건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오래전부터 축산물이력제를 시행하고 있고 사육하는 소 한 마리 한 마리의 몸무게, 근내지방, 혈통, 육종가, 사육자, 사육기간, 그리고 등급판정을 매긴 판정사 이름까지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대한 고품질 데이터를 개인이나 민간 기업이 수집·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농식품부, 농협, 축산물품질평가원, 종축개량협회, 공공데이터포털 등 촘촘하게 구축돼 있는 공공 디지털 인프라 덕분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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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틀러 누리집 갈무리
다음 세대 위한 데이터로 만드는 단단한 축산
정부가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와 공공 대량자료(빅데이터) 공개 및 활용 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데이터를 구축·개방·활용하는 등 데이터 전주기에 걸쳐 생태계를 강화하고 공공데이터 14만 2000개를 전면 개방했다. 제조·의료·바이오 등 분야별 데이터 수집·활용도 확대하는 중이다.
정부는 또 공공데이터의 활용성을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각 기관별로 ‘공공데이터 창업 경진대회’(예선, 통합본선, 왕중왕전)를 매년 열고 있다. 앤틀러도 수상한 적이 있다.
“재정적인 지원도 고맙지만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데이터들을 확보해 제공하려 노력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냥 있는 것 중에 알아서 골라서 쓰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필요한 데이터 중에 행정적으로 공개 가능한 것들을 우리가 나서서 처리해주겠다’는 태도로 도와줍니다.”
나 대표는 “공공데이터는 쓸수록 (그 품질이)단단해진다”고 말했다. 앤틀러의 미션은 ‘다음 세대를 위한 데이터로 만드는 단단한 축산’이다.
“뭔가 대단한 사료라던지 대단한 첨가물질을 만들어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데이터는 자꾸자꾸 사용돼야 합니다. 데이터를 소수만 갖게 되면 권력이 되고 여러 사람의 손에 쥐어지면 더 생산적으로 쓰입니다.” 단단하다는 어휘에 담긴 뜻이다.
조계완 기자